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43회(7부 : 타는 목마름으로)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5.03.30 15:06수정 2005.03.3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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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기 화백 제공
김인기 화백 제공김형태

그리고 그것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우리는 선물코너에 들어가서 동전이 반으로 나누어진 목걸이를 사서 서로의 목에 걸어주었다. 우리는 한번 시험 삼아 나의 목걸이의 반쪽과 초희 목걸이의 반쪽을 맞추어 보았다. 신기하게 꼭 들어맞았다.

그것을 보며 나와 초희가 동시에 웃었다. 마치 우리가 이몽룡과 성춘향이 되어 광한루에 놀러온 기분이었다. 그러나 햇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림자 또한 짙다고 했던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 줄은 그 당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초희의 집안에서도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 집에서는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서도

"그것 참 잘 되었다. 역시 인연이 아닌 게야. 이제는 교제하는 횟수도 줄이고 서서히 정리해라."

그러는 것이었다.

"이제는 정리한 겨? 아직도 만난다구? 어차피 인연이 아니라면 질질 끌 거 뭐 있냐. 사내답게 빨리 결단을 내려내지. 결단을...."

시골집에 내려가기만 하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께서 몸져누우셨다. 노환이셨다. 85세가 넘도록 비교적 정정하셨는데.


한번은 병문안 차 들렀더니 할아버지는 내 손을 달라고 해서 붙잡고는 사정하듯 말씀하셨다.

"철민아, 아니 수태야, 그 애는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네가 그 애와 혼인이라도 하면 내가 무슨 낯으로 조상님들 얼굴을 뵙겠느냐. 나 죽기 전에 어서 약속해라. 그 애와 절대 혼인하지 않겠다구."


내가 묵묵부답이니까 부모님과 숙부들의 재촉이 빗발 같았다. 그러나 거짓을 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나는 죄송하지만 어렵다고 말씀을 드린 다음, 동성동본의 부당함을 다시 한번 역설했다. 그러다가 숙부님께 따귀를 맞았다.

"할아버지 가시는 길을 편안하게 해드리지는 못할망정 가슴에 못을 박느냐? 이 녀석아! 빈말이라도 네, 그러겠습니다. 그러면 어디가 탈나냐. 시건방진 놈, 좀 배웠다고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업신여겨."

숙부님은 그렇게 나를 쥐 잡듯 나무랐다.

"이래서 양놈들 교육을 시키면 안 된다고 했거늘. 애비 네 마음대로 하더니 집안 꼴 참 좋다."

할아버지는 나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갑자기 아버지를 물고 늘어지셨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험한 얼굴을 하시며 나를 다그쳤다.

"빨리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 못 드리겠느냐?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한테 꼬박 꼬박 말대꾸나 하구. 애비 얼굴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아버지답지 않게 흥분까지 하셨다. 나는 그래도 머뭇거리다가 아버지의 추상같은 재촉을 받은 다름에야 할 수 없이 억지춘향이처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였다. 내가 초희와 혼인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는데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내가 미덥지 못하자고 여겼는지 아버지께 거듭 다짐을 받으셨다. 절대 혼인시켜서는 안 된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님, 제가 집안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아버님이 염려하시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할아버지는 다시는 뜨지 못할 눈을 감으셨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편안하게 눈을 감고 가셨는지 모르지만, 그 한(恨)은 고스란히 나와 아버지에게 유산처럼 남겨졌다.

10월. 갑자기 아버지께서 쓰러져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병명은 악성뇌종양. 쉬운 말로 뇌암이었다.

시골사람들이 어리석기는 어리석었다. 병은 알게 모르게 3년이라고 몇 년 전부터 아버지는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셨고 가끔씩 머리가 시리다며 모자를 쓰고 주무셨다. 그러나 집안 식구 중 누구도 그것이 큰 병의 시초라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그저 농약을 자주 하니까 농약중독으로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거북한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병원을 다녀도 내과만 줄곧 다녔다.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며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모양이니 휴식과 안정을 취하면 곧 좋아질 것이라고만 말했다. 머리 속에서 큰 병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그 내과의사도 몰랐던 것이다.

아버지는 대수술을 받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뇌라서 집안 식구들 모두 보통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의사들 말로는 눈에 보이는 암세포만 일단 뜯어냈단다. 이후로는 항암제 투여와 방사능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까지 쓰러져 정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날 지경이었다. 집안을 떠받들고 있던 주춧돌과 기둥이 한꺼번에 넘어진 격이었다.

아버지는 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 그러자 차도를 보이기는커녕 점점 나빠지고만 있었다. 오른쪽 뇌의 손상이 심해지면서 왼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였고 왼쪽 수족 또한 움직이는 것을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어머니는 병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고 간호에 힘을 쏟았고 식구들 모두 주사리 방구치게 병원을 들락거렸다. 나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 우리를 양육하고 가르치셨는데.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못 먹고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육남매를 기르고 교육시키셨다. 당신을 위해서는 돈 한 푼 쓸 줄을 모르는 분이었다. 정말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만 하셨는데.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고교 진학도 못하고 아마 어디선가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의 남다른 교육열로 인해 도시 구경도 했고 소위 대학물도 먹어 본 것이다.

나는 금식하며 기도했다. 가끔은 교회당에 엎드려 밤을 새워가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우리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아버지를 데려갈 거면 차라리 나를 데려가 달라고. 또 그런 기도도 했었다. 아버지의 타고난 수명이 이것으로 다했다면 나의 수명을 깎아서라도 우리 아버지의 수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병원에 갈 때마다 아버지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자식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참고 또 참고 계셨다. 또한 그런 와중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네 할아버지께 이런 추한 몰골을 보여드리지 않아 천만 다행이다."

애써 웃기까지 하셨다.

아버님前 上書

또 비가 내립니다
저 비는 얼마나 좋을까요
언제 어디든 내릴 수 있고
소리 내어 엉엉 울 수 있으니

아부지,
강물은 아래로 흐르고
바닷물은 위로 흐릅니다

올라오는 길은 보여도
내려가는 길은 안 보인다고 하셨나요
모름지기 깊어야 큰 배가 뜨는 법이라고

그러나 태양은 겨울로 덮여 있고
소자 또한 한낮에 촛불을 켭니다


아 부 지 1

어렸을 적
제비가 거미줄에 걸려 허둥거리고 있을 때
키가 낮아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부지가 살려 주셨지요

오늘은 아부지가 병고의 거미줄에 갇혀 있는데
다 큰 아들은 여전히 키가 낮아
당신을 건져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못난 아들은 아부지만큼 키가 높아 성벽에 오를까요

덧붙이는 글 |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44회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44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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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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