집이 팔리면 갯벌도 새로운 주인을 맞는다

전남 장흥 안양면 수문리 ‘여닫이’

등록 2004.08.26 14:06수정 2004.08.2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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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메기가 뒤집고 간 '여닫이' 갯벌에 어민들 손길이 바쁘다. 처서가 지나고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자 주꾸미를 잡기 위해 소라단지를 옮기는 부부는 손수레를 끌고 나르고, 물때에 맞춰 고기를 잡으려는 어부는 어망 손질에 바쁘다.


a 주꾸미를 잡는 소라단지를 설치하기 위해 옮기는 부부.

주꾸미를 잡는 소라단지를 설치하기 위해 옮기는 부부. ⓒ 김준


a 태풍 '메기'가 지난 후 더욱 바빠진 어민들.

태풍 '메기'가 지난 후 더욱 바빠진 어민들. ⓒ 김준

금당도와 거금도를 스치고 올라온 바다는 더 이상 갈 곳을 잃고 주저앉아 똬리를 틀고 득량만에 앉는다. 수문포는 득량만의 중간에 자리한 작은 포구다. 지금은 수문리로 불렸지만 장흥읍지(1747년)에는 수문포라 하였으며, '숨포'라고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수문포보다는 '여닫이'에 익숙하다.

여닫이를 안고 200여 호가 넘는 큰 마을 수문리와 70여 호의 율산 마을이 옹크리고 있다. 여닫이와 마을 사이에는 주민들이 먹고살기에 적당한 땅에 벼들이 자라고 있다. 식민지시기 이전에 원(제방)을 막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전에는 마을 앞에까지 갯벌이 만들어졌던 모양이다. 여닫이는 소설가 한승원이 '해산토굴'을 마련해 생활하며 작업하는 공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논두렁처럼 갯두렁이 만들어진 여다지

여닫이 갯벌은 율산과 수문리의 반찬통이다. 거의 모든 가구가 여닫이 갯벌에 바지락 양식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 내어 가용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갑작스레 닥친 손님 밥상에 올려 체면치레를 해주고 있다.

여닫이 갯벌은 논두렁 마냥 10여 미터 간격으로 말목이 박혀 있거나 돌로 구분되어 있다. 농부들이 논을 가지듯이 여닫이 갯벌은 율산과 수문리 주민들은 비슷한 규모의 갯벌을 가지고 있다. 1970년대 초반 몇 명의 주민들이 개별적으로 여닫이 갯벌에서 융자를 받아 패류양식을 하였던 모양이다. 이에 주민들은 '동네 앞으로 되어 있는 갯벌을 개인 땅으로 하면 안 된다'며 문제제기를 하여, 마을 호(戶) 수만큼 나누어 배분하였다고 한다.


a 논처럼 가구별로 나누어진 갯벌.

논처럼 가구별로 나누어진 갯벌. ⓒ 김준

1970년대 초반 무렵이면 우리 나라에 양식어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으로 그 동안 임의적으로 해오던 양식들이 면허체제로 전환되는 시점이었다. 특히 1960년대 어촌계가 공동어장에 대한 면허권을 취득할 수 있는 법률적 기반이 마련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서남해 여러 곳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결국 여닫이갯벌은 공유수면으로 국유지이지만 어촌계(마을주민 대부분이 참여함)가 이용허가를 얻어, 개별적으로 나누어 배타적으로 이용(점유)하는 셈이다. 어쩌면 이러한 운영방법이 약탈적이고 파괴적인 이용을 막고,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는 갯벌로 유지하는 원인일지도 모른다.


집이 팔리면 갯벌도 새로운 주인을 맞는다

어촌에서 호(戶)는 매우 중요하다. 호가 있느냐, 없느냐는 갯벌이나 양식어장을 이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호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결혼을 한 후, 분가를 해야 한다. 그 후 마을에서 정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자격이 주어진다. 그 후 마을 주민들 전체가 모인 총회('대동계', '동계' 회의라고도 함)에서 호를 줄 것인지 결정하게 되는데, 이를 '입호'(入戶)라고 한다. 입호가 결정되면 외지인인가 마을 주민인가, 장남인가 차남인가에 따라 차등적으로 정해진 입호금을 마을에 낸다.

