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44회)

등록 2005.03.09 09:08수정 2005.03.0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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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듣고만 있던 채유정이 물었다.

"그것이 박사님과의 마지막 만남이라 말씀인가요?"


"직접 만난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소. 그후 독일에 돌아와서도 난 박사님과 자주 연락을 했었소. 그는 나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중국에 건너 갔었죠. 그리고 몇 년 동안 기나긴 발굴을 했던 것이었소."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던 것이 언제였죠?"

"정확히 일주일 전이었소. 그의 목소리는 왠지 심하게 떨리고 있었어요. 흥분된 표정이 수화기를 통해 분명히 전해져 왔소이다."

"박사님이 뭐라고 하던가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유적을 발견했다고 말했소. 그 목소리에서 난 그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 유적이 무엇인지는 말씀하시지 않던가요?"

"그는 도청을 의심하는 것 같았어요. 중국 공안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말도 하더군요. 그래서 그 유적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디에 감춰두었는지도 말해주지 않았소이다."


"그럼 다른 말씀은 안 하시던가요?"

하우스 돌프가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소이다."

그 또한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어렵게 알아낸 피라미드의 정보를 안 박사에게 알렸는데 그가 죽고만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안 박사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자신이 본 것을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이런 참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우스 돌프는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했을 때, 안 박사가 보인 반응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흥분에 들떠 사진을 들여다보던 모습, 말할 때의 그 열정적인 어조, 신념에 찬 눈동자. 그 모든 행동은 새로운 유물을 대해 갖는 역사학자의 참모습이었다.

안 박사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압박해오는 주위의 모습, 곳곳에 숨어 있는 감시의 눈길. 그 속에서도 중요한 유적을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목숨을 각오하고 그것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의 관심은 안 박사가 목숨을 바쳐 지키려 했던 그 유물에 모아졌다. 하우스 돌프가 그 먼 곳에서 여기 북한까지 날아온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난 중국에 들어갈 수 없는 몸이요."

"여기 압록강을 통해 몰래 건너오면 되지 않습니까?"

"난 외모가 튀어 보이는 서양인입니다. 금세 공안들에게 발각될 게 뻔하다 말이오. 그래서 내가 여기 분들에게 급히 당신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오."

"부탁이라면…."

"그 유물을 당신들이 찾아주셔야 합니다. 이건 돌아가신 박사님의 유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던 김 경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유물에 대한 어떠한 자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전 박사님을 살해한 자를 추적하는 경찰의 신분일 뿐입니다."

"박사님을 살해한 자들을 추적하다보면 그 유물이 있는 곳도 알 수 있을지 모릅니다. 또한 당신들이야말로 박사님 주위를 살필 유일한 사람들이 아니겠소?"

하우스 돌프는 하얗게 난 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김 경장을 건너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어두운 밤인데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으며, 한여름인데도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물살이 조금 거세어 졌는지 뱃전에 부딪히는 물결이 하얀 포말을 이루고 있었다.

김 경장과 채유정은 잠시 하우스 돌프를 건너다보더니 이어 서로를 바라보며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거친 엔진소리와 함께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을 돌아보니 배 한 척이 서치 라이터를 비추며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여태 듣고만 있던 북한쪽의 한 남자가 급히 말했다.

"중국의 국경경비대입니다. 어서 빨리 가야 합니다."

배에 시동을 걸자 거친 엔진음이 들려왔다. 하우스 돌프는 김 경장의 손을 꼭 잡으며 턱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김 경장은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채유정과 함께 자신이 타고 온 배에 얼른 올라탔다. 그러자 북한쪽에서 온 배가 물살을 가르며 급히 출발했다. 배는 속도를 내며 순식간에 신의주 쪽으로 멀어져갔다. 경비대의 배가 다가왔을 때는 그 배가 이미 국경 저쪽에 도착하고 있었다. 서치 라이터를 정면으로 비추어 눈이 부셨다. 중국 경비대는 총을 들어 위협을 했다.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여기 국경에 있는 것이오."

그러자 함께 온 북한 사람이 보트를 바짝 붙여 그들의 배에 올라탔다.

"우린 조선인민공화국의 공안요원이오. 이 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가려는 우리 공화국 사람들을 돌려보냈던 것이오."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들고 있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중국 군인은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았다. 그는 보트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당신과 함께 있는 저자들은 누구란 말이오?"

"이 자들은 우리가 단동에 풀어놓은 첩보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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