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재판장 조관행 부장판사)가 지난달 5일 담배소송 관련 감정서의 '요지서'를 법원출입기자들에게 배포해 편파시비를 일으키고 있다.오마이뉴스 안홍기
"법원에 부과된 법률에 따른 책임을 회피한 것일 뿐만 아니라, 기피신청 재판결과에 따라 민사합의12부 소속 법관들에게 내려질 공식적인 평가를 모면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제식구 감싸기'와 '책임회피'를 위해 변칙적 방식을 고안해냈거나 기피대상자가 제의한 방식을 수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법원이 '자율규제'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 기관인가라는 의심을 더욱 깊게 한다."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최근 '담배소송' 관련, 원고측 변호인단의 재판부 기피신청이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편법처리되자 법원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법원은 원고측 변호인단이 11월 1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재판장 조관행 부장판사)를 상대로 제기한 '재판부 기피신청'을 한달여간 진행하지 않다가 지난 6일 기피신청 절차와 상관없이 해당 재판부 의견을 갑자기 받아들여 '편법처리'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조국 서울대 법대교수)는 8일 논평을 통해 "이번 일은 법원이 스스로 '재판부 기피신청'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담배소송'과 관련해 기피신청대상이 된 재판부가 사건 재배당을 법원장에게 자진 요청함으로써 다른 재판부가 재판을 맡게 됐고, 이로 인해 소송당사자가 제기한 기피신청 재판은 자동적으로 각하될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는 특히 "공정한 재판을 해줄 것이라는 신뢰를 잃은 재판부가 교체됐다는 점과 별개로 법원이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적으로 소송당사자가 제기한 재판부 기피신청을 처리했다는 점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통상 법원은 소송당사자로부터 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이 접수되면, 민사소송법 제46조에 따라 '제척 또는 기피신청에 대한 재판' 절차를 통해 소송당사자가 제기한 '기피신청'을 처리해야 한다.
변칙처리 방식과 함께 관련자 사직만으로 문제를 종결지어온 법원의 기존 행태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참여연대는 "법조인윤리 관련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내부 징계절차를 거치기 전 임의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종결짓는 것을 수 차례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또 "법원은 민사소송법 등에서 규정되어 있는 '재판부 또는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제도'를 빈껍데기로 만들어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 "재판부 기피신청과 함께 소송당사자가 제기해둔 '재판부 징계요청'을 대법원이 과연 정상적인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지 걱정스럽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원고측 변호인단 "법원이 과오 뉘우치지 않고 권위만 세우려는 태도"
이에 대해 원고측 변호인단은 "법원은 소송 자체를 다른 재판부로 옮기면 자연스럽게 기피신청이 각하될 것을 노렸던 것 같다"며 "기피신청 절차를 진행하면 분명 해당 재판부 과실이 드러날 것으로 판단해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원고측 변호인단은 "재판부의 인사이동이 있지 않는 상태에서 사건을 재배당하는 사례는 있을 수 없다"면서 "법원이 일방적으로 담배소송 사건을 재배당한 것은 기피신청 재판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반발했다.
또 원고측 변호인단은 "이런 식으로 담배소송 심리를 다른 재판부에 재배당하면 앞으로 재판부가 당사자들에게 불신을 받아 기피신청을 당하게 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판사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원이 과오를 뉘우치지 않고 권위만 세우려는 태도는 오히려 우리나라 사법부 신뢰를 떨어뜨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모 변호사는 "이번 일은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든 법원의 신뢰에 큰 손실을 입힌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판결로써 말해야 할 재판부가 고의성이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요지서'를 낸 것은 재판부 의견을 표시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어 그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며 "결국 법원이 자신들 과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보다 모양새를 갖추면서 권위를 지키려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법원, 5년간 '재판부(법관) 기피신청' 수용한 적 없어
한편 법원은 지난 5년간 '재판부 기피신청'을 단 한차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99년 71건, 2000년 120건, 2001년 119건의 '재판부(법관) 기피신청'이 있었지만, 이를 받아들인 경우는 단 1건도 없었다.
일례로 '안풍사건'의 경우 피고인 변호인단이 제기한 '재판부(법관) 기피신청'이 대법원까지 갔으나 결국 '기각'됐다. 때문에 이번 '담배소송' 재판부에 대한 '재판부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법조인들의 전망이다. 이들은 만약 법원이 기피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결국 법관의 편파 판결 우려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이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을 보고 있다.
'재판부(법관) 기피신청'은 재판을 받는 당사자(원고 또는 피고)가 법관의 불공정한 재판이 우려될 경우 다른 재판부(법관)가 재판을 맡도록 해당 법원에 요청하는 제도로 재판 당사자가 해당 재판부에 기피신청을 하고 이에 대한 의견서를 3일내 제출하면서 시작된다.
기피신청이 접수되면 재판부는 신청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거나, 규정에 어긋나게 되면 '각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또 신청이유가 명백하지 않고 소송을 지연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면 '이유없다'는 기각결정이 내려지게 된다.
이후 해당 재판부가 신청인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담당 사건이 다른 재판부에 배당되게 된다. 그러나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각하나 기각 결정을 내려, 이에 신청인이 불복하면 '즉시 항고'를 하게 되고, 해당 법원은 다른 재판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기피신청'을 여부를 검토하게 된다. 이때 기피를 당한 재판부에서도 의견을 제출해야 하며, 의견제출 기한은 없이 조속히 제출토록 돼 있다.
다른 재판부에서도 사건이 기각되면 신청인은 고등법원에 '즉시항고' 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절차가 진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법관 기피신청'을 재판부나 법원이 받아들일 경우 법관의 편파 판결 우려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 | | 제2라운드 '법관징계요청'은 어떤 결과 나올까? | | | | 원고측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뿐만 아니라 재판장인 조관행 부장판사에 대한 '법관징계요청서'를 지난달 15일 대법원에 제출했다.
'법관징계요청서'에 따르면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작성한 감정서의 요지서로 인해 왜곡 보도 논란이 일자, 해당 재판부의 조관행 부장판사가 두 차례나 직접 원고측 변호사에게 전화해 장시간 동안 회유를 시도하는 등 재판장의 품위를 손상시킨 일들을 지적하고 있다.
원고측 변호인단은 8일 "법원이 사건을 재배당한 것과 관계없이 끝까지 진상을 조사해서 법관징계와 법관기피신청에 대한 정상적인 재판을 요구하겠다”며 “재판장인 조관행 부장판사가 사건을 무마하려고 전화한 통화내용을 녹음한 결과를 오늘 중으로 대한변호사협회 진상조사단에 제출할 것”이라고 강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회장 박재승, 이하 변협)는 지난달 23일 '담배소송'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의 재판장인 조관행 부장판사에 대한 원고측 변호인단의 '법관징계요청'과 관련해 대법원에 공정한 처리를 강력히 요청한 바 있다. 또 변협은 최근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고충처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 파악에 나섰다.
과연 법원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유야무야 넘긴 데 이어 이제 남은 '법관징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 더욱 주목된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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