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 꼬랑지를 자르면 두마리가 된당께"

[동무들의 악다구니 4]똥통에 빠진 닭과 막걸리 마시고 도마뱀 갖고 놀다

등록 2005.03.30 07:55수정 2005.03.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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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도마뱀 꼬리를 자르면 두마리가 될까요?
정말 도마뱀 꼬리를 자르면 두마리가 될까요?김용철
지남철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고샅길에서 땅바닥에 원형 자석을 움직이자 못과 머리핀, 제법 큰 쇳가루가 줄줄 빨려온다. 작은 철가루도 다닥다닥 붙어 살아있는 듯하다. 종이에 가루를 떼어냈다.


"꽥꽥." "꼬꼬댁 꼭꼭."

닭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외부 침입자가 있는 걸까. 놀이를 멈추고 집으로 돌아왔다. 황급히 마당과 뒤뜰을 둘러보아도 닭은 보이지 않았다. 울음으로 보아 달걀을 낳은 것 같지는 않았다.

"푸득푸득."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대낮이라 살쾡이나 족제비가 온 성싶지는 않다. 매가 채간 듯 소리를 지르고는 더 이상 기척이 없었다. 다급해진 나는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행랑채 어둑한 곳을 살폈다. 그래도 없었다. 야릇한 냄새가 진동한다.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살금살금 다가가보니 황당한 사건이 벌어져 있었다.


"엄니, 엄니! 큰일 나부렀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엄마 큰일 났당께라우."

몇 번을 불러도 어른들은 들일을 나가 구원 요청에 응하는 분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옆집으로 간 사이 닭이 밑으로 가라앉으면 큰일이다. 하는 수 없어 내가 꺼내기로 했다.

고즈넉하고 나른한 봄날 오후 뭔가 먹을 게 없을까 골몰하며 모이를 찾던 닭은 재래식 화장실 측간에 드나들어 쥐며느리, 돈벌레와 지렁이, 파리를 잡아 먹는 데 욕심을 한껏 부린다. 쑤욱 올라온 덩어리를 몇 점 찍어 먹고 구더기까지 스멀스멀 기어 나오니 닭에겐 더 없는 영양보충 장소가 화장실이었다.

제법 천연색 털이 나고 부리도 매서워진 중병아리, 꾀돌이가 노깡(시멘트로 만든 큰 항아리. 주로 화장실이나 물을 모으기 위해 사용했다) 위에 판대기를 걸쳐 놓은 변기 위에 올라 뗀잔거리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폭삭 내려앉은 모양이다.

사람이 두 발을 벌리는 가랑이 사이로 떨어져 죽지와 몸통에 똥물을 뒤집어쓰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요놈 한 마리면 온 가족 여름나는데 쏠쏠하거늘 그냥 허망하게 보낼 수는 없다. 내 몸에 덩어리와 오물을 묻힐 각오를 하고 그냥 덤비는 수밖에 없었다.

한쪽 날개를 간신히 잡아 끌어내자 꽥꽥거리며 발버둥을 친다. 땅바닥에 뒹굴지 못하도록 두 날개를 잡으니 푸드득 날개 짓을 하다가 닭발을 마구 움직이니 내 얼굴이고 옷을 가리지 않고 사방으로 이물질이 튀어 오른다. '원매, 어쩐댜? 어차피 망가진 몸 닭이라도 살려야지.' 구린 오줌 똥 냄새가 풍겼다. 닭을 든 채 사립문을 빠져나와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고샅을 달렸다.

"야, 왜 그냐?"
"시방 바쁘당께."


아이들이 말을 걸어왔지만 대꾸도 않고 도랑으로 내려가 씻겨 줬다. 오늘 아침 내가 누웠던 콩나물 대가리도 보였다. 물에 담갔다가 꺼냈다. 도저히 손으로는 할 수가 없어 주위에서 나뭇가지를 건져 쓱쓱 긁어내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집으로 돌아오고 계셨다.

"뭣 하냐?"
"예, 닭구 새끼가…."
"인내."


닭을 아버지께 넘기고 나니 내 몸엔 냄새가 더 지독했다.

"어여 들어가서 물 끓여 달라 그려."
"예."


어머니는 저녁밥보다 막내아들 씻기는 게 우선이었다.

똥통에 빠진 닭 덕분에 밥솥에 물을 데워 설날 이후 처음 목욕을 해보니 얼마만인가. 몇 번을 쌀겨로 만든 비누를 칠했다. 냄새가 쉬 가시지 않아 지푸라기를 뭉쳐 비누를 덧칠해 문대도 냄새는 쉬 가시지 않았다. 내가 부엌을 차지한 사이 어머니는 확독에 보리쌀을 득득 갈아 꽁보리밥을 앉히셨다.

