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동서울 터미널 앞에서 휴가 복귀를 앞둔 군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강이종행
"회원 여부는 개인에게 맡겨야"
과연 현역 군인들은 재향군인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17일 서울 동서울터미널과 상봉터미널에서 30명의 현역 군인을 만나 재향군인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중 15명은 전역일을 앞둔 소위 '말년 병장'이었다.
대부분은 재향군인회를 모르고 있었다. 또 알고 있다고 해도 어떤 단체인지 모르고 있었다. 최전방 GOP초소에서 근무한다는 유아무개 상병은 "TV에서 보수단체 시위하는 장면을 봤는데 전투복 입은 어르신들이 피켓 들고 있는 것을 봤다"며 "아마 재향군인회 회원분들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향군인회에 대해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제대와 동시에 준회원에 자동가입되는 것은 금시초문. 군인들은 회원 가입절차와 회원의 종류 등을 설명하자 대부분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자신들이 포함된 성명서를 낸다는 것에는 거의 모두가 불쾌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음날 전역한다는 강아무개 병장은 "군에 있을 때만 해도 이라크 파병에 찬성을 했지만 최근에는 반대한다"며 "재향군인회에서 파병에 찬성하는 입장을 낸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장 진급을 한 달 앞둔 이아무개 상병은 "개인의 생각은 묻지도 않고 마치 전부의 의견인양 성명을 낸다면 큰 문제"라며 "어떻게 700만명 회원의 의견이 같을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포항에서 근무하는 해병대 고아무개 일병은 "내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자동가입도 무관하다"면서도 "정치집회나 성명서에 준회원까지 포함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역이 일주일 남았다는 이아무개 병장은 "군사정권도 아니고 이렇게 불합리한 회원제도가 있다니 전역하자마자 꼭 알아보겠다, 되도록 회원가입 자체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알아보고 진짜면 탈퇴하고 싶다"
이런 반응은 이미 군을 다녀온 '예비역'들도 다르지 않았다. 같은날 광화문에서 만난 10여명의 예비역 중 김아무개(32, 직장인)씨는 "(향군이)보수집회에 자주 등장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지 몰랐다"며 "회원가입 여부를 알아보고 진짜면 꼭 탈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진(31, 직장인)씨 역시 "당연히 가입 여부는 본인에게 의사를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제도로 돼 있다면 규정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법개정을 주장했다.
87년 대위로 제대한 윤아무개(47, 개인사업자)씨는 "현재 재향군인회는 보수집회에 노인들 동원하는 정치적인 관변단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젊은 사람들이 이런 단체에 들어갔나, 준회원 역시 본인의 가입여부 의사를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월남전을 포함 4년 동안 군생활을 했다는 택시 운전사 문학선(63)씨는 "재향군인회에서 회원들을 얼마나 돕고 있는지 모르지만 회원들에게 제대로 해준 게 뭐가 있나"고 흥분하며 "지금까지는 일부 장군 출신만의 향군이었지 전체 전역자를 위한 대표가 되기에는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김현미 의원 "의도 상관없이 향군 편입, 위헌 요소 담고 있어"
향군 "준회원에게 권리와 의무 없다"
이렇게 재향군인회의 회원가입 절차와 대표성의 문제에 대해 김현미 열린우리당 의원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향군에 편입되고 지도부가 보수집회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냈을 때 회원들 이름을 걸고 나간다면 절차상의 문제 생긴다"며 "이는 위헌적인 요소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생각과 행동이 차단되고 생각과 반하는 내용이 담겨 있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향군 정관 4조에는 회원을 위한 복지증진, 직업안정 등이 주요사업이라고 나와있는데 과연 그들 주장대로 700만명의 회원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업을 하는지"라며 "예산현황을 보면 복지증진을 위한 지출은 극히 적고 나머지는 운영비로 쓰인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어 "이는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형태"라고 못박은 뒤 "400억원이라는 보훈기금이나 국고보조를 받는 재향군인회가 회원에게 모두 혜택이 돌아가는지 감사원 감사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준회원에게는 재향군인회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700만명 회원의 이름을 걸고 성명을 내지 않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자격이 주어질 뿐"이라고 얼버무렸다.
| | | "향군회비 안내면 남편 잡혀가요" | | | 군사정권 시절 웃지 못할 향군회원 만들기 | | | | 최근에는 그런 일이 없지만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거의 모든 예비역이 '재향군인회' 회원이었다. 예비군 훈련 때나 동사무소 방위들이 회비를 걷었기 때문. 그러나 군생활을 끝낸 예비역들은 쉽사리 회비를 내지 않았다. '군에서 고생했는데 사회 나와서까지 군 관련 단체에 가입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컸을 것. 때문에 회비를 걷어야 했던 동사무소 방위들이나 예비군 동대장 등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회비를 따냈다.
80년대 초반 방위생활을 했던 조아무개씨는 향군회비가 걷히지 않자 낮에 예비역들의 집을 방문했다. 남자들이 없는 집에는 그의 어머니나 부인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조씨는 "재향군인회 회비를 내지 않으면 아들(혹은 남편) 잡혀간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고 한다. 서슬퍼랬던 시절 아들(혹은 남편)을 걱정하는 여성들은 십중팔구 회비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90년대 후반 군복무를 마친 김모씨는 3박 4일 동안의 동원예비군 훈련에 들어갔다. 열심히 훈련을 받고 난 뒤 교통비를 받게 된다. 조교는 예비군들에게 "향군 회비를 내야 하는데 교통비에서 제하고 드린다"는 말을 듣는다. 무슨 소리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빨리 집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그냥 넘어갔다고. 그 때 떼어졌던 1천원은 재향군인회 연간회원 가입비였다.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최근에는 이렇게 억지로 정회원으로 만드는 행위는 할 수 없다고 한다. 워낙 불만이 많기 때문이라고.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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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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