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110회

등록 2005.02.01 07:52수정 2005.02.0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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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설명하는 모용수의 얼굴엔 근심스런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확실히 무림은 크게 동요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담천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또 하나 특이한 인물은 금색가사를 걸친 라마승(喇嘛僧)이었소. 나이를 추측하기 힘들었는데 화기(和氣)가 충만하고 눈빛이 고요해 무공 수위를 추측하기 힘들었소.”


“그 노승의 눈썹이 금빛이고, 허리에 홍색띠를 두르지 않았소?”

“그런 것 같소.”

모용수는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 보았다가 담천의가 긍정을 하자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입을 연 사람은 남궁산산이었다.

“뇌음사(雷音寺)의 생불(生佛)로 알려진 삼존불(三尊佛) 중 금존불(金尊佛)일 거에요. 살아 있으면서도 이미 전설이 된 인물이지요.”

담천의는 모용수와 남궁산산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자신이 본 인물들은 하나같이 범상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을 상대로 위험한 줄타기를 했던 자신은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관왕묘 안을 휘저은 셈이다. 그와 함께 그는 뇌리 속에 해결되지 않는 의혹이 솟구쳤다.


(그런 인물들이 왜 나를 그냥 돌려보내 준 것일까? 더구나 초혼령까지 돌려주면서...?)

오독공자가 기습적으로 자신에게 제압되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 있었다. 그는 일단 의혹을 접고 다시 입을 열었다.


“섭노선배 옆에는 화려한 녹의(綠衣)를 입고 머리에는 금으로 된 장식을 꽂은 청초한 소녀가 그들 일행의 마지막일거요. 그들 일행은 일곱명이었지만 일행이라고 보기엔 놀랄만한 일행이 더 있었소. 바로 장안루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금적수사 부부요.”

그 말에 일행은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떠올렸다.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일이었다. 금적수사가 아무리 고강한 고수라 하더라도 섭장천과 금존불, 그리고 청마수 호광과 흑마조 형가위가 있었다면 제압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섭장천 일행이 금적수사 부부를 장악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헌데 어떻게 금적수사 부부가 멀쩡하게 오룡번을 가지고 장안루에 나타난 것일까? 섭장천 일행의 면면을 살펴보면 금적수사부부가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그들의 손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었다.

“확실히 금적수사 부부였소?”

모용수는 확인하듯 재차 물었다.

“한쪽 귀퉁이에 고개를 돌리고 기대어 있었기 때문에 눈여겨보지는 않았소. 하지만 옷차림은 분명 장안루에 나타났던 그대로였고 옆모습도 분명 그들이었소.”

일행은 담천의가 잘못 보았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보아 온 담천의는 사려가 깊고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세심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저렇듯 자신있게 말하는 것을 보아서는 분명 그 자리에는 금적수사 부부가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모용수가 탄식을 터트리며 뱉은 말이었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모두 오룡번을 가진 금적수사 부부를 쫒고 있었고 그들은 섭장천 일행의 수중에 있었다. 그렇다면 오룡번은 이미 섭장천 일행이 차지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면 철혈대주가 찢어버린 오룡번은 모두들 예상한 대로 가짜였나? 이미 진품은 섭장천 일행이 차지했을테고.... 쓸모가 없어진 금적수사 부부를 내세워 중인들의 이목을 속이고 유유히 사라졌다......? 완벽한 계책이로군. 그렇다면 금적수사 부부를 쫒고 있는 우리나 군웅들은 시간만 허비하며 헛짓을 하고 있는 셈이군.”

모용수가 중얼거리며 양손을 주물렀다. 비도를 날리기 전 손의 감촉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하여 준비하는 동작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그가 숙고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 그의 추리는 합리적이었다. 모든 정황을 보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헌데 무엇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빼내간 거지? 그렇다면 다른 인물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차지한건가? 재미있는 일이군.”

모용수의 중얼거림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말도 되었지만 일행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중얼거림은 담천의의 말에 의해서 중단되었다.

“모용형. 내 생각은 약간 다르오. 어떤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철혈대주가 찢어버린 오룡번은 진품이었을거요. 또한 금적수사 부부를 장안루에서 빼내간 자도 섭노선배 일행이었을거요.”

그 말에 모용수는 물론 일행은 모두 의아스런 모습으로 담천의를 바라보았다.

“담형. 섭장천 일행이 금적수사 부부를 놓쳤다가 다시 차지했다는 의미요?”

“아니오.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오. 하지만 그들 일행이 금적수사 부부를 놓치지는 않았을 거요. 그 자리에는 개방의 인물로 보이는 코가 빨간 노개와 금방 들어온 듯한 낭씨형제, 그리고 흑모전서黑毛田鼠)가 있었소.”

이제 일행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있는지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특히 모용수는 이제 고개를 아예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예상한 대로 역시 흑모전서 균달의 짓이었구려. 하지만 그까지 그 일행에 섞여있었을 줄이야....그들 일행이 장안루에 있었소?”

묻고는 있지만 이미 당시 장안루 안에는 섭장천 일행이 없음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모용수가 구양휘 일행을 기다리면서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을 파악하지 않을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당연히 보지 못했소.”

