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초등학교의 가정환경조사서 양식. 부모님의 직업, 직장, 학력, 종교 등을 기재하는 항목이 있다. 다른 가족들도 직업과 학력은 빠지지 않는다.최육상
개인의 학력·재산·직업·종교·취미 등을 묻는 공문서
일선 학교에서 하는 학생기초환경조사의 문제는 <오마이뉴스>에서 이미 몇 차례 지적했다.
학생들의 기초환경을 조사한다며 부모의 학력과 직업, 재산 정도 등을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 과연 교육상 필요한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기업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기업은 항상 자금이 필요하다. 담보능력이 될 때는 담보를 통해서, 담보능력이 여의치 않을 땐 '신용'과 '사업' 평가를 통해서 자금을 확보한다. 담보대출은 담보물건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므로 따질 것은 없다. 문제는 신용과 사업을 평가하는 신용대출이다.
기업의 신용과 사업 평가를 받으려면 담당 금융기관에 반드시 제출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업 개요표'다. 기업 개요표는 평가에 필요한 대표자 정보를 비롯해 사업의 핵심내용과 전망·재무·마케팅·수익 계획 등 기업정보를 요구한다. 그 중에서 대표자의 개인정보 요구내용은 상당하다.
S기금의 기업 개요표 관련 항목에는 대표자의 이름·주민번호·주소·전화번호를 비롯해 취미·종교·최종학력·거주주택의 소유관계(자가/전세/월세), 기타 소유자산 등을 적게끔 돼 있다. 대표자만이 아니다. 경영진도 최종학력과 주요경력을 기재해야 한다.
K은행 신용분석자료의 '경영자 인적사항'에는 종교·취미·창업·소유주/창업2세/전문경영인 구분, 주택규모(자가/임차)와 대지/건평 정보, 연수입, 회원권, 보유부동산 규모와 추정시가, 건강(양호/보통/허약ㆍ노약/질병상태), 학력 등을 기재해야 한다.
이런 식의 질문은 몇몇 소수 금융기관만 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보증기금, 보증재단, 은행 등은 물론이거니와 중소기업청 등 각종 정부단체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요구하는 내용대로라면 학벌 좋고 재산 상태 양호한 대표자가 높은 평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경찰서를 비롯한 관공서에서 하는 피의자신문조서는 어떤가? 조서는 잘잘못과 범죄 여부에 상관없이 개인정보를 더욱 요구한다.
조서는 본적, 전과 여부, 병역, 학력, 경력, 재산 정도, 생활상태, 종교, 정당ㆍ사회단체 가입여부, 술과 담배 소비량, 건강상태 등 개인의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묻는다. 조서의 공식적인 성격을 감안하면 잘잘못과 범죄를 판단하는 데는 학력과 재산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정당 가입여부, 종교, 술과 담배 소비량, 건강상태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모든 질문에는 어떤 의도나 얻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에 나온 학력과 재산 등 개인 신상에 대한 물음이 특히 그렇게 보인다. 혹시나 학력이 낮고 재산이 적은 경우 당연히(?) 범죄자 취급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범죄의 통계조사가 목적이라면 몰라도, 범죄에 대한 피의자조사 내용은 다분히 인권침해 요소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