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산소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설 특집 6]애처로웠던 그해 설날 이야기

등록 2005.02.07 02:19수정 2005.02.0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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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학력고사를 마치던 해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설을 지냈다. 말이 서울이지 서울 인근에서 아직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와는 무관한 고양시 화전동 너저분하고 침울한 닭장집과 작은 공장들 사이에서 지내니 두고 온 고향이 아른거려 좀이 쑤셨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아버지께 세배를 드리고는 시골에 간다 말씀드리고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차가 막히지 않아 광주까지 가는데 4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까스로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때가 다가온다. 밥은 동네 친구들 집에 가서 얻어먹었지만 눈칫밥이라 금방 꺼지고 만다.

홀로 사신 아버지가 시골집을 비우고 서울로 올라오신 지도 두 달이 지났다. 방은 냉골이었다. 정지에 들어가 땔나무를 찾아도 앙상한 통나무만 보일뿐 불쏘시개로 쓸 만한 검불이나 잔가지가 보이지 않았다. 부엌은 온통 그을음투성이고 정지문도 떨어져 나간 상태다.

녹이 슬어있는 빈 솥단지에 물을 두 동이 퍼다 붓고 연기를 풀풀 내며 짚 다발을 풀어 1시간 여 고생한 끝에 간신히 불을 붙였다. 마땅히 갈 곳도 없어 연기 자욱한 방에 들어가서 큰형수가 시집올 때 마련해온 새 솜이불을 죄다 꺼내 바닥에 깔았다. 방을 닦을 걸레도 찾지 못했고 그 넓은 방안을 그 시각 혼자서 닦기도 겁이나 대충 밀어붙이고 먼지 위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집을 오래 비워둔 탓인지 금방 따뜻해지지 않았다. 부엌과 방을 들락거리며 확인을 했다. 군불이 잘 타는 데도 방바닥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방 안에서도 물 끓은 소리가 들리는데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따뜻해질 기미가 없다. 솥단지까지 망가뜨릴까 걱정이 되어 양동이를 들고 냇가로 나가 두 동이를 마저 채웠다.

‘이 정도면 따습게 될 때인데….’


평소 사람이 살 때는 아침에 밥을 해먹고, 점심 때 데워서 먹고, 저녁밥에 국을 끓이니 조금씩만 불을 때도 구들이 금방 따뜻하게 데워진다. 안되겠다 싶어 이불을 걷고 장판을 열어보았다. 서리마냥 하얀 성에가 자욱하게 깔려서 녹지도 않았다.

덜덜덜 떨며 서울서 입고 간 파카를 입은 채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사람이 그냥 살았는지 방안은 오소리 굴이 되어 매캐하다. 질식 일보직전이지만 양쪽 문틈으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니 죽음은 면할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집 그 자체다.


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궁이로 나갔다. 한번 양껏 넣어둔 통나무가 거의 타들어간다. 세 시간 째 접어들어도 마찬가지라 지름 15cm 남짓이나 되는 남아 있던 나무를 모두 밀어 넣었다.

‘이래도 따뜻하지 않으면 별 수 없지. 내일 아침까지만 살아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친구 육남이 녀석은 혼자 자취할 때 한 달 동안 불도 때지 않고도 잘 살았잖은가.’

애써 위로하며 긴 여행을 했던지라 시장기를 반찬으로 삼듯 피곤에 기대 잠을 청했다.

두꺼운 통나무는 뽀르르 타지 않고 서서히 타듯 말 듯 몇 시간을 탔는지 모른다. 잠을 자기 위한 것인지 나무가 타는 걸 보려고 하는 짓인지 모르도록 왔다갔다하다보니 새벽 2시가 넘어 곤한 잠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 9시 무렵에야 간신히 싸늘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실 물 한잔 없는 집에서 아침을 활기차게 맞이하려고 했다. 밤새 연기가 들어찼어도 지금쯤은 웬만하게 빠져나갔을 성 싶은데 웬걸? 방안은 흐릿한 연기가 아닌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차 있질 않은가. 필시 뭔가 타고 있는 게 분명했다.

