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도 없이 수백억대 물품 제조?
편법으로 하청 주고 수수료 '꿀꺽'

[집중해부-'공룡' 재향군인회 ④] 직영 수익사업체의 실체

등록 2004.12.14 19:05수정 2004.12.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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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들의 친목단체로 매년 거액의 국고를 지원 받고 있는 재향군인회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언론보도와 감사자료 등에 따르면, 재향군인회는 수의계약으로 특혜시비를 빚고 있으나 감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밖에도 부실한 재정관리와 산하기관들의 부실경영 등이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거대공룡' 재향군인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집중해부하는 한편 바람직한 예비역 단체의 모델을 모색하는 특별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a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1057-2번지에 위치한 (주)조양 공장. 공장 입구에는 재향군인회 제조사업본부 중전기 사업단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1057-2번지에 위치한 (주)조양 공장. 공장 입구에는 재향군인회 제조사업본부 중전기 사업단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 오마이뉴스


재향군인회 집중해부 2탄이 보도된 후 <오마이뉴스>는 두 건의 제보를 받았다. 두 건의 제보메일은 모두 재향군인회가 불법적인 사업형태로 수익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첫 메일에 담긴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제가 알기로는 재향군인회에 8개 사업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름만 직영이지, 각 지자체에서 수의계약으로 일을 따와서 (그것도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만) 상당한 금액(15% 내지 20%)를 떼어먹고 이 회사로 그냥 몽땅 넘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위장업체이죠. 확인 한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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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메일도 내용은 유사했다. 하지만 좀더 구체적이었다. 이를 토대로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은 확인취재에 돌입했다. 특히 조달청, 한국전력과 수의계약을 체결해 각종 전기관련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재향군인회 제조사업본부 중전기 사업단에 주목했다.

직원이 12명(국가보훈처 감사결과 자료, 국가보훈처의 다른 자료에는 379명으로 등재)에 불과한 재향군인회 제조사업본부가 수 백억원대의 전기 관련 제품을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확인 결과 재향군인회는 약 10년 동안 재향군인회 '중전기 사업단'이라는 위장형 사업부서를 설립하는 등의 편법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수익사업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인 경우가 배전반을 주요 국가기관에 납품하고 있는 (주)조양과 재향군인회간의 '결탁' 사례였다. 95년 국가보훈처 산하 기관으로 옮겨오면서 수익사업이 가능해진 재향군인회는 공장 설립이라는 '정공법' 대신 공장 임대를 통한 '위장 하청'이라는 방식을 통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6조 8항 '다'는 '특별법으로 설립된 법인이 당해 법률에서 정한 사업을 영위함으로써 직접 생산하는 물품의 제조·구매 또는 용역계약을 하거나 이들에게 직접 물건을 매각 또는 임대하는 경우'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재향군인회가 수의계약 방식으로 정부 관련 기관에 물품을 납품하기 위해서는 재향군인회 소유 공장에서 직접 생산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재향군인회는 이러한 현행 규정을 교묘히 피해가며 수익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a 한국산업단지공단 안내판(왼쪽)에는 606-1번지에 (주)조양이 입주해 있다고 적혀있는 반면, 공장입구에는 재향군인회 중전기사업단으로 명기돼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안내판(왼쪽)에는 606-1번지에 (주)조양이 입주해 있다고 적혀있는 반면, 공장입구에는 재향군인회 중전기사업단으로 명기돼 있다. ⓒ 오마이뉴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일 재향군인회 중전기사업단 공장이 있는 안산 반월공단을 직접 찾았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1057-2번지에 위치한 중전기사업단 공장에는 배전판을 가득 실은 대형트럭 두 대가 내부에 대기하고 있었다.


허름한 붉은 벽돌 차림의 이 공장 입구에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재향군인회 중전기 사업단 공장'이라는 문구가 또렷이 새겨진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이 사업단의 공장이라는 표시였다.

하지만 이 입간판 이외에 재향군인회 공장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만한 증거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조양 공장 소재지임을 확인하는 자료들이 넘쳐날 뿐이었다. 공장 인근에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설치해놓은 공단 안내판에도 (주)조양이라고 분명히 새겨져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재향군인회 중전기 사업단 공장 부지와 건물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동산 등기부 등본과 법인 등기부 등본을 확인해 봤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1057-2번지 건물과 토지 모두 (주)조양의 소유로 기록돼 있었다. 88년 소유권 보전 등기 이후 줄곧 (주)조양의 땅이고 집이었다.

