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백혈병, 남자는 기억상실" 단골

의대생이 바라 본 대중매체 속의 질병

등록 2004.11.15 10:29수정 2004.11.1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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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꽃보다 아름다워>. 이 드라마에서 고두심씨는 '치매'를 앓는다.
KBS 2TV <꽃보다 아름다워>. 이 드라마에서 고두심씨는 '치매'를 앓는다.허미옥
드라마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질병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기억상실, 백혈병 정도로 종류가 단순했지만, 최근 치매, 백혈병, 해리성 기억 장애, 안암, 특발성 폐섬유증, 간질환 등 범위가 훨씬 더 넓어졌다.

하지만 <가을동화>의 송혜교처럼 드라마 속 예쁜 여주인공은 대부분 백혈병으로 '예쁘게(?)' 죽어 가고, <꽃보다 아름다워> <금쪽같은 내새끼> 등 가족애를 부추키는 드라마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치매 환자가 등장한다.

지난 13일 경북대 의대 강의실에서는 드라마 최대 출연 3대 질환을 재미있게 분석·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경북대 의대 학생회가 주최하는 제1회 동인학술제에서 김나영, 박혜영, 최소명(본과 2학년)씨는 드라마 속 질병 중 시민들에게 가장 익숙한 ▲치매 ▲백혈병 ▲해리성 기억장애 등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해당 질환에 대한 오해와 드라마 속 내용과 현실 치료와의 차이점 등을 설명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손예진- 진짜 알츠하이머병 맞나?

손예진이 실제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은?
손예진이 실제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은?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금쪽같은 내새끼>와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주인공은 치매의 한 종류인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 환자다.

가족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질병인 '치매'는 65세 이상의 10%, 80세 이상 노인층에게는 50% 이상 발병할 수 있지만, <꽃보다 아름다워>의 고두심씨처럼 40~50대에도 발생할 수 있다.

이날 발표자들은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주인공인 손예진이 알츠하이머병, 즉 노인성 치매 현상을 앓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발표자로 나선 박혜영씨는 "20대가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며 "세계적으로 보고된 최연소 질환자의 나이는 28살인데, 영화 속 주인공 손예진씨는 26세로 나온다"며 설정이 다소 현실성에서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치매에 대한 오해와 진실


또 이들은 치매에 대한 몇 가지 오해도 소개했다.

첫째는 "치매에도 약이 없다"는 말. 하지만 4명 중 한 명은 고혈압, 동맥경화 등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 치료를 받으면 예방할 수 있다. 또 "고스톱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종합적인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독서가 훨씬 더 효과가 좋다"고 밝혔다.

또한 "술이 치매를 재촉한다"는 속설에 대해서는 "적당한 음주는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며 "매일 1~3잔의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절반밖에 안된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한편 "건망증은 치매의 초기 증상"이라는 속설에 대해서는 "건망증은 일시적으로 기억을 못하는 현상이지만, 치매는 판단력과 통찰력 등 전반적으로 지적 능력에 이상이 있는 것"이라며 둘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백혈병, 여배우가 가장 예쁘게(?) 죽는 질병

드라마 <가을동화>의 송혜교처럼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가장 예쁘게 죽는 질병 중 하나인 '백혈병'. 드라마에서 이 질병에 걸리며 환자로부터 골수를 채취, 동일한 성질의 골수 기증자를 찾아 골수 기증 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 골수를 채취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은 항상 고통을 호소해 주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런데 골수를 채취할 때 정말 아플까?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골수는 엉덩이뼈에서 채취하기 때문에 통증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는 전신 마취로 수면 상태를 만든 다음 골수를 채취하기 때문에 아프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며 "일반적으로 골수 기증자는 다음 날 곧바로 귀가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골수를 채취할 때 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기 때문에, 골수기증자 또한 저만큼의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의 골수를 제공해야 된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 주인공이 가장 잘 걸리는 병, '기억상실'

현재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지성, <겨울연가>의 배용준 등 남자 주인공이 주로 앓는 병은 해리성 기억장애, 즉 기억상실이다.

발표자들은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단골 질병인 기억상실증은 사실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시기로는 사춘기나 청년기에 잘 걸린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자들은 "대중매체 속의 다양한 질병 및 의료를 소개, 그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고, 그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현실 등 매체에서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점들을 한번쯤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이 학술대회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속 의료 정보, 많이 정확해졌다"

▲ 좌측부터 김나영, 박혜영, 최소명씨
'드라마 속의 질병'을 준비·발표한 김나영, 박혜영, 최소명(본과 2학년)씨를 만났다.

- '드라마속의 질병'을 준비하게 된 계기는?
"학술제를 개최하면서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를 찾다 보니 이 주제를 고민하게 됐다. 사실은 드라마를 많이 보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준비했는데, 이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아 다소 아쉽다."

- 드라마 최다 출연 3대 질환을 '치매, 백혈병, 해리성 기억장애'로 정리했다.
“특별한 기준이 있었던 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질병이기도 하고, 드라마 홈페이지나 인터넷을 뒤져 보면 이와 같은 질병이 주로 거론된다. 예전에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앓는 병은 주로 기억상실, 백혈병 등으로 한정되었지만, 최근에는 안암, 특발성 폐섬유증, 간질환 등 많은 병명이 등장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쉽게 시민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질병을 골랐다."

- 드라마속에서 의사들의 진료 장면이 많이 나온다. 오류나 수정할 점이 있다면?
“요즘은 인터넷이 워낙 발달했기 때문에 조금만 오류가 있어도 게시판에 많은 의견들이 등록된다. 드라마를 만들 때 아마 전문가 자문 등을 많이 구하는 것 같다. 그래도 조금씩 실수는 보이는데 <남자가 사랑할때>라는 드라마에서 박예진은 난소암에 걸린다. 원래 의사는 병명을 본인에게만 알리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박예진의 애인인 고수에게도 이 병명을 알리는데 그것은 원칙에 위배된다."

- 최근 드라마 주인공으로 의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너무 현실과 동떨어지게 의사는 무조건 좋다라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 같다. 의사라는 이미지가 좋기는 하지만, 현실은 너무 힘들고 고달픈 직업이다. 이 점을 고려해줬으면 한다." / 허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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