"엄니, 그 놈의 닭구새끼 살아날랑가?"
"사독을 허면 보타불지도 모르제…. 아부지한테 여쭤 봐라."


미워 죽겠지만 그 놈이 살아야 내 몫이 줄어들지 않으니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가 도랑에서 돌아 오시자마자 아버지께 꾀돌이 안부부터 물었다.

"아부지 디지지 않겄소?"
"야, 말도 마라 합수를 이만저만 뒤집어 썼어야 말이지. 몇 날 못 살 모양이여."
"들어 본께 몽창해서 한 달만 지내면 좋을 건디라우."
"지 운명인께 지달려 봐."


닭이 인분(人糞)에 빠지면 그것이 어찌나 독한지 사나흘 지나지 않아 고엽제를 맞은 듯 삐삐 마르다가 죽기 십상이다. 기대를 갖고 며칠 기다려 보면 어김없이 독기를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마니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었다. 행여 살아나더라도 한 배에서 깨어난 병아리와 성장 속도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지를 않았다.

옛날 화장실의 모습. 이보다 더 오래된 왕겨나 재를 뿌려서 뒤로 밀쳐내던 화장실도 있었습니다.
옛날 화장실의 모습. 이보다 더 오래된 왕겨나 재를 뿌려서 뒤로 밀쳐내던 화장실도 있었습니다.김규환
저녁부터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다음날 아침까지 날비가 포슬포슬 소슬하게 내렸다. 오후에 비가 그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쨍하고 해가 뜨더니 마당에 물이 조금 고였을 뿐 여느 봄날보다 화창했다. 물이 고인 마당엔 어디서 날아온 건지 흘러내려온 건지 노란 소나무꽃가루가 끼어 있다.

작고 가녀린 노오란 나비도 하느작거린다. 쫓아가 잡아볼 생각이었지만 쉽지 않다. 벌은 단백질을 보충할 모양인지 변소에 가서 요소를 잔뜩 묻혀 와서 기둥과 담벼락 구멍을 쉴 새 없이 드나든다. 한봉(韓蜂)은 윙윙거리며 온 마당을 가득 메우고 꿀 따오느라 여념이 없다.

한껏 길어진 해 탓에 졸음이 몰려올 오후 서너시쯤이다. 점심 먹고 꾸물거리다가 다들 집에서 노닥거리기도 지루하여 서서히 밖으로 나올 시간이 되었다. 딱지는 우리들의 상비품이었다. 호주머니에 딱지를 몇 장 찔러 넣고 집을 나섰다. 질컥거리는 흙에서 혹 딱지가 젖을까봐 조심스레 다룬다.

몇 번 하다가 실증을 느낀 동무들 중에서 두 아이가 새로운 제안을 한다.

"야야, 일로 와봐."
"왬마?"
"잔소리 말고 뒤안으로 와보랑께."
"조청이라도 숨겨 놓았냐?"
"쉿! 병용이 할매가 언제 오실지 모른께 조용히 따라 오란말여."


아이들이 데리고 간 곳은 병용이네 뒤뜰이다. 뒷마루에 기어오르더니 정지로 들어가 그릇 하나를 들고 나온다.

"야…. 뭣 할라고?"

내 눈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먼지만 짙게 내려앉은 마루에 동네 아이들 일곱명이 걸터앉아 무슨 궁리를 할까. 병용이 작은집 병주가 술독을 열었다. 숨을 죽이고 있었던 터라 뽀글뽀글 거품 소리가 내 귀에도 또렷이 들렸다. 술지게미와 고두밥은 가라앉고 맑고 노란 물이 참으로 보기가 좋다. 나는 나지막이 아이들을 말릴 생각을 했다.

"얌마, 어른들이 드실라고 해놓았는디…."

그새를 못 참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아이들은 밥알 하나도 넣지 않고 그릇을 쭈욱 눌러서는 홀짝홀짝 마셔댄다.

"큭-"
"나도 좀 줘 봐봐."
"나도."
"그만 마셔 색끼들아. 글다 걸리면 다리 몽뎅이 부러진당께."
"규환아, 시방 헛소리 말고 한잔 마셔 봐 임마."


강제로 내게 건네진 청주(淸酒)였지만 시큼하기는 마찬가지다.

"푸-"
"왜 그램마. 너 막걸리 첨 묵어 보냐?"
"잉."


주조장에서 배달된 막걸리와 달리 훨씬 강렬한 누룩 맛에 구토가 날 지경이었다. 감사가 나와 시도 때도 없이 단속하며 가양주를 금지했던 당시지만 대사를 치르든가 농사를 앞두고는 밀주를 담갔다.