법인 등기에서는 이상한 점이 한가지 더 발견됐다. (주)조양의 '주인'이 제보자의 진술과 달랐던 것. 등기부 상 (주)조양의 대표이사는 나아무개(37)씨이지만 실제 소유주는 조아무개씨라는 것이 제보자의 주장이었다. 나씨는 현재 (주)조양의 부장직으로 근무중이라고 전했다. <오마이뉴스> 기자는 (주)조양에 직접 전화를 걸어 나씨와 통화를 시도했다.

첫 번째 통화에서 <오마이뉴스> 기자가 "나아무개씨 계신가요?"라고 전화를 받은 한 여직원에게 묻자, 이 여직원은 "나 부장님 지금 검수하러 나갔는데요"라고 답변했다. 나씨가 현재 부장으로 재직중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시간 여 뒤 두 번째 전화통화에서 나씨와 직접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나씨는 "대표이사로 등록돼 있던데 어떤 이유 때문인지 듣고 싶다"는 기자의 질문에 "무슨 일 때문에 그런가, 그렇게 돼 있는 것 자체가…"라고 말끝을 흐린 뒤 "다음에 연락을 달라"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나씨가 현재 (주)조양의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주)조양의 소유주가 아님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a 법인 등기부에는 나아무개씨가 지난 4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것으로 등기돼 있다. 등기와 말소를 거듭했던 (주)조양의 실제 소유주인 조 아무개씨는 현재 중전기 사업단장이라는 비공식 직함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 등기부에는 나아무개씨가 지난 4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것으로 등기돼 있다. 등기와 말소를 거듭했던 (주)조양의 실제 소유주인 조 아무개씨는 현재 중전기 사업단장이라는 비공식 직함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오마이뉴스

그렇다면 (주)조양의 실질적인 소유주인 조아무개씨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취재결과 조씨는 현재 재향군인회 중전기 사업단장이라는 비공식 직함을 사용하고 있었다. 조달청 물품 납품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실질적으로 (주)조양의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주)조양의 실질적 소유주인 조씨가 부장급인 나씨를 대표이사로 등기시켜놓고 재향군인회 중전기 사업단장이라는 직함을 받는 등의 '용단'을 내린 배경은 제보자들의 진술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중소업체가 정부를 상대로 직접 수의계약을 따낼 수가 없습니다. 대신 재향군인회는 가능하지요. 중소업체의 사장은 5%에 달하는 일종의 알선료를 보훈기금 등의 명목으로 재향군인회에 지급하고, 재향군인회는 수의계약을 도맡아 중소업체에 사업권을 넘기는 식입니다. 사실 재향군인회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매출의 5%의 수익을 챙기는 셈입니다."

알선료 비율에 대한 증언은 조금씩 엇갈렸지만 제보자들은 제조사업본부 내 주요 사업단들이 모두 이러한 형태로 현재 공공기관에 물품을 납품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토를 달지 않았다. 예를 들면, J산업 등이 이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공공기관에 납품을 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재향군인회는 직영 수익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중전기 사업단이라는 '껍데기' 부서를 만들어 특정 중소업체에게 알선료를 받는 조건으로 수의계약의 '열매'를 나눠먹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6조 8항 '다' '수의계약에 의할 수 있는 경우'의 '직접 제조'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다만, (주)조양으로 대표되는 중소설비업체와 재향군인회는 공장 임대차 계약서를 체결, 재향군인회가 직접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법망을 피해나가는 노련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재향군인회쪽은 이같은 사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재향군인회 제조사업본부의 한 관계자는 1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답변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향군과 관련사항이 아니다"고 밝히고는 "그런 부분은 (향군을) 방문을 하거나 공문으로 물어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다.

올해 4월 재향군인회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국가보훈처 감사담당관실도 반응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재향군인회 감사를 담당했다던 보훈처 감사당담관실의 한 관계자는 1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 부분(불법 하청)은 우리의 감사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재향군인회에 내려보내 준 보조금의 집행관계를 주로 본다"며 "재향군인회 자체 예산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의 다른 한 관계자는 이같은 공장 임대차 계약을 통한 사실상의 하청관계를 '직접 제조'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수의계약 체결의 당사자인 조달청은 서류자체로서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국가보훈처가 인증한 공장등록서류까지 제시한 마당에 조달청이 수의계약을 거부하기는 힘들었다는 것.

조달청 기전구매과의 한 관계자는 "재향군인회가 수익사업을 하기 위해서 (주)조양이라는 설비 업체를 임대하지 않았느냐"며 "우리는 거기서 생산하는 것을 납품하겠다고 해서 실태조사를 해 서류를 받아 수의계약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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