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그림 속에서 길을 찾다

한국적 산수화 이미지 담아내는 사진작가 배병우

등록 2005.04.11 23:12수정 2005.04.1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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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도입 그 이후로 100여년의 자리

사진이라는 말조차 알지 못했던 시절, '펑' 하고 하얀 섬광과 함께 찍히는 사진을 보며 100여년 전 우리 조상들은 혼을 빼앗길까 두려워했단다. 1839년 프랑스인 '다게르'에 의해 발명된 사진이 우리 나라에 도입 된 것은 40년 후인 1880년의 일이라 하니, 당시의 사회적 정황으로 봐서 그럴 법도 하다.


더욱이 일본이 서양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샤머니즘을 이용, '사진약이 어린 아이를 이용해 만든다느니, 아이의 눈으로 사진기 눈을 만든다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를 유포했다고 하니 그 정황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로부터 130여년이 지난 오늘, 사진은 단순히 기록을 남기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예술로서 그 영역을 지켜가고 있다. 사진작가 배병우(56)씨는 '경성사진사협회'에 의해 우리 나라 예술사진 역사가 시작된 지 70여년만에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작품이 고가에 낙찰될 만큼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물론 작품을 자본의 잣대로 재단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a 그는 소나무를 좋아한다. 소나무야말로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피사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 나라 대표적인 소나무작가다.

그는 소나무를 좋아한다. 소나무야말로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피사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 나라 대표적인 소나무작가다. ⓒ 배병우

그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한국적 정서

그의 사진을 보노라면 선(線)으로 그린 선(禪)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네모 안에 박제된 피사체가 아니라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선 저편에서 꿈틀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모습들. 그것은 보는 이에 따라 산이 되기도 하고 어머니의 젖무덤이 되기도 한다.

사진평론가 김승곤씨의 말처럼 그가 찍은 하늘과 바다에서는 보랏빛의 바람이 불기도 하고 늘 그곳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어쩌면 간혹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도 한다. 그가 찍은 제주도의 오름이 그러하고 밤바다가 그러하다.


20년 전부터 그는 경주 남산을 찾았다. '소나무 작가'라는 별칭을 붙여준 바로 그 소나무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그의 작품에 담을 소나무를 위해 전국의 소나무 산지는 안 다녀본 곳이 없었다는 그는 비로소 경주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소나무숲을 발견한다.

a 그가 찍은 제주도의 오름은 보는 이에 따라 산이 되기도 하고 어머니의 젖무덤이 되기도 한다.

그가 찍은 제주도의 오름은 보는 이에 따라 산이 되기도 하고 어머니의 젖무덤이 되기도 한다. ⓒ 배병우

경주 남산 경애왕릉 주변 소나무숲이 최고의 피사체로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몸통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 겹겹의 비늘을 만들고 자부심처럼 빛나는 검초록의 솔잎들을 빛나게 한 남산의 소나무.


그것은 용트림의 선을 가진 위대한 자연이었다. 그는 안개가 자욱한 새벽에 수도 없이 그네들과 묵언의 대화를 나눴다. 이윽고 취해지는 암묵의 포즈에 따라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래서 그의 소나무는 전체가 아닌 안개가 휘감겨진 몸통과 허리만 보이기도 하고 때론 바람에 머리를 칭칭 감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와 소나무가 각자의 느낌대로 포즈를 취했고 찍었던 것이다.

그건 두 생명의 살아 있음에 대한 교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교감한 그 소나무숲은 화재와 태풍으로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한다.

a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작품에서 얻은 철학적인 영감은 그의 작품을 산수화 이미지로 만들어냈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작품에서 얻은 철학적인 영감은 그의 작품을 산수화 이미지로 만들어냈다. ⓒ 작가 배병우 제공

한국적 정서의 고민

그의 고향은 여수다. 봉산동인 그의 집에서 바다는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웠다. 100m 달려가면 저수지고 거기에서 다시 100m 달려가면 바다였다.

바다는 그의 놀이터였으며 배고픈 시절, 주린 배를 채워주던 생명의 보고였으며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삶 자체였다. 넓은 바다와 하늘이 주는 자연의 품안은 그에게 예술가의 기질을 가르쳤으리라.

