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가 뭐였더라?

아날로그형인간의 디지털분투기(25)

등록 2004.09.07 06:40수정 2004.09.0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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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은행의 비밀번호 입력기. 최근 비밀번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예금 인출자가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하도록 만들었다.

은행의 비밀번호 입력기. 최근 비밀번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예금 인출자가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하도록 만들었다. ⓒ 김정은

장소는 한 은행. 한 아주머니가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비밀번호 입력기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더니 창구 직원 왈 비밀번호가 틀렸으니 다시 누르란다.


다시 이 번호인가 하고 생각나는 다른 번호를 눌러봤지만 여전히 비밀번호는 틀리다고 하니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아주머니. 그 뒤로 몇 번 여러 비밀번호와 씨름하다 결국 새 번호로 재발급 받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또 다른 장소는 모 은행의 현금인출기. 한 아저씨가 신용카드로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인출기 화면순서대로 열심히 입력하는데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메시지만 나온다. 결국 이 아저씨는 비밀번호 입력횟수 제한에 걸려 더는 인출기를 이용하지 못했다.

이번 장소는 PC방. 모 웹 사이트에 회원 로그인을 하고자 하는 학생.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했지만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오류메시지가 계속 뜬다. 이 번호 저 번호 다 사용해도 실패한 학생 결국 웹 마스터에게 비밀번호를 모르겠다는 메일을 보내 비밀번호를 가르쳐주는 메일을 받아 해결했다.

위 세 가지 일화에서 언급한 장소나 성별, 연령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기억나지 않는 비밀번호 때문에 곤란한 일을 당했다는 점.

대한민국 사회는 비밀번호공화국(?)

디지털이 우리 생활에 가까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모두 각종 비밀번호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예금통장용 비밀번호, 카드 비밀번호, 인터넷 뱅킹용 비밀번호, 폰 뱅킹용 비밀번호, 휴대폰 음성녹음 비밀번호, 자주 가는 웹사이트 회원 비밀번호, 개인홈페이지나 블로그 관리자 비밀번호 등등 얼핏 생각나는 것만 해도 나 하나임을 증명하는 비밀번호가 꽤 많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많은 비밀번호를 기억하기 위해 관리나 기억이 편하도록 번호를 몇 가지로 통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편리에 의해 평생 바꾸지 않고 몇 가지로 통일한 단순한 비밀번호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간단한 유추프로그램에 따라 타인에게 유출되어 사이버 범죄가 발생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이버 범죄자나 해커들이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프로그램을 통해 숫자, 특수기호, 알파벳 등 모든 경우의 수를 순차적으로 대입해서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무작위 대입법이나 미리 입수한 사용자의 관련 단어 조합을 통해 알아내는 사전공격법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피하면서 비교적 안전한 비밀번호를 만들려면 가급적 대입하여야 하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도록 하기 위해 최소 6자리 이상 숫자와 알파벳, 특수기호를 서로 혼합하여 만들어야 좋다는 결론에 이른다.

특히 주민등록번호나 생일, 전화번호 등과 같이 타인이 유추해내기 쉬운 숫자나 단어로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비밀번호는 주기적으로 다르게 바꿔주는 것이 좋고 PC 하드나 다른 사람이 보기 쉬운 곳에 비밀번호를 기록해놓지 않는 것이 사이버 범죄를 막는 예방책이 될 수 있다.

숫자와 특수기호와 알파벳이 적당히 조합된 나와 관련 없는 6자리 이상의 비밀번호.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찔어찔하다. 그런 비밀번호가 이상적이긴 하겠지만 과연 이런 요건을 충족하고도 기억하기 쉬운 비밀번호를 만들기가 쉬울까?

숫자와 특수기호, 알파벳이 조합된 6자리 비밀번호가 안전

최근 예금 통장을 새로 만들려고 했던 우리 어머니가 예전부터 기억해 오셨던 비밀번호로 통일하려 하셨더니 은행에서 4자리 숫자라 곤란하다고 거부해 결국 6자리 숫자로 바꾸셨다. 그 후부터 그 번호를 잊어버릴까봐 비밀번호 쓴 메모지를 예금통장 주머니에 꼭꼭 집어넣고 다니셨다.

"어머니, 그러다가 도둑이 그 통장 주머니 훔쳐 가면 어떻게 하려고 비밀번호를 함께 넣으세요?
"통장 잊어버리는 건 잘 간수하면 되지만 비밀번호 잊어버리는 건 더 골치 아프잖냐?

우리 어머니처럼 기억하기 좋은 비밀번호를 유지하자니 너무 간단하고 본인과의 연관성이 많아 외부로 유출되기 쉽고, 이 때문에 복잡하게 비밀번호를 만들어 놓으면 또 외우기가 수월치 않아 깜박 깜박 잊어버리니 이래도 탈, 저래도 탈이다.

이쯤 되면 디지털 시대에 일일이 본인이라는 증명 없이도 어디서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던 비밀번호가 우습게도 도처에서 유출, 사용됨으로써 이러한 유출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더 복잡한 비밀번호를 외우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지문이나 홍채인식 등으로 비밀번호를 대신하는 시스템이 대중화되지 않는 이상 비밀번호야말로 아직까지 안전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것을….

머지않은 미래에 SF 영화처럼 비밀번호 외우는 수고 없이 지문이나 홍채인식 등으로 집에서 자연스럽게 은행 업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좀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나의 모든 것을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각오로 6자리 이상의 복잡한 비밀번호를 만들고 그 번호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를 사는 아날로그 형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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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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