맨 위엔 맑은 청주, 밥알이 동동 뜬 동동주, 물을 섞어 주물럭거리면 막걸리가 되었지만 순둥이였던 나는 한잔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아이들이 두세 잔씩 마시는 동안 술 한잔에 언제 어른들이 오실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을 쳤다.

"짐치 없냐?"
"야, 새끼야. 손꾸락 빨어."


걸음을 떼었더니 한모금에도 취기가 몰려와 어질어질했다. 집으로 갈 수도 없고 한데 몰려다니기도 쉽지 않지만 아이들은 술김에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들쑤시고 다녔다. 친구 집 정지에 들어가 묵은 김치를 꺼내 먹었다.

두엄자리에서 지렁이 몇 마리 꺼내 닭에게 던져 주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갓 깨어난 병아리가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살금살금 어미닭 옆에 다가가 "쏙쏙" "쏙쏙쏙" 울어대는 햇병아리를 손에 올려 암탉을 초긴장 상태로 몰고 간다.

목욕탕이 없던 시절엔 1년에 추석과 설 전날에 물을 데워 두번 목욕을 했는데 이런 대단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해보지 못할 호강이었습니다.
목욕탕이 없던 시절엔 1년에 추석과 설 전날에 물을 데워 두번 목욕을 했는데 이런 대단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해보지 못할 호강이었습니다.김용철
해섭이 집에서는 안방에 몰려 들어가 성냥을 딱성냥으로 만든다며 성냥에 침을 발라 말리기 시작했다. 마르면 성냥 집에 확 그으면 불꽃이 보통이 아니었다.

소피가 마렵던 성호가 밖으로 나가 마당 한 구석에 오줌을 누고 들어오던 찰나였다.

"야아~ 배깥으로 좀 나와 봐."
"왜-?"
"빨랑 나와 보랑께."


문을 빼꼼이 열고 밖을 내다 보니 혼자서 나무 막대기로 도마뱀을 담장 밑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뭣이간디?"
"도마뱀!"
"뭣이라고?"
"도마뱀이라니까."


하던 일을 멈추고 후다닥 뛰쳐나갔다.

실로 오랜만에 만난 도마뱀이다. 그 시절 우린 악어가 뭔지 모르고 살았다. 도롱뇽과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굵은 지렁이가 커서 뱀이 된다고 믿었던 우린 웬만한 친구 만나는 것보다 기뻤다.

"야? 어치코롬 잡았어?"
"잉, 내가 소피 누고 들어갈라고 헝께 웅덩이에서 쩌기 모텡이로 기어 가드라. 시방까장 딴 데로 못 가게 막고 있었당께."
"참말로 오랜만이다잉."


한참을 지켜 보았다. 슬슬 도마뱀이 도망치려고 했다. 그 때 병주가 납작한 돌 하나를 주워 왔다.

"야, 뭣할라고?"
"잉, 울 아부지가 그런디 도마뱀 꼬랑지를 짤라 주면 두 마리가 된대."
"너 거짓깔이지?"
"참말이당께."
"어디 짤라 봐."
"야, 그 막가지 좀 줘 봐봐. 꾹 눌루고 있어라잉."


성호가 지그시 도마뱀을 누르고 있는 사이 한뼘 길이 뱀의 꼬리를 돌로 잘랐다. 몸통과 대가리, 꼬리로 분리된 도마뱀은 따로따로 움직였다.

"야, 정말 움직이네."
"신기허네."


몸통은 쏜살 같이 담벼락으로 기어들어갔다. 꼬리는 팔딱팔딱 뛰더니 잠시 뒤 움직이더니 서서히 사라졌다. 아이들과 나는 꼭 꼬랑지에도 머리와 양쪽 다리가 생겨나길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두 마리가 된다는 것이 사실일까? 아직 그 답을 풀지 못하고 있는 나는 그날 그 도마뱀을 다시 만나고 싶다.

시큼한 막걸리 맛을 싫어해 대학에 가서야 아버지 막걸리를 훔쳐 먹었다. 그 좋은 막걸리 맛을 모르고 살다니.

병아리, 햇병아리, 중병아리, 중닭, 암탉과 장닭 그리고 수탉 가운데 이건 다 큰 암탉과 수탉입니다.
병아리, 햇병아리, 중병아리, 중닭, 암탉과 장닭 그리고 수탉 가운데 이건 다 큰 암탉과 수탉입니다.김규환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잃어버린 고향풍경1>(하이미디어 刊)을 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대표이다. 올 연말 쯤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나물 백화점 <산채원 山菜園>(cafe.daum.net/sanchaewon)을 만들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잃어버린 고향풍경1>(하이미디어 刊)을 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대표이다. 올 연말 쯤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나물 백화점 <산채원 山菜園>(cafe.daum.net/sanchaewon)을 만들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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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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