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93

혈로(血路) (1)

등록 2004.11.12 13:14수정 2004.11.1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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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틱! 티티티틱! 퍼퍽! 퍼퍼퍼퍽!

왕구명은 파천부를 얻은 이후 부법(斧法) 연마에 총력을 기울인 바 있다. 하지만 가문의 비전검법인 청룡검법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옥혜가 익히고는 있지만 그것은 사내가 익혀야 제격인 것이다. 하여 나중에 이회옥을 만나면 친히 전수해 주려 마음먹었다. 자신을 대신하여 아우인 이회옥이 청룡검법의 전수자가 되게 하려 한 것이다.

그러려면 시범을 보여야 하는데 노화순청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체면이 손상된다 생각했다. 적어도 아우에게만큼은 존경받는 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하여 잠도 자지 않고 연마한 바 있었다. 과연 그만한 노력을 기울인 보람이 있었다.

그렇기에 우박처럼 쇄도하던 화살들이 허리가 꺾인 채 그의 주변에 수북히 쌓인 것이다.

대략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더 이상의 화살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천의장의 모든 전각들은 맹렬한 화마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여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모조리 무너져 버렸다.

시뻘건 화염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끼쳐왔지만 한가지 다행인 점은 자욱했던 연기가 많이 줄어 들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충천하는 화광(火光)을 빌어 사물을 식별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장내는 한마디로 난장판이었고, 목불인견(目不忍見)일 정도로 참혹했다. 무너진 채 타 들어가는 전각은 이미 건물의 형체를 잃었다. 가느다란 목재로 만든 창은 벌써 재가 되어 버렸지만 굵은 기둥과 서까래, 그리고 들보 등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너무도 맹렬했다.

여기 저기 화살에 맞은 채 신음하고 있는 자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부상을 당한 데다 화마까지 덮쳐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비명을 지르는 자도 있었다.


다른 한쪽에선 시시각각 다가오는 불길을 보며 겁에 질린 채 비명을 지르는 자들이 있었다. 무너진 건물 잔재에 깔리는 바람에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아앗! 살려줘! 사람 살려! 살려 주세요.”
“아악! 앗 뜨거워! 살려 줘! 사람 살려! 아아아악! 사람 살...”

“앗! 저, 저분은 육손당 당주님…? 초, 총관…!”
“엇! 으음, 멈춰라! 이미 늦었다.”

당주를 구하기 위해 튀어 나가려던 육손당 소속 정의문 제자는 왕구명이 앞길을 제지하자 그대로 멈췄다. 그의 말대로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쐐에에에엑! 퍼억! 쿠웅―!
“케엑!”

왕구명이 전력을 다해 던진 돌은 화염에 휩싸인 채 비틀거리던 육손당 당주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그 충격으로 두개골이 함몰되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음성이었다.

“흐흑! 고맙습니다. 총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육손당주로 하여금 더 이상을 고통을 느끼지 않고 세상을 하직하라는 배려였다는 것을 안 것이다.

“으으음!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육손당 제자의 말에 왕구명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온순하기만 하던 그가 극도의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신호였다.

육손당 당주는 물론 정의문의 모든 제자들은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들이다. 단순한 상전과 수하가 아닌 친 혈육 같은 존재들인 것이다. 이는 수 없는 악전고투(惡戰苦鬪) 속에서 꽃 피워진 고귀한 관계로 끈끈한 정(情)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 형제들이 비명을 지르며 불길 속에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았으며, 제 손으로 목숨을 끊어 안락사(安樂死)를 시켜야 하였다는 것이 그의 분기를 건드린 것이다.

“으드득! 어떤 놈들인지 모두 죽여 버리고 말겠어! 반드시...!”
“아앗! 저, 저기 적이닷!”

누군가가 손짓을 하며 소리치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천의장의 담장 위에는 청삼을 걸친 청년들이 도검(刀劍)을 뽑아든 채 즐비하게 서 있었다.

제법 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의 가슴에는 구름을 꿰뚫는 장검이 수(繡) 놓아져 있었다. 무림인들이 지옥견(地獄犬)이라 일컫는 정의수호대원들이 틀림없었다.

“크하하하! 더러운 쥐새끼들 같으니… 이곳에 숨어 있으면 우리가 못 찾을 줄 알았더냐?”

누군가의 입에서 나지막하면서도 살벌한 음성이 터져 나오자 왕구명이 한 걸음 나서며 소리쳤다.

“네놈들은 누구냐?”
“크크크! 우리가 누구냐고? 본좌는 무림천자성 순찰원 제칠향 향주 섬도(閃刀) 맹후벽(孟厚碧) 어르신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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