모용수는 고개를 끄떡였다. 무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으로도 능히 그가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모용수다.

“이제야 전체적인 윤곽이 흐릿하게나마 그려지는구려. 땅 밑으로 굴을 파 금적수사 부부를 빼 내갈 자는 오직 흑모전서 뿐이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오. 하지만 소제가 궁금했던 것은 흑모전서가 감히 철혈보에 정면 도전이랄 수 있는 짓을 할만큼 간이 크지 않다는 점이었소. 더구나 낭씨쌍살의 태도도 역시 기이하게 생각했소.”

낭씨형제가 당당하게 철혈대주에게 오룡번의 진위에 대해 따진 점도 의문이었다. 그들이 비록 누구라도 녹록하게 생각할 인물들은 아니었지만 철혈대주에게 정면으로 대들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아니 철혈대주에게 그렇게 대들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그들이 오룡번의 진위에 대해 따지자 좌중에서 혼란이 일어나면서 단혼연이 피어올랐고, 그 짧은 순간에 금적수사 부부가 바닥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결국 그들 뒤에는 섭장천 일행이 있었다고 생각 할 수 밖에는 없구려. 그들은 치밀하게 준비했고 흑모전서와 낭씨형제는 그 역할을 지나치게 잘 해냈던거요. 하지만 왜.... 왜 그들이 그토록 번거로운 일을 벌였느냐는 것이오. 이미 금적수사 부부를 장악했다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어야 옳았소.”

모용수의 말에 일행은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금적수사 부부가 장안루에 나타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점이 바로 그것이오. 그들이 그래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더구나 철혈대주의 손을 빌려 오룡번을 없애야 했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소.”

“담형은 정말로 오룡번이 진품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물론 그 안의 내용을 따로이 보관해 두었다면 가능하겠지만 말이오.”

모용수의 물음에 담천의 대신 남궁산산이 끼어들었다.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 날 왜 금적수사 부부가 장안루에 나타났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확실해지겠지만 그 날 금적수사 부부의 태도를 보면 그것이 진짜 오룡번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 날 금적수사 부부는 끈기있게 인내심을 보여주다가 단전이 파괴될 때야 비로서 절망스런 기색을 보였거든요.”

“무인에게 있어 단전이 파괴되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과 같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냐?”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그들이 장안루에 나타난 것은 오룡번을 철혈보에 돌려주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어차피 몸을 빼낼 수 있다면 거추장스런 오룡번을 돌려주는 편이 무엇보다 좋은 방법이죠. 그들을 쫒던 군웅들의 추적을 받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죠.”

“이미 내용을 빼낸 후에 말이지?”

“그렇죠. 금적수사라면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이니 이미 뇌리 속에 담았을지도 모르죠. 헌데 단전까지 파괴되자 그 모든 계획이 소용없게 되었고 죽음과도 같은 절망감에 빠진 거에요.”

남궁산산은 확실히 현명한 여자였다. 그녀는 중요한 단서 한두가지만 파악되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녀는 정확하게 상황을 추론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진한 부분은 있지만 그녀는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상황을 추론해낸 것이다.

“담오라버니가 저에게 장안루 안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묵고 있는 인물들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처음에는 기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담오라버니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지요.”

“그럼 그들이 이 장안루를 떠나지 않고 바로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말이냐?”

“이 시점에 있어 그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여기 말고 어디 있겠어요? 그들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눈에 띄기 쉽죠. 더구나 보물을 가진 자라면 되도록 현장에서 멀리 도망을 갈 것이라는 통념을 깨기 가장 좋은 곳이죠.”

그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흑모전서가 땅을 파서 도망갈 준비를 했다한들 수십리에 걸쳐 땅을 팔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지금 이 시점에서 그들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는 이곳이었다. 다만 가장 쉬운 일을 가장 늦게 깨닫는 것이 인간들의 본성이다. 특히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자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것이 확실하다고 믿을만한 증거가 나타났죠.”

“그들이 머무는 곳을 찾은 것이냐?”

모용수의 다그치는 물음에 남궁산산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예요. 주시해야할 곳이 다섯 군데예요. 별원(別院) 세곳과 객방 두곳..!”

“헌데 증거라니...”

“오늘 적령추살의 죽음이죠.”

“적령추살이 죽은 거와 무슨 상관이야?”

팽악의 말에 남궁산산 대신 모용수가 침음성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음.... 흑모전서 균달과 전독마조 척응은 죽마고우(竹馬故友)야.”

점차 가려져 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 같았다. 남궁산산이 말한 증거는 전독마조 척응과 일행인 도삼득이 떠나지 않고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보다 많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흑모전서 균달에게 있어 척응의 존재는 죽마고우 이상이었다. 그 사실은 곧 금적수사 부부를 균달이 빼내갔다면 척응과 반드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를 풀어내면 또 다시 의문이 떠올랐다. 모용수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휴우.....그런데 홍비개(紅匪丐)... 그 분은 왜 관왕묘에 있었던 것일까? 또한 일행이 죽음을 당했는데 전독마조 척응은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까?”
(28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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