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이해찬 총리의 시정연설 대독이 끝난뒤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표가 김덕룡 원내대표, 김형오 사무총장, 남경필 수석원내부대표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2신 : 25일 오후 4시 10분]
김문수 의원 '대통령 및 국회의원 동반사퇴' 주장도
"일부는 퇴장하고, 일부는 남아있고... 당 지도부가 총리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이방호 의원)
"당 지도부가 매끄럽게 보여야 비판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느 분의 말처럼 손에 피를 묻힐 땐 묻혀야 한다." (이재웅 의원)
"이 정권은 혁명을 하려고 하는데, 우리 당 지도부는 말은 잘 한다. 못난 사람 남아있는 한심한 당으로 보이지 않도록 분발하자." (안택수 의원)
25일 이해찬 국무총리의 시정연설이 끝난 후 소집된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흡사 비주류 의원들의 지도부 성토대회를 방불케 했다.
비주류 의원들은 '시정연설 보이콧'을 당론으로 밀어붙이지 않은 지도부의 무기력을 질타하면서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 저지를 앞둔 당의 정신무장을 촉구했다. 헌재의 수도이전 위헌결정은 당 지도부에 정국반전의 기회를 안겨줬지만, 이로 인해 더욱 높아진 당내 비주류의 강경한 목소리를 수렴해야 하는 숙제도 떠 안게 됐다.
이방호 의원은 비공개 의총이 열리기 전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했다. 형식은 의사진행 발언이었지만, 내용은 당 지도부의 어정쩡한 행보에 대한 공개 질타였다.
"원내대표가 지난 금요일(22일) 의총에서는 총리 연설 안 듣기로 했으니 추인해달라고 해서 박수로 추인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연설 보이콧이 모양새가 안 좋으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토론, 그것도 10분 내외의 형식적 토론에 부쳤다.
지도부의 존재 이유가 뭐냐? 당의 단합된 모습을 보이려고 지도부를 만들어놓은 것 아니냐? 오늘의 상황을 보자. 총리가 한나라당을 무시하고 있는데, 일부는 퇴장하고 일부는 남아있는 모습이 뭐냐? 이런 식으로 편이 갈라진 모습을 TV로 보여주고..."
사회를 보던 주성영 의원이 "그런 얘기는 비공개자리에서 하자"고 말을 가로막았지만, 이 의원은 "들어봐. 어디에다 대놓고 중간에 발언을 가로채나?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라고 도리어 주 의원을 다그쳤다. 순간 당황한 주 의원은 "알겠다"며 물러섰고, 이 의원은 하고싶은 말을 다한 뒤에야 연단을 내려왔다.
"당 지도부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입장이 곤란하면 의원들 의견이나 중구난방으로 얘기하게 만들고,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모습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의총이 비공개로 전환된 후에도 지도부에 대한 비판은 잦아들지 않았다. 이재웅 의원은 "오늘 지도부의 판단이 명확하지 않아서 국민들에게 우스운 꼴을 보였다. 당 지도부가 의원들에게 판단을 미루는 것은 잘못"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의원들의 비판이 '시정연설 거부'라는 일과성 사건을 넘어서 지도부의 대여투쟁 기조에 대한 의문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도부는 남다른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열린우리당이 국보법 폐지 등 4대 법안을 발의한 마당에 한나라당이 비판만 할 뿐 명확한 입장 정리를 하지 않는 것도 비주류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안택수 의원은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가 됐을 때부터 예견된 상황이지만, 정국이 순탄치 않다. 여당이 강행하려는 4대 법안은 우리나라를 흔들어서 혁명을 하자는 건데, 우리 당 지도부는 말은 잘한다"며 "앞으로 한 달에 당의 명운이 걸렸으니 심기일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재웅 의원도 "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도부가 너무 나이브하다. 한달 내에 당의 명운이 결정될 수도 있는데, 당의 방침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이전 반대' 운동에 앞장서온 김문수 의원은 '대통령 사임 - 의원 총사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
"DJ는 내각제를 명분으로 한 DJP 연합으로 집권했는데, 내각제를 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수도이전을 추진했고, 이것으로 당선됐다.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건다고 했는데, 헌재가 수도이전을 위헌이라고 결정해 지배세력 교체라는 혁명적 의도가 좌절됐다. 대통령은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면 헌재 결정과 함께 사퇴를 할 만하다. 이것이 지도자가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자세이다.
나는 헌재 결정이 나던 날 우리 모두가 사퇴하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도 사퇴를 촉구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도이전은 야당도 잘못된 법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를 할만한 중대사안이었다. 제2 창당의 심정으로 자기 쇄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4대 법안과 관련해 유연성 있게 대응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이들과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여야간 정쟁에 염증을 내는 여론을 생각하면 총리연설 보이콧도 신중한 대응이 옳았다는 입장이다.
일부 의원들이 "총리가 헌법을 무시하고, 본분을 망각한 만큼 해임건의안까지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김덕룡 원내대표는 "언젠가는 총리해임건의안을 내야할 지 모르겠지만, 행정수도 문제로 궁지에 몰린 여당을 몰아세워서 정치위기를 조장하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며 신중론을 견지했다.
김 원내대표는 "일도양단으로 나가는 게 멋있을 때도 있지만, 상황이 어제오늘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당 지도부의 판단이 옳으냐 그르냐 얘기할 수 없다. 너무 자학·자해하는 분위기로 빠지지 말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표는 "지금 국보법 폐지에 반대 여론이 많지만, 사학법은 찬성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거리에서 싸우는 것은 마지막 카드가 되어야 한다. 국회에서 할만큼 한 후 나가야 하지 않겠냐"며 지도부에 힘을 실어줄 것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