공동어장이 발달한 어촌에서는 '戶'는 단순하게 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갯벌이나 양식어장의 이용 권리까지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에는 집의 가격은 어장의 가치에 따라 다르다. 여닫이 갯벌을 가지고 있는 율산과 수문리의 집 값은 인근 다른 마을에 비해서 비싸다. 그것은 여닫이 갯벌이 있기 때문이다. 완도 비견도에서 수문리로 시집온 완도댁(60)의 여닫이 자랑이다.

a 바지락을 캐는 완도댁.(2003.7 촬영)

바지락을 캐는 완도댁.(2003.7 촬영) ⓒ 김준


10년 전에는 바지락이 쌨었는데,
김 한다고 저 짝(율포)에서 염산을 한께 이렇게 바지락이 없어요.
그냥 나와도 20키로 수월랍게 파고 갔는디,
2시에 나와서 지금 까지(6시) 작업을 했는데 10키로 못했어, 3만원도 못돼.

바지락 밭은 부락으로 호당 하나씩 있어요. 바지락은 이녁재산이제.
집에 딸려 있어. 집이 팔리면 딸려가제, 그래서 집이 비싸.


갯벌과 바다도 방학이 필요하다

여닫이 갯벌과 앞 바다에서는 패류는 바지락, 키조개, 똥꼬막(새꼬막) 등이 나오고, 어류로는 전어, 장어, 농어, 돔, 주꾸미, 낙지 등이 잡히고 있다. 특히 바지락, 키조개, 주꾸미가 유명하다.

이곳 어민들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들어온 고기 잡고, 나가는 고기는 보내준다. 득량만은 수심이 깊지 않아 수온이 낮아지면, 봄철에 산란하기 위해 여닫이나 득량만으로 들어온 고기들이 깊은 바다로 모두 빠져나간다. 그래서 겨울철이 되면 여닫이의 어부들도 휴식기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고기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갯벌과 바다도 방학을 해야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지 않겠는가.

이곳 바다에는 큰 배가 없다. 그저 주낙이나 그물질에 적당한 작은 배면 족하다. 그런 까닭에 모든 작업은 손으로 이루어진다. 그물을 올릴 때도, 수백 미터의 주낙을 당길 때도 모두 손으로 한다. 힘은 들지만 이곳 갯벌과 바다는 더 큰 배와 동력이 필요치 않다.

a 소라단지를 놓기 위해 바다로 배를 저어가는 모습.

소라단지를 놓기 위해 바다로 배를 저어가는 모습. ⓒ 김준


a 그물을 놓기 위해 호망을 손질하는 어부.

그물을 놓기 위해 호망을 손질하는 어부. ⓒ 김준

고기잡이는 주낙과 호만을 이용한다. 4월에 시작해 10월까지, 호망(건강망)을 이용해 봄에는 돔, 농어, 간 재미, 새우, 게, 장어, 쭈꾸미 등 다양한 고기들이 잡고, 가을에는 전어와 약간의 숭어가 잡는다.

주낙을 이용해 낙지와 장어를 잡는데, 장어주낙은 5월에 시작해 9월까지 이어진다. 낙지는 봄철에는 통발, 가을철에는 주낙을 이용해 잡는다. 봄철 통발은 지금도 이용하지만, 가을철 주낙은 하지 않고 있다.

칠게를 미끼로 넣은 통발로 낙지를 유인하는 낙지통발은 바다에 설치해 놓고 낮에 건져 올리면 되지만, 주낙은 낙지를 낚기 위해 미끼(칠게)를 낀 주낙을 2백여 개씩 매달고 갯벌 위를 긁어 잡는다. 낙지가 야행성이기 때문에 작업이 밤에 이루어져 농사를 짓거나 낮에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주낙을 하기 힘들다. 여닫이 앞 바다에 20여 년 전부터 양식을 위해 박아 놓은 말목으로 인해 주낙질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낙을 이용한 낙지잡이는 못하고 있다.

