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젊은이의 교과서,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와 <상실의 시대>

등록 2004.09.10 11:27수정 2004.09.1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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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젊은 시절의 뜨겁고 아련한 추억 한 두가지는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가슴에 지니고 있던 뜨거운 열정과 패기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 아이.

<상실의 시대>. 그 제목에서부터 가슴을 저미는 묘한 힘이 있다.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보다 훨씬 강렬한 그 무언가. 내가 오래 전 놓쳐버리고 상실해 버린 그 무언가를 일깨워 준다.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작품으로 군조신인상를 타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그 이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함께 '쥐 3부작'의 두번째, 세번째 작품인 <1973년의 핀볼>(1980),<양을 쫓는 모험>(1982)을 잇달아 발표하였고 <양을 쫓는 모험>으로 노마신인상을 수상하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3년 후인 1985년 하루키는 전혀 다른 소설 두 편을 장마다 번갈아 가며 쓴 독특한 형태의 장편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작품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한다.

처음의 쥐 3부작은 이미 30대에 접어든 작가의 자조적인 노래라 할 수 있다. 어떠한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허무주의에 쌓여있던 젊은 시절. 양을 죽이는 것으로 은유적으로 표현된 작가 자신의 청춘 노래다.

쥐 3부작이 과거에서 현재까지 오는 과정이었다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현재의 자신을 나타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두개의 전혀 다른 소설을 번갈아 배치함으로 작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쥐 3부작에서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정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상실의 시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5번째 장편소설로 1987년에 쓰여졌다. 600만부 이상 판매되었고 이 작품을 통해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완전히 굳혔다.


쥐 3부작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보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통해 자신을 정립한 작가는 <상실의 시대>에서 그 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꺼내 든다. <상실의 시대>의 주요 테마는 사랑, 죽음, 섹스다.

쥐의 소설에는 뛰어난 점이 두 가지 있다. 우선 섹스 장면이 없다는 것과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내버려둬도 죽고, 여자와 잔다. 그런 법이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중에서 -



그렇다. 쥐의 소설에는 섹스도 없고 죽음도 없다. 작가는 이전 작품들에서 의식적으로 섹스와 죽음을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자아를 정립한 작가는 <상실의 시대>에서 나오코와의 섹스, 나오코, 미도리와의 사랑, 친구와 주위 사람의 죽음 등을 적극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진짜 젊은이들의 삶이다.

<상실의 시대>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사랑, 이별 그리고 죽음. 죽음까지도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표현하고 있다.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소설의 말미 자신의 실존을 찾기 위한 몸부림. 삶에 대한 애착과 사랑 그리고 자기 발견.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청년에게는 교과서 같은 책이다.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문학사상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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