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펜으로 투쟁한다!

<전선기자 정문태 16년간의 전쟁기록>을 읽고

등록 2005.04.09 08:20수정 2005.04.0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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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사
풀 냄새가 느껴지는 정문태

정문태, 그에게서는 화약 냄새가 아닌 이름 모를 야생화 냄새가 느껴진다. 카메라와 펜을 들고 아시아의 험준한 산악과 무성한 정글을 헤치며 총탄이 오가는 전장을 누볐던 그에게서는 뿌연 포연이 아닌 싱그러운 풀 냄새가 전해진다. 실제로 그의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 내 눈을 의심했었다. 무슨 전쟁기자가 저렇게 말쑥하고 깔끔해? 수염도 없고 말이야. 사진속의 정문태는 전선의 꽃이라 불리는 전쟁기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인이나 방송인들처럼 세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그는 전쟁기자의 취재영역이 전선에 국한된다고 보지 않았기에, ‘정치 없는 전쟁 취재는 자위행위일 뿐이다’는 논리를 들고 전선과 각국 중앙정치판을 오갔다. 정문태는 “전선에서 총알이 어디로 날아가서 누구를 살해하고 있나를 취재하는 일이 종군기자의 몫이라면, 그 발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를 취재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종군기자 몫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 명령을 내린 주범은 언제나 정치였고, 그 정치는 전선에 있지 않았던 탓”이라며, 실제로 각국 정상들과 인터뷰에 나선다.

야마드 샤 마수드(아프가니스탄), 사바나 구스마오(동티모르), 아웅산 수치(버마), 야메드 야신(팔레스타인), 훈센(캄보디아) 등 총을 직접 든 현지 총사령관에서부터 각국 중앙 정치인까지 전장에서 총알이 발사되는데 방아쇠 역할을 하는 핵심 인물들을 취재원으로 삼는다. 왜? 전쟁은 가장 극단적인 정치행위이기 때문이기에.

종군기자(從軍記者)가 아닌 전선기자로

정문태는 종군기자라는 말 대신 전선기자라는 명칭을 주창한다. 종군기자(從軍記者)라는 건, 말 그대로 군에 복속된 기자라는 거다. 군에 복속됐다는 건 그들이 취재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제한된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낱낱이 기록해야 하는 기자들이 군의 일부로 편입되어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펜 끝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문태는 “전쟁으로부터 언론이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효과적인 감시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취재기자를 부르는 호칭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며 ‘전선기자’라는 새로운 명칭을 쓰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책 제목도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이다.

그 자신이 전선기자이지만 정문태는 전선기자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바로 미디어전쟁에 대한 비판이다. 그들이 쏟아내는 ‘전쟁 감상기’에 전쟁 그 자체가 뒤로 밀리고, ‘전쟁이 사유화ㆍ희화화 돼’버린다는 우려 때문이다. 독자들은 그런 감상기를 마치 소설 읽듯 전쟁을 즐기는 심각한 사태가 됐다고 정문태는 탄식한다. 전선기자들이 쏟아내는 기사들을 일일이 검증할 만한 장치가 없다는 전선의 특수성이 객관성을 박탈하고, 더불어 기자들의 ‘위험’ 콤플렉스가 주관적인 공포 조장을 하기까지 이른다. 인위적인 위험상황 연출이 바로 그것이다. 전쟁다운 그림을 얻겠다고 방송용 포격을 부탁한 일이나, 위험상황을 강조하겠다고 배경사격을 부탁한 일들이 바로 그것이다.


