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도마뱀 꼬리를 자르면 두마리가 될까요?김용철
지남철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고샅길에서 땅바닥에 원형 자석을 움직이자 못과 머리핀, 제법 큰 쇳가루가 줄줄 빨려온다. 작은 철가루도 다닥다닥 붙어 살아있는 듯하다. 종이에 가루를 떼어냈다.
"꽥꽥." "꼬꼬댁 꼭꼭."
닭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외부 침입자가 있는 걸까. 놀이를 멈추고 집으로 돌아왔다. 황급히 마당과 뒤뜰을 둘러보아도 닭은 보이지 않았다. 울음으로 보아 달걀을 낳은 것 같지는 않았다.
"푸득푸득."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대낮이라 살쾡이나 족제비가 온 성싶지는 않다. 매가 채간 듯 소리를 지르고는 더 이상 기척이 없었다. 다급해진 나는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행랑채 어둑한 곳을 살폈다. 그래도 없었다. 야릇한 냄새가 진동한다.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살금살금 다가가보니 황당한 사건이 벌어져 있었다.
"엄니, 엄니! 큰일 나부렀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엄마 큰일 났당께라우."
몇 번을 불러도 어른들은 들일을 나가 구원 요청에 응하는 분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옆집으로 간 사이 닭이 밑으로 가라앉으면 큰일이다. 하는 수 없어 내가 꺼내기로 했다.
고즈넉하고 나른한 봄날 오후 뭔가 먹을 게 없을까 골몰하며 모이를 찾던 닭은 재래식 화장실 측간에 드나들어 쥐며느리, 돈벌레와 지렁이, 파리를 잡아 먹는 데 욕심을 한껏 부린다. 쑤욱 올라온 덩어리를 몇 점 찍어 먹고 구더기까지 스멀스멀 기어 나오니 닭에겐 더 없는 영양보충 장소가 화장실이었다.
제법 천연색 털이 나고 부리도 매서워진 중병아리, 꾀돌이가 노깡(시멘트로 만든 큰 항아리. 주로 화장실이나 물을 모으기 위해 사용했다) 위에 판대기를 걸쳐 놓은 변기 위에 올라 뗀잔거리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폭삭 내려앉은 모양이다.
사람이 두 발을 벌리는 가랑이 사이로 떨어져 죽지와 몸통에 똥물을 뒤집어쓰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요놈 한 마리면 온 가족 여름나는데 쏠쏠하거늘 그냥 허망하게 보낼 수는 없다. 내 몸에 덩어리와 오물을 묻힐 각오를 하고 그냥 덤비는 수밖에 없었다.
한쪽 날개를 간신히 잡아 끌어내자 꽥꽥거리며 발버둥을 친다. 땅바닥에 뒹굴지 못하도록 두 날개를 잡으니 푸드득 날개 짓을 하다가 닭발을 마구 움직이니 내 얼굴이고 옷을 가리지 않고 사방으로 이물질이 튀어 오른다. '원매, 어쩐댜? 어차피 망가진 몸 닭이라도 살려야지.' 구린 오줌 똥 냄새가 풍겼다. 닭을 든 채 사립문을 빠져나와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고샅을 달렸다.
"야, 왜 그냐?"
"시방 바쁘당께."
아이들이 말을 걸어왔지만 대꾸도 않고 도랑으로 내려가 씻겨 줬다. 오늘 아침 내가 누웠던 콩나물 대가리도 보였다. 물에 담갔다가 꺼냈다. 도저히 손으로는 할 수가 없어 주위에서 나뭇가지를 건져 쓱쓱 긁어내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집으로 돌아오고 계셨다.
"뭣 하냐?"
"예, 닭구 새끼가…."
"인내."
닭을 아버지께 넘기고 나니 내 몸엔 냄새가 더 지독했다.
"어여 들어가서 물 끓여 달라 그려."
"예."
어머니는 저녁밥보다 막내아들 씻기는 게 우선이었다.
똥통에 빠진 닭 덕분에 밥솥에 물을 데워 설날 이후 처음 목욕을 해보니 얼마만인가. 몇 번을 쌀겨로 만든 비누를 칠했다. 냄새가 쉬 가시지 않아 지푸라기를 뭉쳐 비누를 덧칠해 문대도 냄새는 쉬 가시지 않았다. 내가 부엌을 차지한 사이 어머니는 확독에 보리쌀을 득득 갈아 꽁보리밥을 앉히셨다.
"엄니, 그 놈의 닭구새끼 살아날랑가?"
"사독을 허면 보타불지도 모르제…. 아부지한테 여쭤 봐라."
미워 죽겠지만 그 놈이 살아야 내 몫이 줄어들지 않으니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가 도랑에서 돌아 오시자마자 아버지께 꾀돌이 안부부터 물었다.
"아부지 디지지 않겄소?"
"야, 말도 마라 합수를 이만저만 뒤집어 썼어야 말이지. 몇 날 못 살 모양이여."
"들어 본께 몽창해서 한 달만 지내면 좋을 건디라우."
"지 운명인께 지달려 봐."
닭이 인분(人糞)에 빠지면 그것이 어찌나 독한지 사나흘 지나지 않아 고엽제를 맞은 듯 삐삐 마르다가 죽기 십상이다. 기대를 갖고 며칠 기다려 보면 어김없이 독기를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마니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었다. 행여 살아나더라도 한 배에서 깨어난 병아리와 성장 속도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