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에게 '작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등록 2005.02.01 11:08수정 2005.02.0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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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우 작가님이세요?"


제가 작가라니요.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필시 장난 전화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00등기소 등기3계장 박희우입니다."
"박희우 작가님?"

저쪽에서는 아직도 저를 작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 그런데 귀에 익은 목소리입니다. 제가 대답도 하기 전에 저쪽에서 말해버립니다.

"나다. 김해 형이다."
"형? 어쩐 일이야?"
"응, 어떻게 지내나 해서 전화해봤다."

형의 목소리에는 여느 때처럼 따스함이 배어있었습니다. 형은 지금 김해에서 살고 계십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교감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저와는 세 살 터울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저와 가장 가깝게 지냈습니다.


"어제 윤서방한테 놀러갔었다."

형이 말하는 윤서방은 여동생의 남편입니다. 저보다는 나이가 한 살 적습니다. 윤서방도 저처럼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방위산업체에 취직을 해서 군대도 면제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매제도 공장에 다닌 지가 30년이 다되어갑니다. 언제였을까요, 매제가 제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행님, 나이가 드니깨로 여러모로 눈치가 보입니더. 회사 보기도 그렇고예, 후배 보기도 그렇고예."

여동생은 창원에서 작은 식당을 하고있습니다. 아구찜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입니다. 형이 어제 거기에 들른 모양입니다.

"야, 너 꽤 유명하더라."
"내가 유명해?"
"<주부생활>에 네가 나왔더라. 어제 동생 식당에서 윤서방하고 그 책을 봤다."

순간 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은밀한 행동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몹시 부끄럽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저를 당혹스럽게 한 건 그 다음이었습니다.

"야, 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더라. <오마이뉴스>에 네 글이 엄청 많이 실렸어."

아, 저는 짧게 신음을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그래,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하긴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었겠지.

"미안해, 형!"

저는 형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했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제 가족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숨김없이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형님들과 누님과 여동생과 형수님들의 이야기가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그게 부끄러웠습니다.

a 형과 제가 함께 걷곤하던 <회산철길>입니다. 철길이 붉게 녹이 슬었습니다. 벌써 30년이 흘렀습니다.

형과 제가 함께 걷곤하던 <회산철길>입니다. 철길이 붉게 녹이 슬었습니다. 벌써 30년이 흘렀습니다. ⓒ 박희우

"희우야, 아니다. 나는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우리 직원들도 <오마이뉴스>를 참 많이 본다. 네 글이 너무 많아서 어제 다 읽어보지는 못했다. '늙은 면도사'라는 글 있지. 그 글이 참 가슴에 와 닿더라. 회산다리가 나오고, 철길이 나오고, 다시 회산이발소가 나오고. 꼭 우리가 그 시절도 돌아간 것 같았어."

형은 제게 무슨 말인가를 더 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기억이 잘 나질 않습니다. 아, 한 가지 기억나는 게 있네요.

"희우야, 수필집 한 번 내보지 않을래?"

그랬습니다. 형은 어쩌면 제게 이 말을 하기 위해 전화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조용히 전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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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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