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돌아보며 갖는 감회들

등록 2004.10.04 16:03수정 2004.10.0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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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한해의 추석이 바람같이 지나갔다. 금세 왔다가 금세 지나는가 했더니 또 금세 일주일 전으로 멀어져 버린 추석의 꼬리 끝을 보면서 잠시 이런저런 감회에 젖어본다.

추석을 맞고 지내면서 다시 한번 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팔순을 넘기신 노구로 추석 전에 손수 김치 담그는 일을 하셨고, 대전의 막내아들에게 미리 택배로 보내주시기까지 했다. 지금도 우리 집 밥상에는 배추김치, 열무김치, 파김치, 그리고 굴을 많이 넣고 담근다 해서 흰젖이라고도 하는 무생채 등이 오르는데 모두 어머니가 담그신 김치들이다.

어머니는 추석 전에 게장도 담그셨다. 1kg에 2만원인 그 비싼 꽃게를 3kg 사다가 양념 게장을 담그셨다. 아들들은 물론이고 바닷가 태생이 아닌 며느리들과 어린 손자 손녀들까지 하나같이 게장을 좋아하는 까닭이었다.

삼형제 가족이 함께 하는 식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역시 게장이었다. 대전 막내 동생 가족이 큰 집에 온 추석 이틀 전의 저녁부터 삼형제 가족이 끼니마다 게장을 먹었다. 그러고도 추석날 오후에 막내 동생이 돌아갈 때는 작은 통으로 한 통 가져 가기도 했으니, 우리 집에는 찌꺼기만 남게 되었다.

한번은 식사를 하면서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라도 게장만큼은 내가 담가보겠다고 했다. 옛날 아버지께서 게장 담그시던 모습을 떠올린 까닭이었다. 바닷가 태생이 아닌 어머니가 게장을 잘 담그시는 것도 실은 아버지에게서 배우신 것이었다.


삼형제 가족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갈렸다. 기대해 보겠다는 말, 아무리 노력해도 어머니 게장만큼 맛있지는 않으리라는 말, 마음은 있어도 실행은 못할 거라는 말 등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게장 담그시는 것을 도와 드리며 유심히 보아 두었으니 시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간을 제대로 맞출지는 자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팔순을 넘기신 어머니가 손수 담그신 여러 가지 김치들, 그리고 어머니가 며느리를 데리고 몸소 시장을 보아다가 장만하신 아직 남아 있는 추석 음식들을 먹으면서 이 세월이 내게 얼마나 남아 있을까 공연한 의문에 젖어보기도 한다. 추석 전에 대전 막내 동생에게 택배로 김치 부치는 일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런 일도 함께 끝나리라는….


그리하여 언제일지 모를 그 날부터는 나나 동생들이나 또 출가외인들인 누이들도 허전함과 썰렁함을 감내하며 살게 될 거라는….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명절 때마다 동생들의 가족은 내 집에 모일 것이다. 삼형제 가족이 큰 집에 모여 명절을 함께 지내는 풍습은 우리 집에서도 오래 올곧게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정성껏 지내는 명절 차례와도 연관이 깊을 것이다.

(2)

우리 집 차례는 내가 창안한 방식으로 지내는데, 재미도 있는 성싶다. 먼저 가족 모두 차례상 앞에 무릎꿇고 앉아 '주모경'으로 기도를 한다. 그리고 삼형제 가족이 차례로 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한다.

가장이 무릎 꿇고 앉아 잔을 들면 아들이 술을 따른다. 그 잔을 다른 아이가 받아서(삼형제 모두 아이가 둘씩이므로) 엄마에게 넘기면 엄마가 술잔을 상에 올린다. 그리고 함께 절을 한다. 이렇게 하니 가족 모두가 한 가지씩 몫을 하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형제 가족 모두 함께 절을 하고, 다시 간단한 기도 후에 성가 한 곡 부르고 차례를 마친다.

음복도 차례의 한 부분이다. 음복을 잘해야 차례나 제사가 완성되는 법이다. 먼저 퇴주 잔 안의 술을 삼형제가 나누어 마신다. 그리고 거실 가운데로 옮겨놓은 차례상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겁게 식사를 한다.

이렇게 차례를 마친 다음에는 설거지를 끝내고 미리 별도로 마련해 놓았던 음식 두 가지를 쟁반에 담아 차에 싣는다. 하나는 성당의 제대 앞에 놓을 음식이고, 다른 하나는 선친의 묘소 앞에 놓을 음식이다.

성당의 제대 앞에는 두 개의 큰 상이 마련되어 있고, 신자들이 한 집에서 한 가지씩 가져온 음식들을 진설한다. 음식들 중에는 집에서 담근 술도 있다. 갖가지 음식이 골고루 모여 보기에도 풍성하고 좋다.

음식상과 제대 사이에 널찍한 종이판이 세워져 있다. 세상 떠난 이들의 이름이 촘촘히 적혀 있는 종이판이다. '조상을 위한 합동위령미사'인 까닭이다. 신자들 중에는 세상 떠난 조상의 이름을 적는 대신 살아 있는 자신의 이름 다음에 '∼의 조상을 위하여'라는 말을 적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을 보면 세상 떠난 이들과 산 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는 올 추석에도 세 개의 예물봉투를 마련하여 미리 추석 하루 전에 성당 사무실에 드렸다. 한 장에는 내 친가 쪽의 몇 분 세상 떠난 이들의 이름을 적고 '외 모든 조상을 위하여'라는 말을 적었다. 다른 한 장에는 외가 쪽 조상들을 적었고, 마지막 한 장에는 처가 쪽 세상 떠난 이들의 이름을 적었다. 친가와 외가 쪽 조상을 위한 예물봉투에는 두 동생의 협조를 받았다.

