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117회

등록 2005.02.11 08:06수정 2005.02.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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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일행들은 담천의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어떤 사건을 분석할 때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잘못 판단하기 쉽다. 자신들은 이미 배제하고 있었지만 척응은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에게 금적수사 부부를 빼돌린 배후로 지목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금적수사 부부를 빼돌린 것 때문에 철혈보에 의해 죽은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척응과 같은 인물이 분명 그런 오해를 받을 것을 알면서 서투른 행동을 했냐는 것이오. 추측컨데 이미 척응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던 섭장천 일행은 모종의 조치를 취했을 거요.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지 않기 위해서 다른 자의 손을 빌려 죽이는 방법이 최선이었을 것이오. 또한 가능성은 낮지만 구파일방이 개입되었을 경우요.”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아. 구파일방이 너무 모른 척 하고 있는 것도 기이한 일이지. 아무리 계륵같은 오룡번이지만 방치하기엔 그 뒤에 밀려올 충격을 무시할 수 없는데 말이야.”

구양휘는 담천의의 말에 대답을 하고는 남궁산산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직까지도 파악하지 못한 거야? 전혀 움직임이 없어?”

남궁산산은 자신이 없는 기색이었다. 장안루에 머물고는 있지만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들이었다. 누군가를 시켜 염탐이라도 한다면 그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이었다. 그런 서투른 조사는 어리석은 자들만이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전혀…나타난 것은 없어요. 다만 느낌은 오히려 객방 두 곳에 섭장천 일행이 있는 것으로 보여요. 인원은 두 곳 모두 합해 열명 정도… 식사 양을 보고 추정한 것이에요.”


그때였다. 밖에서 익숙한 점소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들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빠른 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마루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팽악이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구거사께서…?”

팽악의 목소리는 심상치 않았다. 그 이유를 묻기도 전에 방안으로 들어서는 사내를 보는 순간 무슨 이유인지 일행들은 알 수 있었다. 구효기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도영이란 사내가 정신을 잃고 있는 구효기를 업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은 이미 도영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어떠한 일을 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구효기를 업은 채 여전히 한 손에는 도를 잡고 있었고, 그 도신을 타고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

구양휘가 창백하게 변한 구효기의 얼굴을 보며 도영에게 물었다. 구양휘의 얼굴에는 평상시와 다르게 분노의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갈인규가 재빨리 일어나 구효기를 받아 들고는 한쪽 구석의 침상에 뉘었다. 가슴에 피가 홍건했다. 곧 바로 맥을 짚고 한손으로는 구효기의 상의를 젖히고 있었다.

“암습을 당했소.”

도영의 목소리는 마치 속삭이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그가 입고 있는 흑의는 온통 피에 흠뻑 젖어 있었고, 무심한 그의 표정에도 극심한 피곤에 지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의 전신에도 여러 군데 상처가 나 있고 옆구리에는 갈쿠리같은 기형병기가 박혀 있는 상태였다. 그것을 본 팽악과 혜청이 급하게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혹시 뒤쫒는 무리들이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구양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아는 만박거사 구효기는 쉽게 당할 인물이 아니었다. 더구나 같이 다니는 저 도영이란 인물 역시 그 한계를 추측하기 어려운 고수였다. 그런데 당한 것이다.

“암습한 자들이 누구였나?”
“…….”

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모용수가 의자를 내주자 자리에 앉았다. 피는 여전히 그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말을 하는 것은 도영의 일이 아니었다. 구양휘에 대한 대답은 자신이 호위하는 구효기가 할 일이었다. 구양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암습을 받았다고 대답한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한 대답을 한 것이다. 구양휘는 몸을 돌려 침상으로 다가갔다.

“괜찮은 거야?”

열어 놓은 구효기의 상체에는 왼쪽 가슴 아래로 심한 상처가 나 있었다. 검에 깊이 찔린 듯 출혈이 심해 보였다.

“아슬아슬 했소. 한 치만 더 높은 부위를 찔렸다면 일각도 버티지 못했을 거요. 다행히 심장을 비껴갔소. 문제는 과다한 출혈이오. 오늘밤이 고비일 것 같소.”

갈인규는 능숙하게 지혈을 하고 금창약을 바르고 있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걱정스런 구양휘의 말에 갈인규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자신의 의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다. 자신도 스스로 기억하지 못할 그 어린 시절부터 약초의 이름을 외웠고, 의술도구를 가지고 놀았던 그였다. 하지만 구효기의 상세는 심각했다.

“살 수는 있을 거요.”

구효기도 무림인이다. 보통사람이면 이 정도의 상처라면 살아날 가능성이 없었다. 검이나 칼에 찔렸을 때 죽는 원인은 외부에 대한 충격에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림인은 외부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내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보기에 구효기는 상당한 내공을 가진 고수였다.

“이 친구도 빨리 봐주어야 할 것 같아.”

구양휘는 의자에 앉자 스스로 지혈을 하고자 애쓰는 도영을 가리키며 말했다. 담천의나 모용수가 도와주려 했지만 도영은 몸짓으로 그것을 거부했다. 그의 시선은 구효기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구효기의 안위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었고, 만약 누군가 구효기에게 해를 입힌다면 손을 쓸 태도였다. 기이한 인물이었다. 그 역시 구효기의 상처에 비해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도영을 흘낏 보면서 구효기의 상의는 물론 하의까지 찢어내고 있던 갈인규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산산누님은 빨리 뜨거운 물을 준비하라고 시키고 형님들은 여기서 우왕좌왕하지 말고 옆방에 가 계시오. 그리고 귀하도 쓸데없는 고집부리지 말고 벗을 수 있다면 옷을 모두 벗으시오.”

저럴 때 보면 꼭 제 부친인 갈유와 닮아 있었다. 환자를 앞에 둔 그는 의원으로 돌아가 있었다. 의원은 환자를 아프지 않게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를 가장 신속하게 치료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의원은 입으로 환자도 아닌 사람들에게 환자의 상세를 알려주는 것보다는 손을 놀려 빨리 치료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일행은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남궁산산이 부리나케 뛰어나가는 것과 보며 슬그머니 그 방을 빠져나왔다. 자신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옆방에 있으면서도 걱정이 되는 듯 방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구양휘를 향해 팽악이 퉁명스럽게 말을 밷았다.

“정신 사나와 못 보겠소. 좀 앉자 계시오. 도대체 구거사와 어떤 관계가 있길래 그리 걱정이 많은 거요?”

팽악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구효기의 태도로 보아 구양휘를 잘알고 있는 사이인 듯했다. 하지만 정작 구효기가 저리되자 안절부절 못하는 구양휘가 더 이상했다. 뒤쫒아 온 자들이 없는지 달려 나갔던 팽악과 혜청이 들어오자 캐묻는 그의 태도도 그렇고 신경징적인 반응도 평상시의 그와는 달랐다.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면 보일 수 없는 행동이었다.

팽악의 말에 구양휘는 얼굴을 찌푸렸다. 특별히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만 팽악이 물어오자 대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그러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휴-- 구거사는 내 의숙(義叔)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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