생각해보니 필자도 미디어전쟁에 포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영화나 소설 읽듯 전쟁을 즐긴다는 부분은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기자들이 쏟아내는 감상기에 필자의 눈이 고정됐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다.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감상기’들을 보고, 읽으며 전쟁을 소비했다고 하면 오버일까? 총탄이 날아다니는 ‘위험이 강조’된 TV화면을 바라보며 전쟁 참상에 비통해하지만, 내심 다음 화면에는 좀 더 화끈한 장면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전쟁 신파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기사들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국제여론을 조성하라


네팔, 스리랑카, 르완다, 에티오피아, 지부티, 예멘, 팔레스타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카슈미르, 코소보, 캄보디아, 버마. 이 지역들에 공통점은 무엇일까? 최근 10년 간 분쟁이 있었던 곳이다.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그곳들이 무척이나 빈곤한 지역이고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곳이라는 점이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팔레스타인, 동티모르는 서방 언론의 조명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그 지역들도 그 때 뿐이었다. 총성이 울리고 주검이 쌓여져야만 카메라 포커스가 맞춰질 뿐 그 이외 시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언론들의 지속적인 개입으로 국제여론이 조성된다면, 아무리 무장 세력들이 첨예하게 대치된 지역일지라도 엄청난 희생이 따르는 파국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여론의 감시가 개전을 막을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의 희생으로 분쟁을 종결지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위에 언급된 지역들에 감시자로서의 언론은 없었다. 그저 괜찮은 뉴스거리(큰 분쟁이나 소요)가 있어야만 기사를 송출하는 ‘뒷북’ 언론이 있었을 뿐이다.

국제여론을 두고 모두 다 외세 개입으로 칭할 수는 없다. 물론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국익을 염두 해 둔 여론조작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국제여론의 비판과 견제를 외세의 개입으로 치부하는 해당국들의 처신은 분노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런 면에서 2004년 12월 30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정문태 인터뷰는 곱씹어 볼 만 하다.

분쟁 지역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에 동의하냐는 물음에 그는 “ 난 개인적으로 국제사회의 분쟁 개입을 부정한 적이 없다. 개입 주체와 목적과 시기 같은 조건들이 명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을 뿐”이라며 동티모르에 대한 예를 든다.

"그렇다. 그 경우 국제사회가 개입 시기를 놓친 게 결정적이었다. 난 강력한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을 기사에서 누구보다 빨리 강조했다. 국민투표에서 독립이 결정되는 즉시 반대파 민병대가 동티모르를 불바다로 만들 것임을 모든 이들이 예고했는데도 국제사회는 비무장 경찰만 보냈을 뿐이다. 상황을 초동단계에 장악했어야 할 유엔 평화유지군은 동티모르가 불바다가 되고 수많은 이들이 살해당한 뒤에야 파견됐다."

왜 반미(反美)인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라오스, 캄보디아, 라오스, 동티모르 등 수많은 분쟁지역을 항상 따라다니는 망령이 있었다. 바로 미국 패권주의다. <전선기자......> 은 전편에 걸쳐 반미(反美)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세계분쟁에 미국과 관련되지 않은 지역이 거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시민에게 충성한다는 정문태이기에 대량학살을 자행한 정권이라도 자신의 이익과 합치된다면 원조를 마다하지 않는 미국의 대외 정책에 분노 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 언급할 수는 없고, 가장 경악스러운 내용 한 가지만 소개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 대 중반. ‘킬링필드’라는 영화가 국내에 소개된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캄보디아 집권세력인 크메르루주의 잔혹성을 알리는 영화였다. 크메르루주가 무려 200만 명이라는 자국민을 대량 학살했다고, 고발하는 게 영화의 큰 줄거리였다. < The Killing Fileds >, 영화 제목처럼 당시 캄보디아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영화에서처럼 자국민 200만 명을 죽인 폴포트와 크메르루주라면 이건 시대의 살인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문태는 킬링필드가 1969년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폴포트가 집권한 1975년 이전에 이미 미군에 의해서 엄청난 캄보디아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1969~1975년 기간 동안에 1차 킬링필드를 ‘편집’한 채, 2차 킬링필드에만 카메라를 들이댄 덕분에 미군의 전쟁범죄는 ‘내 머릿속 지우개’가 돼 버린다. 영화의 놀라운 힘이다.

