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향군인회 홈페이지에 나온 '재향군인회법' 중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3조.(빨간줄로 표시된 부분)
재향군인회 홈페이지
재향군인회, 정치활동 논란 이어져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태극기가 인공기가 되고, 김정일이 통일대통령이 되며,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친북 좌익세력들이 벌떼처럼 나타난다. 시청앞 광장은 인공기로 뒤덮이고 친북·좌경 세력에게 이 나라를 넘겨줄 것이다. (국보법 폐지를)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막아내야 한다."
이상훈 대한재향군인회 회장이 지난 10월 4일 '국보법폐지 반대국민대회'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재향군인회가 단체차원에서 동참한 이날 대회는 명목상 '국보법폐지 반대' 집회였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노무현 정권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심지어 '노무현 정권 끝장내는 날'이라는 등 노골적인 발언까지 등장했다.
이에 대해 지난 10월 7일 문학진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무위 국감장에서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에게 재향군인회의 당시 행사 참석을 지적하며 "정치활동 금지 규정을 어겼기 때문에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박 처장은 이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훈처측에 따르면, 집회에 앞서 이 회장에게 두 차례에 걸쳐 집회참가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지만 이 회장은 참가했다. 즉 이 회장은 감독기관의 경고를 무시한 셈이다.
이 사안을 담당했던 문 의원의 비서관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향군 완장을 찬 회원들이 '노무현 물러가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며 "참가단체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한 집회에서 이 회장의 발언과 회원들의 피켓, 구호 등을 종합해보면 이들은 정치활동을 한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보훈처는 재향군인회측에 '정치활동을 자제해달라'는 주의서한을 보냈으며, 이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재향군인회의 정치활동 논란은 이전부터 계속돼 왔다. 향군 회원들이 '정권 타도', '노무현 물러가라'는 등의 피켓을 들고 있는 장면은 보수집회에서 자주 목격된 바 있다.
특히 올 초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뒤 재향군인회 회원들은 '탄핵찬성 집회'에 더러 참석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23일 당시 고건 총리가 이 회장 등 향군 원로를 만나 탄핵찬성 집회 참가 자제의 뜻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조차 현정권에 대한 '전면전 선포'라고 보도했던 1500여명의 사회원로들의 '9·9 시국선언'에도 이 회장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지난 10월 4일 `대한민국수호 국민대회`가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친 뒤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시도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중 군복은 입은 참가자들이 '노무현 물러가라'는 문구가 새겨진 피켓을 들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400억 정부지원 받는 향군, "노 정권 반대"
재향군인회 "정치활동 한 적 없다" 반박
그러나 재향군인회는 '정치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재향군인회 설립목적 중 하나가 호국·안보활동"이라고 전제한 뒤 "지난 10월 4일 행사에 참여한 이유도 국보법 폐지가 국가 안보를 위해하는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에 참여했을 뿐 정치적인 문제는 배제했다"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시 한기총 등 일부 단체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다보니 마치 우리가 정치적으로 개입했던 것으로 비쳐졌다"며 "지금까지 국가보훈처에서도 (재향군인회가) 정치적 활동을 했다는 지적은 한 적이 없다"고 정치활동설을 일축했다.
그는 특히 보수집회의 단골손님인 서정갑 국민행동 위원장(대령연합회 회장)를 거론하며 "서 위원장은 향군과 전혀 관계가 없다"며 "참가단체에 대령연합회 등이 포함되는데 향군과 관계가 없는 단체다.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우리는 성명, 집회 등을 통해 '안보'를 강조했지만 현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친북적, 좌파적이라는 지적은 한 적이 없다"며 "다만 우리는 650만 역전의 용사들이 모인 결집체로 생사고락을 함께 한 모임으로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부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향군인회는 최근 '정치활동 논란'에 대해 지난달 29일 성명을 통해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향군을 부당한 특혜집단으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며 "압박을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오고 있는 안보단체인 향군에 대한 길들이기 작업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향군은 정부를 대행해 불우회원의 생계보조 지급, 호국용사 묘지 조성, 한국군 참전 외국군 방한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고 거듭 밝혔다.
| | 언론인 집앞 '칼럼 항의' 집회도 안보활동? | | | |
| | | ▲ 재향군인회 본부에서 서울지부에 보낸 '손석춘 위원 규탄시위' 관련 공문 | ⓒ오마이뉴스 | 재향군인회의 정치활동 논란의 불을 지폈던 집회 중 하나는 지난 2월 5일 손석춘 한겨레 논설위원 자택 앞 시위였다. <오마이뉴스>의 고정칼럼니스트이기도 한 손 위원은 1월 31일자 '추기경의 근심, 백성의 걱정'이라는 칼럼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을 비판했다.
이에 재향군인회를 비롯해 해병전우회, 고엽제전우회 회원 등 100여 명은 며칠 뒤 손씨의 서울 동작구 자택 앞에서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는 좌파인물을 즉각 파면하라', '친북 반미 조장하는 손석춘을 타도하자'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집회를 가졌다.
최근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좌파언론인 손석춘 규탄 시위계획(하달)'에 따르면, 이 공문은 재향군인회 본부에서 서울시회에 하달한 것으로, 구체적인 시위계획이 담겨있다.
특히 시위 목적이 ▲국가원로 김수환 추기경의 우국충정 고언에 대한 비방 칼럼 항의 ▲반미운동 적극 전개 선동에 대한 항의 ▲무분별한 좌파세력의 발호 경고 및 차단 등으로 돼 있어 이 행사가 정치활동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집회 계획에는 일시, 장소, 참가인원 등을 정확히 명시하고 있으며, 성명서, 구호제창 등 집회내용도 상세히 소개돼 있다. 또 참가인원은 향군본회 20명을 비롯해 동작구 회원, 해병전우회, 향군기동단, 향군여성회, 고엽제전우회, 이나시오 등에 할당돼 있다.
이에 대해 손 위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경찰에서 집을 비우라고 해서 가족들과 피했으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전화도 많이 받는 등 부담스러웠다"고 당시 심경을 밝히고는 "언론인의 칼럼을 문제삼이 집앞에까지 와서 대규모 항의집회를 연 것은 일종의 폭력행위"라고 밝혔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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