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청 '학력 신장 방안'을 비판한다

등록 2005.03.18 12:34수정 2005.03.1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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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청은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중학교 신입생에 대해 국어, 수학, 영어 등 3개 과목에 대해 진단평가를 실시했다. 교육청은 "학력신장 방안중 하나로 진단평가를 실시하며,
기초학습이 부진한 중학교 1학년생을 특별 지도하기 위한 자료로만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었다.

이 ‘진단평가’는 여러 교육 단체의 강력한 반대에 불구하고도 성공적으로 추진되었다. 교육청은 일부 학내 사안이 발생한 학교를 제외하고 서울 교육청 관내 366여개 거의 모든 학교에서 실시된 것으로 발표했다. 일부 학교의 반발을 아랑곳 하지 않고 추진된 “중 1 진단 평가”는 대단한 성공(?)임에 틀림없다.

지난 1월 31일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기자 회견 이후, 교육청은 단위 학교별로 추진되고 있는 ‘학력 신장 방안’이 미덥지 못했던지 구체적 지침을 공문으로 내려 보냈다. ‘중1 진단평가’ 실시에 이어 수준별 이동 수업과 중1과 고1 학생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과목에 대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논술형 〮서술형’을 30% 이상 출제하도록 하고 2006학년도에는 40% 그리고 2007 학년도에는 50%까지 확대하겠다고 향후 계획까지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청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학력 신장 방안’ 중 ‘중 1 진단 평가’와 ‘수준별 이동 수업’ 그리고 ‘논술형 〮서술형 30% 지침’은 2000년도 7차 교육과정 편성과 지침을 모두 뒤집고 있다. 교육감이 기자 회견에서 발표한 ‘학력 신장 방안’에 대해 성과를 내기 위해 성급하게 내놓은 정책이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학생들의 학력을 신장시키는 것을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또 군사 작전 수행하듯이 교육청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학력 신장 방안은 단기적인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교육감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업적 쌓기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학생들의 학력을 신장시키는 것은 교육 행정 기관이 앞장서기 보다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교사의 몫이다. 단위 학교의 교육 환경과 조건을 무시한 채 군대에서 고지를 점령하듯 실시 여부만을 채근하는 교육청의 교육 정책으로는 진정한 교육적 성과를 낼 수 없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중학생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뀐 환경에 적응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친구들의 이름도 채 알기 전에, 담당 교과 교사들과 첫 만남도 없이 중학교 입학해서 처음 대하는 것이 시험이었다. 그것도 주요 과목에 대해 일제히 시험을 보는 것은 학생들에게 입시 체제에 들어섰음을 선언한 것이다.

7차 교육과정 이후 실시한 수준별 이동 수업은 이미 많은 학교에서 실패한 정책이었다.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고 강행되는 수준별 이동 수업은 우열반 편성에 지나지 않는다. 우열반 편성이 갖는 교육적 폐해도 상당히 심각한 것임을 교육청도 알고 있을 것이다. ‘논술형·서술형’이 학생들의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 그리고 비판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시험 방식임을 학교 현장에서 몰라서 시행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0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40 개 국, 고1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업 성취도 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분석 결과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문제 해결 능력에서 1위, 읽기 2위, 수학 3위, 과학 4위로 종합 성적 2위를 차지했다.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 해결 능력이 최상위에 도달하고 있음에도 학습에 대한 흥미도는 최하위로 나와 있는 것에 대한 교육 당국의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한다.

교육의 본질적 철학이 담겨 있지 않은 3월 9일 ‘중1 진단 평가’는 결코 성공한 것이 아니다. 다만 실패가 드러나지 않은 채 시행된 것일 뿐이다. 교육청의 “밀어붙이기” 식의 지침과 공문에 의한 학력 신장 방안은 참교육을 생각하는 교사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뿐이다. 교사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단위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면서까지 교육청의 지침과 공문으로 학력이 신장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책 입안자들이 있는 한 ‘서울교육’의 희망은 없다. 일제고사 식 시험 방식으로 학력이 신장될 수 있다고 믿는 교육 정책자들이 있는 한 ‘서울 교육’의 미래는 없다. 이미 추진되고 있는 정책이 실패한다면, 2005년 학력 신장 방안에 대한 정책을 입안한 자들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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