1969년부터 1973년 사이(1차 킬링필드)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인해 베트남과 국경을 맞닿은 캄보디아는 무려 60만 명 이상이 죽음을 당한다. 당시 캄보디아는 중립을 선언했을 뿐더러, 미군은 네이팜탄 등과 같은 명백히 제네바 협정에 위배되는 폭탄으로 캄보디아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캄보디아 폭격 임무를 안고 날아갔으나 어디에도 군사 목표물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결혼식장을 공격 목표물로 삼았다."

오죽했으면 당시 폭격임무를 수행한 B-52폭격기의 파일럿이 이런 증언을 했을까? 1968년 구정공세로 베트남 전쟁에서 예봉이 꺾인 미군은 월맹군이 캄보디아를 거쳐 남베트남으로 들어온다는 판단 하에 베트콩 루트를 끊는다는 이유로 중립국 캄보디아를 폭격한 것이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황석영씨의 소설 <무기의 그늘>에서도 이 부분이 언급됐다.

영화 <킬링필드>만으로 캄보디아를 바라본다면 분명 폴포트와 크메르루주는 극악한 살인집단이지만 킬링필드의 본질을 살펴보자면 미국도 분명 극악한 살인자 소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물론 1975∼1979년 사이 캄보디아에서 200만 명이라는 사망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크메르루주(2차 킬링필드)의 학살에 의한 숫자는 10만 명이고, 나머지는 미국이나 유엔의 제재조치들에 의한 기아나 질병 때문이라고 한다. 그나마 200만 명이라는 숫자도 100만 명을 주장한 핀란드 정부 조사와 같은 보고서들에 의해 그 신빙성이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한국 사람들 대다수는 캄보디아 하면,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를 연상하는데, 앙코르와트는 찬란한 문화유적이기에 기념사진이나 현지를 다녀온 여행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러나 킬링필드는 전적으로 영화 <킬링필드>에 의존하여 판단하기에 한국 사람들은 폴포트에게 몽땅 자신의 치부를 덮어씌운 미국의 킬링필드를 보지 못한다.

그는 펜으로 투쟁한다!

정문태를 만나고 싶으면 시사주간지 <한겨레21〉를 펼치면 된다. 프리랜서 기자라 매주 기사가 실리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그의 기사를 볼 수 있다. 2003년에 발간된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에서 정문태의 직함은 ‘국제분쟁전문기자’이외에도 ‘아시아 네트워크 팀장’으로 기재됐다. 2000년, 아시아를 온전히 아시아인의 눈으로 보자며 언론인들과 민주화 운동가들이 뭉쳐 ‘아시아 네트워크’가 결성된다.

앞서도 언급됐듯이 정문태는 자신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시민이라고 당차게 말한다. 심지어 자신을 전장으로 보낸 언론사도 배신하고 시민 편에 서야 된다는 말까지 한다. 시민에 대한 복종, 아시아 네트워크, 반미. 일련의 키워드들이 정문태의 취재 성향을 보여주는 듯싶다. 인종, 국가, 이념. 어떠한 이해관계에서도 자유로워야 하며 정의로운 입장에 서서 취재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문태에게 필자는 펜으로 투쟁하는 아시아 민주화 운동가라고 칭하고 싶다.

시민의 편에 서서 전선을 기록하고, 군대를 감시하는 정문태. 정의로운 편에 서서 기사를 작성한다는 정문태. 그래서 버마와 스리랑카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기까지 한 정문태. 매캐한 화약냄새가 아닌 이름 모를 꽃 냄새가 전해지는 그에게 아시아의 한 시민으로서 아낌없는 갈채와 찬사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서평전문 사이트 리더스 가이드(www.readersguide.co.kr)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서평전문 사이트 리더스 가이드(www.readersguide.co.kr)에도 실었습니다.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

정문태 지음,
푸른숲,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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