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대소하며 읽을 수 있는 소설

제131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등록 2005.04.01 20:00수정 2005.04.0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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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소설을 읽으며 박장대소하던 경험이 있는가? 지하철에서 소설을 보다가 킥킥거려 무안당했던 경험은 또 어떤가? 가끔이라도 그런 소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행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억지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이마에 깊게 패어진 주름살에 잠시나마 활력을 주는 그것은 소설을 읽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인데 반갑게도 최근에 또 한 권의 소설이 그런 행운을 주고 있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바로 그것이다.


'낙천적이고 유쾌한'이라는 수식어가 제격인 <공중그네>는 신경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그녀의 오른팔격인 간호사 마유미가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라부를 찾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소설을 쓰는 데 확신을 갖지 못하는 여성작가, 공을 제대로 송구하지 못하는 야구선수, 뾰족한 것을 두려워하는 야쿠자, 장인의 가발을 들춰내보고 싶은 의사 사위 등 성격이나 직업들이 가지각색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 가지각색의 '군상'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첫 감정이 있는데 그것은 이라부와 마유미의 첫인상이 주는 황당함이다. 당혹스럽다는 말과도 같을까? 뚱뚱하면서도 어린 아이 같은, 환자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기 말을 더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라부는 우리가 익히 상상해왔고 응당 그러려니 하는 모습의 의사가 아니다. 한마디로 권위가 없다.

간호사 마유미도 마찬가지다. 이라부의 한 마디에 홍길동처럼 난데없이 환자 주위에 나타나더니 주사를 놓는다며 '못'처럼 생긴 주사바늘을 환자의 신체로 무자비하게 꽂아 넣는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아 잡지를 보거나 담배를 피워댄다. 역시나 권위가 없다.

이런 이라부와 마유미의 행동에 환자들이 당혹스러워하고 황당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뾰족한 것을 무서워해서 찾아 온 야쿠자에게 무턱대고 불주사 뺨치는 주사를 놓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렵지 않게 환자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참으로 얄궂게도 보는 이들은 웃을 수밖에 없다. 마치 페이지마다 '웃음바이러스'가 존재하는 것처럼 킥킥거릴 수밖에 없다. 또한 킥킥거림을 넘어서 박장대소까지 이끌어내기도 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골동품 상점'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웃지 않고 '꼬마 넬의 죽음'을 읽으려면 심장이 돌이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공중그네>도 그러한다. 웃지 않고 이라부의 행동을 보려면 심장이 돌이어야 한다. 지나친 과장 같지만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공중그네>를 보며 웃게 되는 건, 일본소설 특유의 특징이기도 한 '욕구를 대신해주는 소설'이라는 점이 한몫 한다. 단순히 의사가 엽기적인 행동을 한다면 심장이 돌이 아닌 사람도 웃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억지웃음을 자아낸다고 인상을 쓸지 모른다. 허나 <공중그네>는 다르다.

뚱뚱하고 아이 같은 이라부는 환자들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흡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것은 권위를 상실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걷어찬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한데 야쿠자가 궁금하다며 야쿠자의 자리에 참석해보려 하고, 환자의 서커스단에 가서 공중그네를 타보려 하는 것, 글이 안 써지는 여성작가에게 자신을 데뷔시켜달라고 원고지들을 내미는 행위 등은 철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의사가 환자와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 뒤에 심각하지 않게, 무조건 낙천적인 방법을 통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이다.


독자들이 저자의 의도를 엿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이라부의 행동이 엉뚱해서 계속 웃게 될 뿐이지, 실상 보고 웃어버리는 이라부의 행동들에 응원을 하게 되는 건 이제껏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의사를 발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신경과 의사하면 책상에 앉아 이야기나 듣는 의사였지 누가 이라부처럼 행동했었던가? 어떤 환자든 웃게, 낙천적으로 사고하게 만들어주는 의사를 거부하는 사람이 누가 있던가?

실제 서커스단의 '공중그네'를 보는 건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유쾌한 일이다. 저자의 <공중그네>도 마찬가지다. 이보다 유쾌하고 통쾌하고 상쾌한 소설이 있을까? 공공장소에서 볼 수 없는 소설이 있다. <공중그네>가 그렇다. 공공장소에서, 특히 지하철에서 이 소설을 본다면 실제로 '공중그네'를 보듯이 손에 땀을 쥐어야 할 것이다. 바라보는 이상한 눈초리들을 의식해야 하면서도 책장을 덮고 싶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소리 내어 웃으면서 소설을 볼 수 있는 행운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공중그네>에 있다. "자, 입 다물고 주사부터 한 대 맞자구!"라고 말하는 이라부를 만나면 어렵지 않게 그 행운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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