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10회

[2부 : 그녀를 향한 이카로스]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4.12.19 22:29수정 2004.12.2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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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그리움 2


한쪽이
문득 반쪽으로 보여지는 어느 날
내 속 어디에선가
누군가를 애타게 소리쳐 부르고 있음을 목격하고
처음 몽정을 경험한 새벽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목이 터져라 불러대는 목소리
그러나 목이 쉰 까닭인지 방언으로 말함인지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안타까움

누구를

무슨 이유로 그다지 애절하게 소망하는 것일까?
정말


그리움 3

두 발로 걷지만 한 발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두 손을 내젓지만 한 손은 아직 못 찾은 느낌이다
새삼 또 "다른 나의 날개"를 그리어 본다
설레임, 그리움, 기쁨, 허망함‥‥‥
끝없는 만화경 속에서 파노라마가 과속으로 달려간다



그리움 4


나의 오늘은
화원(花園)으로 향하는 외줄기 오솔길이고 싶습니다
꽃씨를 흩뿌리는 마음으로
가슴을 마음껏 드러내놓고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그런 푸른 초장이면 좋겠습니다
설사 슬픔을 아로새긴 채
이름 없이 피었다 지는 들꽃이래도
사랑을 위해서는 그리하겠습니다


그리움 5

요즘 들어 부쩍 몽정이 잦아진 것을 보면
내 안에 있는 사랑의 거지가
되게 배고픈 모양이다
빛에 굶주린 어둠처럼
사랑 한 모금만 달라고 야단이다
잠자코 가만히 때를 기다리라는 나의 호통에
울면서 눈을 흘긴다

미지의 소녀여,
그대도 하늘빛 그리움에 애를 태우며
이 한밤을 눈물로 적시는가!

우리는 언제쯤 불로 만나
화산처럼 타오르며
언제쯤 물로 만나
강물처럼 동행할 수 있을까?


그리움 7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빛은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BLUE라는 단어 안에는
우울함이라는 뜻도 담겨서 일까

아직도 내 사전의 하늘색은 눈물빛이다
그것이 언제쯤이면 핑크빛으로 탈바꿈할까


그리움 8

한 줄기 된바람이 스치듯 다가오자
어느새 두꺼운 옷을 죄다 벗어버리는
겨울나무처럼
나도 그대를 만나면
이 외로움의 영어(囹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심장이 파열된 듯 정말 견디기 힘겨울 만큼
아프디 아픈 심혼(心魂)
이렇게까지 쓰리고 아린 것을 보면
분명 내 속에 진주가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그대를 위한 사랑의 진주가


그리움 9

손도 발도 없지만
푸른 뱀처럼
한 뜸 한 뜸 기어 돌담을 올라서는
담쟁이 덩굴

이쯤이면
온 담을 하늘처럼 바다처럼 다 덮은 것 같은데
왜 새들이 깃들지 않는 걸까?

정말 언제쯤이면
아름다운 새가 날아와
내 날개 아래 예쁜 둥지를 틀고
날마다 사랑을 노래할까?


그리움 10

시절은 바야흐로 봄날
새순은 돋아 하늘을 기다리고
봄비는 연둣빛 그 위를 감싸듯 적시고
꽃은 피어 아름다움과 향기로 벌나비를 부르고
벌나비는 입맛 따라 사랑 따라 꿀을 따기 바쁘고
저 - 눈과 가슴을 녹이는 꾀꼬리의 의상과 가락
동식물 할 것 없이 사랑으로 연출되는 봄날은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쌍쌍파티 연회장이다

그러나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도 찬바람만 쌩쌩 부는 한겨울의 여울터

그대를 만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고독을 짊어지고 사는
아틀라스다


이렇게 네 번째 편지까지는 나의 이름과 주소를 밝히지 않은 채 발송하다가, 마지막 다섯 번째 편지에서 비로소 나의 이름과 학과 그리고 주소를 밝히면서 그녀에게 만나자고 청했다.


초희씨에게 다섯 번째 띄우는 글월

사랑의 화인(火印)

도서관에서 내게 향한 너의 그윽한 눈빛
그 투명하고도 순결한 호수에
나는 헤엄에 서툰 백조처럼 빠져 버렸다
어쩌면 큐피드의 화살에 맞았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너만 보면 얼굴이 해처럼 달아오르고
가슴은 거센 파도로 일렁인다
죄진 사람처럼 주위를 살피고 말까지 더듬는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다
다 큰 아이가 이불에 지도를 그린
그 황당함으로
몸은 움직이지 못한 채
마음만 부산한
푸른 날의 뜨락



샬롬!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오늘 보내는 편지가 마지막입니다. 아쉬운가요? 아니면 시원하십니까?
저는 이것이 벌써 마지막 편지인가 싶어 아쉽다 못해 서운하기까지 하네요. 일년 내내 쓰라고 해도 기쁨(?)으로 감당할 텐데.

지난 네 번째 편지에는 제가 감동 깊게 읽었던 책과 좋아하는 음악 세계에 대해 말씀드렸지요. 잘 보셨나요? 초희씨는 주로 어떤 책을 즐겨 읽고 무슨 음악을 좋아하나요?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것을 보니 적어도 문학은 좋아하겠군요. 혹시 문학소녀입니까? 언뜻 보아 음악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저랑 얘기가 잘 통할 텐데. 무척 궁금합니다. 나중에 다 얘기해 주셔야 합니다.

저만 늘 이렇게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니까, 정직하게 말해서 재미가 적네요. 그래서 오늘을 끝으로 그동안 꼭꼭 감춰두었던 저의 이름과 주소를 공개하겠습니다. 그러니 이젠 종종 편지를 주고받자고요.

초희씨께서 저에게 편지를 주신다! 생각만 해도 하늘을 훨훨 날 것 같네요.

오늘은 그러면 무엇에 대해 말씀드리나. 진로, 취미, 특기, 집안, 종교 이미 다 말씀드렸고, 이제는 제 이름 석자 빼놓고는 솔직히 저의 글샘이 다 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바람에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네요.

이렇게 저의 글재주가 짧다니! 그런 줄도 모르고 내 딴에는 제법 쓴다고 우쭐했으니‥‥‥ 반성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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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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