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중인 정신대할머니를 기록하는 사람들

죽음의 문 턱에서 깬 그녀가 처음 들은 말 “할매, 담배값 올랐다“

등록 2005.01.08 21:30수정 2005.01.1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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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매 힘내세요' - 영상보기


김분선 할머니
김분선 할머니허미옥
지난 12월 29일 오후 2시경. 김분선 할머니가 의식을 잃었다.

"오늘 못 넘길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병실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초기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을 구성했던 초창기 회원들, 특히 김분선 할머니와 친했던 회원들이 서울에서 급하게 내려오고, 대구에 있는 많은 회원들도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10시경. 간호사가 좀 더 큰 목소리로 "할머니"하고 불렀다. 눈을 감은 채 사경을 헤매고 있던 김분선 할머니의 눈이 순간 '번쩍' 떠졌다.


'할매, 담뱃값 올랐다' - '할매 놀라게 하면 안 된다'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눈물에 젖어 환호성을 쳤고, 계속 '할매, 할매' 등을 외치다 급기야 "할매 담뱃값 올랐다"는 말에 병실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그리고 기쁨의 농담이 이어진다. "그러지 마라, 담뱃값 인상은 할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다." 등등


김분선 할머니 (1922. 10. 4)

만 15세에 군 '위안부'가 되다.

김분선 할머니는 1922년 10월 4일 경북 칠곡에서 태어나셨다. 몹시 가난했지만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았던 할머니는 열다섯이 되던 1937년, 마을 친구 셋이서 들에 나물 캐러 갔다가 고무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얘기에 속아 대만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대만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편지를 받고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라고 증언하시던 김 할머니.

그러나 할머니는 부모님에게는 고생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말해야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 이후 다시 마닐라로 옮겨간 할머니는 하루에 상대한 군인의 수가 30-40명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같이 있었던 여자들 중에서 죽거나 어디로 없어진 사람도 있었으며 사람에 시달리다 병이 나서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

이후 할머니는 한 일본인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2004년 대구 효목동 올케 댁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는 곽병원에서 입원중이다. / 자료제공 :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 시민모임
유독 담배에 집착이 강한 할머니, 하지만 그 담배로 인해 암을 앓고 있는 할머니를 깨우기 위해, 담배에 대한 이야기를 무의식적으로 외쳤다는 후문이다.

1박 2일 가을나들이에 함께 했던 김분선 할머니가 지난 해 11월6일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면서 병원으로 옮긴 지 20여일 째였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김분선 할머니를 방문하러 간 6일, 병실에는 몇몇 친척, 친구들과 사진작가 석재현씨 그리고 간병일지를 쓰고 있는 천윤정(경북대 간호학과 3)씨가 함께 있었다.

병상일지에 기록된 추억 -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삐뚤삐뚤 그렸다


위 : 김분선 할머니의 간병일자, 아래 : 김분선 할머니가 그린 글씨
위 : 김분선 할머니의 간병일자, 아래 : 김분선 할머니가 그린 글씨허미옥
최근 고령으로 인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정신대 할머니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박정희 국장은 "돌아가신 후 할머니들의 삶을 채록하고 기록하기가 너무 힘들었다"며 "남아있는 할머니 180여분을 통해서라도 정신대에 대한 진실을 남기고 일본과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김분선 할머니의 병상일지가 기록되고 있다. 그 일지에는 할머니 생일날, 새 옷을 입고 기뻐하던 모습, 몸 상태가 좋아지면서 삐뚤거리며 직접 그린 할머니 이름, 그리고 담배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할머니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12월 20일부터 간병일지를 쓰고 있는 사람은 경북대의 샌드위치 교육생인 천윤정(경북대 간호학과 3)학생이다.

"주로 할머니의 상태, 식사, 약, 소변과 대변 상태 등을 적고 있다"는 천윤정 학생은 "전임자가 적은 간병일지 중에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김분선 할머니가 직접 그린 자기 이름"이라고 했다.

"김분선 할머니는 글을 못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자원활동가가 할머니의 이름을 써주고, 할머니가 그 글을 따라 그림 그리듯 쓴 글을 보면서 가슴이 찡했다"고 했다.

천윤정 학생은 "연말에 연합뉴스에 보도가 나가면서 며칠동안 기자들과 사람들이 찾아오더니, 지금은 뜸하다"며 "할머니가 살아계신 동안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방문하고, 할머니를 지켜봐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긴박한 순간, 영상으로 남겼어요!"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박김기홍 간사

▲ 박김기홍 간사
지난 12월 29일, 긴박했던 순간을 영상으로 남긴 박김기홍(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간사. ‘할매, 힘내세요‘라는 4분 영상은 당시 상황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 어떻게 카메라를 들게 되었나?
“할머니의 일상을 계속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놀러갔을 때나 행사 때마다 그렇게 했다. 이날은 할머니 체온이 39도까지 올라가고, 산소량도 40%밖에 안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경황이 없어서 카메라를 못 들었는데, 박정희 사무국장님이 ‘촬영하자, 회원들에게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드리자‘고 해서 촬영을 시작했다.“

- 영상을 보니 '담뱃값 올랐다'는 말들이 많이 나오던데?
“김분선 할머니는 담배를 너무 좋아한다. 결국 담배 때문에 폐암을 앓고 있다. 10년 전부터 할머니를 알았던 회원들, 그들이 대학생 때부터 할머니는 그들과 담배를 피셨다. 그리고 거부감도 없었다.

사경을 헤매다 약간 정신이 돌아왔을 때 '담배'이야기를 하면 할머니가 벌떡 일어날 것 같다'고 회원들이 생각했던 것 같다."

- 4분이어서 좀 아쉽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 그동안 촬영했던 영상을 모두 편집해서 긴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일단은 긴급했던 상황을 회원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당시 상황을 담은 짦은 영상을 제작했다. 편집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다들 도와줘서 가능했다.” / 허미옥 기자

덧붙이는 글 | 허미옥님은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http://www.chammal.org

덧붙이는 글 허미옥님은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http://www.chamm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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