이곳 주꾸미잡이는 8월 하순부터 시작된다. 곰소 등 부안을 비롯한 서해해역은 가을철에 시작하여 봄철에 성시를 이루지만, 여닫이의 주꾸미잡이는 추석 무렵에 활발하다. 소라껍질을 달아 하나씩 맨 수십 개의 줄을 긴 로프에 매달아 물에 잠긴 갯벌 위에 가만히 얻어 놓은다. 구멍만 있으면 집으로 알고 들어가길 좋아하는 주꾸미의 특징을 이용해서 잡는데, 이를 '소라단지', 혹은 '주꾸미 주낙'이라고 부른다. 서해해역에 비해서 소라단지가 작아 주꾸미가 완전히 자라기 전에 잡기 때문에 부드럽고 연해서 가을철에 많은 사람들이 여닫이의 주꾸미를 찾고 있다.

a 통발로 낙지를 잡고 있는 모습.(2003. 7 촬영)

통발로 낙지를 잡고 있는 모습.(2003. 7 촬영) ⓒ 김준


해산물은 갯벌에서 나야 제 맛이고, 갯 것치고 득량만 한 데가 없다

수문포에는 여닫이가 만들어 낸 장흥의 음식 '바지락회'가 있다. 40여 년 전 이곳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던 할머니가 반찬으로 내놓았던 것이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가장 먼저 걷어내고 갯바람이 봄을 가지고 오는 3월 수문포 갯벌에는 살이 통통한 바지락이 지지개를 켠다. 입맛을 잃는 사람들이 봄나물을 찾듯 이곳에서는 잘 발효된 식초와 고추장에 버무린 조갯살을 한 입 물고 우물우물 할 무렵 바다에서는 봄이 시작된다. 이제는 수문포의 대부분의 식당에서 여닫이 갯벌에서 바로 캐온 바지락을 이용한 회를 맛볼 수 있다. 바지락회는 이제 이곳 토속음식으로 자리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수문리의 또 다른 별미는 키조개 회라 할 수 있다. 맛과 영양이 좋아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했던 키조개 회는 키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에서는 2004년부터 키조개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수심 15-50m의 진흙에 서식하는 키조개는 생으로 먹거나, 육고기와 함께 불 판에 구워 먹을 수도 있다.

한승원의 '사랑'의 무대

a 해산토굴에서 한승원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2003.7 '꾸꿈스런 전라도 여행' 중에 촬영)

해산토굴에서 한승원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2003.7 '꾸꿈스런 전라도 여행' 중에 촬영) ⓒ 김준

'한승원은 어머니의 유골가루를 이곳 여닫이 갯벌 밭과 모래밭에 뿌린다. 율산에서 나고 자라 회진의 한 마을로 시집간 어머니는 늘그막에 승원을 낳았다. 승원은 여닫이를 비롯해 보림사, 용곡리 횟집, 회진 포구를 오가며 한 여인과 애틋한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다.

한승원의 소설 '사랑'의 내용이다. 주인공은 작가와 동명이다. 어쩌면 자전적 소설인지 모른다. 한승원에게 바다와 갯벌은 작품의 공간이자 생활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는 작품 '물보라', '안개바다', '멍텅구리배', '해산가는 길', '포구' 등 갯벌과 포구, 바다를 주제와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썼다. '남도의 강인한 삶', '갯벌의 생명력', '바다', '신화', '여성' 등을 이야기하는 그를 혹자들은 '신비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장흥이라 아니라 '자흥'이라고 고집한 그곳은 한승원 외에 송기숙, 이청준 등 많은 문인을 낳은 곳이다. 여닫이 바로 옆에는 이청준의 소설 '축제'와 임권택 감독의 '축제'의 배경인 '남포'마을이 있다.

조용하고 작은 포구 여닫이. 그곳에는 갯벌이 만들어 준 땅과, 사람들이 부쳐먹을 만한 갯벌, 욕심 부리지 않으며 살기에 족한 바다가 어우러져 있다. 여닫이 갯벌에 싱싱한 '바지락회'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욕심 부리지 않고 갯벌과 바다와 함께 한 그들의 삶의 지혜가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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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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