2층으로 깔고 두 겹으로 덮고 자던 이불을 확 걷었다. 벌써 두세 사람 앉을 장판이 까맣게 탔고 옆은 누글누글해졌다. 이불 한 채도 겉이 타고 솜도 일부 타들어 간다. 이 황당함.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 아무 물이나 가져와 끼얹었다.

자칫 조금만 더 오래 버텼더라면 내가 나를 죽일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을 아찔한 순간을 넘겼다. 여전히 불구덩이에서 먼 곳은 성에가 잔뜩 끼어 있었다.

잡친 기분으로 새해 첫날을 맞을 수 없는 법. 밤늦게라도 한살 터울인 사촌 누나가 와 있겠다는 생각에 냇가에 나가 눈곱을 떼고 간단한 요기는 해야겠기에 큰 집으로 가보았다. 짐작대로 와 있었다.

스물한 살이지만 엄마 없는 세월을 산 누나는 할머니에 기대고 언니들이 보살펴준 탓에 살림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지라 아직까지 자고 있었다. 행여 먹을 거 한 가지라도 있겠지 기대하며 갔건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누나 뭣 좀 줘봐.” 해도 일어날 기색이 없다. 속으로 ‘아이구, 언제나 철이 들 건가?’ 걱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사과 한 개와 마른 오징어 한 마리를 챙겨 큰집을 나왔다.

동네 주막에 들러 막걸리 2병을 사서 홀로 떨어진 어머니 산소엘 갔다. 눈은 여직 녹지 않아 발이 풍풍 빠졌다. 눈에 빠지지 않으려고 마루 밑에 있던 싸늘한 장화를 찾아 신었다. 발이 꽁꽁 얼었다.

언덕을 올라 가져간 막걸리와 오징어를 찢어 올리고 사과를 차렸다. 절을 하고나니 몸에 오한이 나고 견디기 힘들게 추웠다. 술을 내리 몇 잔을 따라 마셨다. 버티기 힘 들자 추석 전에 벌초하여 옆에 모아둔 풋나무 마른 것을 모아 묘지 가에 불을 피웠다.

불이 활활 타오르자 갑자기 눈물이 쭈루룩 쏟아졌다. 그간 울지 못했던 과거-중학교 2학년 가을에 돌아가신 날도 슬픔이 무언지 몰라 울지 않았기에-를 반성하며 설움에 복받쳐 흐느꼈다. “엉엉엉” 소리 내며 맘껏 울었다.

얼마나 눈물을 쏟아냈는지 온통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도록 한없이 울었다. 처음 먹어본 술이었다. 혼자서 막걸리 두 병을 비우고 나니 더 서러웠던가.

아니다. 가져간 사과와 오징어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신세가 된 어머니와 초라한 설날이라는 생각에 더 슬퍼 울었는지 모른다. 성인이 될 때까지 3년 이상 울음을 머금고 살았던 내가 미워서 울음을 토해냈을까. 어머니 한분 없다고 이렇게 까지 망가진 집안 꼴이 견디기 힘겨워 마냥 울음보를 터트린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산소를 내려와 내가 태어나 자란 마을이었어도 발붙일 곳 없어 동네에 들르지 않고 곧장 서울로 향했다. 그 뒤로 한동안은 내 고향은 나를 반기지 않았다. 정처 없는 나그네가 한없이 미웠다.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2년 남짓 써왔던 고향이야기 600여 편 중 몇 개를 묶어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고향의 맛을 찾는데 열심인데 올 2월에 음식과 홍어를 다룬 책이 따로 나올 계획이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올해 말에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작은 꿈을 꾸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2년 남짓 써왔던 고향이야기 600여 편 중 몇 개를 묶어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고향의 맛을 찾는데 열심인데 올 2월에 음식과 홍어를 다룬 책이 따로 나올 계획이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올해 말에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작은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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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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