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주사 한 대 맞으시겠습니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고

등록 2006.02.25 10:35수정 2006.02.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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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공중그네> 책표지

<공중그네> 책표지 ⓒ 은행나무

유쾌한 소설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소설을 읽으며 실컷 한번 웃어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구입했다. 누군가는 버스 안에서 절대 읽으면 안 될 소설이라고 했지만, 책장을 열어보니 그 정도로 폭발적인 웃음을 선사하는 책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독자들은 '피식'하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자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공중그네>의 주인공, 정신과 의사 이라부는 정말 특이한 인물이다. 그러니 소설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겠지만, 이런 의사라면 나도 한번 진료를 받아보고 싶을 정도다. 어떤 정신적 질환이 아니더라도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에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하고 싶을 때가 종종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때때로 점집을 찾고, 인터넷으로 고민상담을 받는 것일 게다.


이라부에게 찾아오는 환자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라부는 환자들에게 일단 무시무시하게 생긴 비타민 주사부터 한방 놓고 진료를 시작한다. 먼저 야쿠자 조직원 세이지가 등장한다. 세이지는, 보통 의사 같으면 고개를 조아리며 무서워 할 야쿠자임에도 정반대로 행동하는 이라부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세이지가 병원을 찾은 이유는 이쑤시개, 연필, 젓가락, 우산과 같이 끝이 뾰족한 물건만 보면 눈을 찌르는 듯한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는 공포감에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라부는 선글라스를 써보라고 권하며, 느닷없이 총을 한번 쏴보고 싶으니 그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다음으로는 공중그네 플라이어 고헤이가 등장한다. 고헤이는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져 숨쉬기조차 힘든 상태로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병원을 찾았지만 오히려 이라부는 공중그네 견습생이 되고 만다.

세 번째 환자는 강박신경증에 시달리는 의사 다쓰로, 네 번째 환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바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고 그에 반하는 움직임'으로 고통받는 프로야구선수 신이치다. 마지막 환자로 여류작가 아이코가 등장한다.

..작가 생활 5년째에 그 책을 썼다. 가족의 붕괴와 재생을 그린 휴먼드라마다. 다리품을 팔아 자료를 구해 읽고, 공들여 취재를 하며 온 힘을 다해 쓴 작품이다. 가벼운 연애소설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영혼을 흔들 만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보람은 있었다. 출간하자마자 여러 지면에서 소개했고, 대부분 절찬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말을 안 가리는 사쿠라까지 흥분한 목소리로 "이거 걸작인데!"라며 전화를 걸어 왔다. 아이코는 충만한 성취감을 맛보았다. 그걸로 자신도 변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팔리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잘나가는 작가지만 아이코는 심혈을 기울여 쓴 자신의 역작이 팔리지 않는데 상심해 자꾸만 구토를 일으키게 되었다. 그래서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이라부는 아이코에게 좀 쉴 것을 권한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에서 쉼이란 곧 잊혀짐을 의미하기에 아이코는 절대 그럴 수 없노라고 말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이라부는 소설이나 한번 써볼까 하고 소설을 쓴다. 아이코는 어이없어 하며 출판사에 이라부를 소개시켜 주게 된다.

이라부를 찾아온 환자 모두는 마음의 병으로 병원을 찾은 이들이다. 각자 자신의 맡은 일로 인해 생긴 마음의 병이었다. 너무 열심히 달려왔기에 생긴 병이다. 그래서 좀 쉬면 나을지도 모르는 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쉬기를 거부하고 대신 빠른 치료법을 위해 이라부를 찾았다.


그런데, 이라부가 내린 처방은 무엇이었나. 비타민 주사 하나 밖에 없었다. 이라부는 환자가 처해있는 상황에 직접 뛰어들어 그들이 자신의 직업세계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다시 말하면, 그들 스스로 현재의 상황을 환기하게 만든 것이다.

외로운 현대인들이 안고 살아가는 갖가지 문제점들이 소설에는 다섯 가지 직업으로 집약되었지만, 이라부를 찾고 싶은 사람은 정말 많을 것이다. 숨가쁜 달리기를 멈추고, 자신이 살아온 삶을 한번 뒤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이라부를 만난 것에 버금가는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가벼운 웃음과 재미있는 이야기로 속도감 있게 읽히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소설이었다. 우리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 <공중그네>는 오랜만에 만나는 유쾌한 소설이었다.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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