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회암사터, 왼쪽에 초가집이 보인다. 산에는 나무가 없어 황량함이 더한 것 같다
회암사 영화의 중심에는 지공, 나옹, 무학, 보우 네 분의 스님이 있다. 회암사는 지공대사가 1328년에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는데 금나라 사신을 이곳으로 안내했다는 기록이 있고 태고보우는 1313년에 이 절에서 출가했다는 말이 있어 그 이전에 회암사는 창건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금나라 사신을 안내할 정도라면 작은 절은 아닐 것으로 추측되나, 태생을 알 수 없는 절로 받아들이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창건을 지공으로 돌리려는 의지가 강하다. 여하튼 실질적인 창건은 이 절에 아주 큰 공을 들인 지공에서 출발한다 할 수 있다.
지공의 제자인 나옹화상에 의해 거대사찰로 변모되고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만남으로 이 절의 성격이 완전히 바뀐다. 그 후 불심이 깊은 문정왕후와 불교 중흥을 꿈꾸던 보우의 만남으로 중흥의 꽃이 피려고 하였으나 문정왕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꽃은 피기도 전에 시들어 버린다. 이후 회암사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결국 폐사가 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회암사가 언제, 어떻게 폐사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기록은 없다. 마지막 기록으로 1566년에 "유생들이 회암사를 불태우려 한다"라는 말이 전하고 1595년엔 "회암사 옛터에 불탄 종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1566년과 1595년 사이에 유생들에 의해서이거나 임진왜란에 의해서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