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에는 멀쩡해도 속은 곪아 들어가요"

[현장탐방] '속옷가게 아줌마' 동네 사람들의 분투기

등록 2004.11.18 23:10수정 2004.11.1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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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속옷가게 아줌마' 이은화씨가 운영하는 할인매장. 매장이 위치한 인천시 연희동은 겉보기엔 보통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동네다.

'속옷가게 아줌마' 이은화씨가 운영하는 할인매장. 매장이 위치한 인천시 연희동은 겉보기엔 보통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동네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이은화씨 가게가 있는 인천시 연희동에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있다.

이은화씨 가게가 있는 인천시 연희동에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속옷가게 아줌마' 이은화(43)씨가 분투하는 인천시 서구 연희동. 겉보기엔 보통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동네다. 이씨가 엄살을 피운 것은 아닐까.

그러나 노란 도시가스 계량기를 열어보면 평범하지만은 않다. 한 빌라의 총 8가구 중 4가구의 가스관에 가스가 끊겼음을 알리는 '주의' 딱지를 볼 수 있다. 또 여기저기 경매에 붙은 집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화요금을 못내 한국통신으로부터 전화가 끊긴 집도 쉬 찾을 수 있다. 전기요금도 마찬가지. 이씨 역시 거기에 속한다.

<오마이뉴스> 취재진이 18일 오전 이씨의 동네를 찾았을 때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사정이 힘든 이씨가 사는 곳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중산층 동네였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씨와 같이 힘겹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

오마이뉴스는 '속옷가게 아줌마'의 동네를 찾아 이곳 사람들의 어려운 삶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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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 멀쩡! 하지만 속은 곪아있는 서민들

"작년 여름 지나면서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잘 될 때의 50% 수준도 안 팔려요. 이걸로 생활이 전혀 안되지요. 3개월째 전화비를 안 냈더니 전화가 끊겼고요, 냉장고도 손님이 오기 시작하는 정오께나 틀기 시작하죠. 전기세라도 아껴야 하니까…"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박광수(40)씨. 그의 가게를 처음 들어서면 '슈퍼마켓 치고 썰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라면이 쌓여있어야 할 진열장에 하얀 바닥이 보인다. 여성용 생리대 역시 많지 않다. 유일하게 "매출이 별로 줄지 않았다"는 담배나 술 역시 없는 품목도 보인다.


"살면서 전화가 끊기고 전기세를 못 낸 적은 처음입니다. 생활을 유지해야 하니까 물건을 떼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없는 물건들이 늘어나는 것 같고… 동네 사람들 중 한 두 번씩 저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사실 겉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 것 같은 동네지만 속은 텅 비었죠."

박씨는 "빈집도 점점 늘어가고 심지어 경매로 내놓은 매물도 많다고 들었다"며 "물가가 너무 올라가니까 장사하는 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싼 데 간다. 정부는 물가를 좀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a 인천시 연희동에서 3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박광수씨. "요즘 벌이가 영 시원치않아 밀린 전화요금도 못내고 있습니다."

인천시 연희동에서 3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박광수씨. "요즘 벌이가 영 시원치않아 밀린 전화요금도 못내고 있습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인천시 연희동에 있는 한 빌라 가스배관실을 열어보니 총 8가구 중 4가구의 가스관에 가스가 끊겼음을 알리는 '주의' 딱지가 붙어 있다.

인천시 연희동에 있는 한 빌라 가스배관실을 열어보니 총 8가구 중 4가구의 가스관에 가스가 끊겼음을 알리는 '주의' 딱지가 붙어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슈퍼마켓을 나와 조금 걷다보면 복권방을 만날 수 있다. 자영업을 하다 지난 9월 복권방을 시작했다는 주인 박아무개씨는 "예전에는 복권 사는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라 생각했지만 이 동네 사람들의 복권사는 모습은 애절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숫자 하나하나 지워나갈 때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복권당첨금을 불로소득이라 매도할 수만은 없다"며 "도회지를 피해 이 동네까지 오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부동산 업자 "집값 잡으려다 서민들이 잡혔다"

이씨의 속옷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부동산을 경영하는 이혜경(42)씨도 "매매시세가 아예 없다"며 불황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가난한 서민들은 목돈을 마련할 수 없어 매달 나가는 집세를 감수하면서도 월세집을 찾는다"는 박씨는 "정부가 집값을 잡으려다 서민들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 동네 사람들은 담보 잡힐 것이 없어 살던 집을 내놓는다"며 "올해 경매로 넘어간 세대가 셀 수 없다"고 장부를 넘기며 설명했다.

작년 3월부터 부동산을 시작한 이씨는 "작년에는 전세 3000만원 이하 물건도 없었는데 요즘 시세가 확 떨어져 2000만원∼2500만원 선이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며 "부동산 경영하면서 서민 경제의 어려움을 통감한다"고 고백했다.

a 동네 슈퍼마켓에 들여놓은 배추를 한참 둘러보던 주민들이 1000원짜리 배추 1포기를 손에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동네 슈퍼마켓에 들여놓은 배추를 한참 둘러보던 주민들이 1000원짜리 배추 1포기를 손에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우체국 집배원 조남훈씨. 경기불황 탓에 납부 독촉 등 안좋은 소식을 전하게 될 때는 조씨 기분도 착잡하다고 말했다.

우체국 집배원 조남훈씨. 경기불황 탓에 납부 독촉 등 안좋은 소식을 전하게 될 때는 조씨 기분도 착잡하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연희동에서 4년째 주식인 쌀가게를 운영하는 김아무개씨 역시 "쌀 사는 사람이 확 줄었다"며 "가게를 연지 오래돼 단골손님이 꽤 되는데도 매출이 50%가량 줄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식당에서 쌀을 많이 사줘 다행이었는데 그마저 폐업이 많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의 가게에 쌓여있는 쌀 포대는 대부분 20kg짜리. 하지만 열려 있는 포대도 보인다.

"4만8000원인 쌀 한 포대를 한번에 사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봉지로 팔고 있어요. IMF 때보다 더 힘들어요. 서민경제가 확실히 어려워졌죠. 일반 가정집에서도 밥을 적게 먹는지 평소보다 30%는 넘게 줄었어요."

"일반 가정집 쌀 판매율도 30% 이상 줄어"

'속옷가게 아줌마' 이씨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내 기사를 통해 국민 10명 중 1명이 아닌 2명, 3명 이상이 힘들게 산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의 근거는 동네사람들에게로부터 왔던 것이다.

이씨는 "우리동네 사람들은 표현은 안 하지만 상처를 받고 있다"며 "극단적으로 어려워지는 서민경제의 현실은 바로 우리동네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만났던 한 자영업자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2004년 현재 한국은 최빈곤층과 극단적인 상류층만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전기 끊기고 전화 못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자식들이 상처를 받을까 걱정일 뿐이다. 어떻게든 벗어나겠지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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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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