신부님은 미사 시작 직후 미사 지향을 알리는 시간에 별도의 종이에 기록된 그 모든 영혼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더러는 산 이들의 이름이 불려지기도 했다. 호명을 마친 신부님은 제대 앞으로 와서 두 번의 큰절과 한 번의 반절을 하고 벽면의 의자로 가 앉았다.

이어서 은은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신자들은 가족 별로 차례차례 제대 앞으로 나아갔다. 음식상 앞에는 향로와 향나무 가루가 마련되어 있었다. 가족 대표가 향나무 가루를 조금 집어 분향을 하고 나서 가족이 나란히 선 채로 절을 했다.

올해도 우리 가족이 가장 다복한 모습이었다. 어머니와 삼형제 가족이 모두 함께 하니 도합 13명이었다. 또 맨 앞에 앉은 덕에 맨 먼저 나아가 하느님과 내 조상님들께 예를 올릴 수 있었다.

미사 후에는 제대 앞에 진설했던 모든 음식을 성당 밖의 마당으로 가지고 나가서 여러 개의 긴 탁자에다 나누어 놓고 신자들 모두 함께 음복을 했다.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너나없이 즐거운 표정이었고, 정녕 축복 받은 풍경이었다.

이렇게 집에서 우리의 전통 풍습대로 차례를 지내고, 모두 성당에 가서 조상을 위한 합동위령미사를 봉헌한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중요한 행사인 성묘를 시작했다. 먼저 내 9대조 양위의 효열(孝烈)을 기리는 정려문에 가서 참배하고, 근처 선산으로 가서 성묘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회 공동묘지로 가서 내 선친 묘소에 음식과 술을 올리고 절을 했다.

내 12인승 승합차에 삼형제 가족을 모두 태우고, 깡총거리는 어린것들을 앞세우고 좋은 날씨 속에서 정문과 묘소들을 두루 다니는 즐거움은 각별했다. 그런 일에서도 내가 믿는 하느님의 은총을 담뿍 느낄 수 있었다.

(3)

추석날 아침에 몇 곳에 전화를 드렸다. 해마다 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기쁘고 감사한 말들이 오갔지만 두 곳과의 전화에서는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홀로 되신 장인어른은 안양의 작은 아들 집에 머무신다고 했다. 공주의 큰아들 내외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큰아들 집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얼마 전에 큰아들에게 넘겨준 공주의 아파트가 당신께서 오래 사셨던 정든 집이건만….

작은 아들 집에서도 차례를 지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작은 아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작은 며느리 역시 개신교 신자이니….

장인어른은 외롭고 쓸쓸하신 것 같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당신 집에서 당신 스스로 지냈던 차례를 갑자기 지내지 못하게 된 데서 갖는 상실감도 큰 것 같았다. 장인어른은 우리 집의 추석 명절 풍경을 전해 들으며 부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봄에 자신의 재산을 큰아들에게 모두 물려준 장인어른은 생각처럼 별로 홀가분한 심사도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이 모시지를 못하는 탓에 구순이 넘으신 어머니가 늙은 딸들의 집을 전전하는 현실에서 오는 자괴감도 큰 것 같았다.

나는 장남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는 습속의 이유를 잠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에는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아들 딸 구분 없이 재산을 고루 분배했다고 한다. 중기 이후 장남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게 된 것은 유교의 영향으로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장남이 부모를 모신다는 것, 또 하나는 제사를 지낸다는 것….

재산 상속에는 권리와 함께 의무도 따르는 셈이었다. 그런데 권리만 찾고 의무는 저버린다면, 그것은 너무도 온당치 않을 일일 터였다.

오래 전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신 내 고교 시절의 은사님은 새해 초하루와 명절에는 꼭꼭 전화를 드리는 내게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더 크다고 했다. 따로 사시는 경기도 시흥의 당신 집에서 차례를 지내기는 하지만 세 아들이 모두 오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가운데 아들이 개신교 신자인데, 명절에 와서 차례를 지낼 때 절을 하지 않아 부자 간에, 또 형제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그 다툼이 있은 후부터는 그 아들이 아예 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놈과는 저절로 의절이 된 상태여."
그러며 은사님은 상심 깊은 기색으로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은사님께 별다른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전화를 끊으면서 은사님처럼 한숨을 쉬었다. 오늘 추석 명절을 지내면서 수많은 집들이 묘한 갈등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말 차례를 둘러싼 이런저런 갈등이 알게 모르게 많은 가정에 내재해 있을 터였다.

가뜩이나 이념 갈등, 계층 갈등, 세대 갈등으로 어려움이 많은 우리 사회에 그런 갈등까지 겹쳐져 있으니, 그것 역시 우리 민족의 업보일까…?

나는 즐겁게 추석 명절을 지내면서도 때때로 우울한 상념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의 여러 가지 부정적인 속성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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