그는 그림을 좋아했고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 쭉 미술부장을 도맡았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응용미술학과 공예도안을 공부한 그는 독일 빌레펠트대학에서 1년간 사진디자인을 연구한다.

a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말하는 그는 하지만 초심자들은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쉽고 편하게 사진을 찍으라고 조언한다. 사진은 작업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작가 배병우씨와 제자들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말하는 그는 하지만 초심자들은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쉽고 편하게 사진을 찍으라고 조언한다. 사진은 작업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작가 배병우씨와 제자들 ⓒ 권미강

이후 98년 프랑스 파리의 OZ갤러리를 비롯해 독일,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덴마크 등 해외활동을 통해 주목 받았으며 이때 다녔던 서구문명의 발상지에서 그는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담아내는 것이 사진작가인 자신의 정체성임을 깨닫는다.

그러한 고민은 그가 조선시대 화가인 겸재 정선의 작품에서 얻은 철학적인 영감과 이후의 작품들에서 보여 지는 산수화적 이미지로 표현된다. 사진이라기보다는 한편의 회화를 보는 듯한, 때론 일필휘지 한 선을 그은 듯한 그의 사진들에선 사진을 찍은 당시의 시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의 과거와 그 공간에서 있었던 일들이 드문드문 비치기도 하고 또한 들리기도 한다.

비원 등 우리의 전통건축물에서도 한국적인 정서를 찾아내고 있는 사진작가 배병우씨는 빛의 예술인 사진은 결코 누르면 그저 찍히는 가벼움이 아니라 제대로 된 빛을 선택하는데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말한다.

a 그가 찍은 하늘과 바다에서는 보랏빛의 바람이 불기도 하고 늘 그곳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어쩌면 간혹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도 한다.

그가 찍은 하늘과 바다에서는 보랏빛의 바람이 불기도 하고 늘 그곳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어쩌면 간혹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도 한다. ⓒ 배병우

그래서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딜레마에 빠지기 보다는 그저 쉽고 편하게 찍되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는 것이 초심자로서의 자세라는 그는 현재 서울예술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빛그림 속에서 찾은 길을 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1974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 졸업
1978     홍익대학교 대학원 공예 도안과 졸업
1988~89 독일 Bielefeld대학 G.Jaeger교수 초청으로 사진 디자인 과에서 1년간 연구
1981~현재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개인전
1982     관훈미술관, 서울
1985     한마당갤러리, 서울
1988     Raiffeisen Bank Gallery, Bamberg, 독일
1989     Hochschul Gallery, Bielefeld, 독일
1993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1998     OZ Gallery, Paris
2000     박영덕갤러리, 서울
         시공갤러리, 대구
2001  Gallery, New York, 미국
2002  아트선재센터, 서울
Galerie Gana-Beaubourg, 파리, 프랑스 
2003    Galerie Gana-Beaubourg, paris, 프랑스
 Tahiti Festival de la photographie. 타히티
2004    wind of tahiti galerie gana beaubourg  (9월)
         wind of tahiti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10월) 외 다수의 그룹전


이 기사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EXPO 문화사랑」4월호에도 게재됐음을 밝혀둡니다.

덧붙이는 글 1974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 졸업
1978     홍익대학교 대학원 공예 도안과 졸업
1988~89 독일 Bielefeld대학 G.Jaeger교수 초청으로 사진 디자인 과에서 1년간 연구
1981~현재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개인전
1982     관훈미술관, 서울
1985     한마당갤러리, 서울
1988     Raiffeisen Bank Gallery, Bamberg, 독일
1989     Hochschul Gallery, Bielefeld, 독일
1993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1998     OZ Gallery, Paris
2000     박영덕갤러리, 서울
         시공갤러리, 대구
2001  Gallery, New York, 미국
2002  아트선재센터, 서울
Galerie Gana-Beaubourg, 파리, 프랑스 
2003    Galerie Gana-Beaubourg, paris, 프랑스
 Tahiti Festival de la photographie. 타히티
2004    wind of tahiti galerie gana beaubourg  (9월)
         wind of tahiti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10월) 외 다수의 그룹전


이 기사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EXPO 문화사랑」4월호에도 게재됐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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