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과 추미애의 <잡보장경>

[미니시리즈-국회 문자향 ①] 그들은 무슨 글귀를 되뇌이고 있나

등록 2005.04.19 19:27수정 2005.05.3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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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실을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의미있는 구절을 적어놓은 액자들을 마주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보이지 않게 의원들의 초심을 일깨워주는 풍경소리 같은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각 의원실의 문자향을 하나씩 건져올려 그것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먼저 각당 대표의 의원실부터 찾았다. 이 연재가 '낭만이 없어진 정치판'에서 목을 축일 수 있는 한모금의 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a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의 의원회관 방에 걸려 있는 액자. 잡보잠경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의 의원회관 방에 걸려 있는 액자. 잡보잠경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과 추미애 전 민주당 의원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평소 불경 <잡보장경(雜寶藏經)>을 애송한다는 점이다.

문 의장의 의원회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잡보장경>의 일부 구절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며/이치가 명확할 때 행동하라/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역경을 참아 이겨내고/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 알고/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문 의장 "잘 나갈 때 조심하라"

a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자료사진)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문 의장이 <잡보장경>을 처음 접한 것은 1998년 초겨울이다. 당시 브라질로 연수를 떠난 문 의장은 현지에 살고있는 지인의 집에 걸려 있던 <잡보장경>을 발견했다. 문 의장은 당장 지인에게 똑같은 것을 구해달라고 간청했다. 마침 액자에 담겨 있던 <잡보장경> 구절은 지인의 처제가 쓴 것이어서 문 의장은 손쉽게 똑같은 액자를 구할 수 있었다.


문 의장은 "글귀가 너무 좋아서 내가 얻어온 것"이라며 "내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무실에는 늘 이 액자를 걸어놓고 가슴에 새긴다"고 말했다. 사무실은 바뀌어도 걸어놓는 액자는 바꾸지 않는다는 것.

문 의장에게 <잡보장경>은 한 마디로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뜻이다. 문 의장은 "전체 구절 중 하나도 빼놓을 게 없다"면서도 "특히 당 의장 취임 후에는 '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는 구절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초대 비서실장 시절인 2003년 11월, 문 의장은 청와대 직원들에게도 <잡보장경>의 구절을 소개했다.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 국민들의 재신임을 받겠다'고 선언한 지 한 달이 채 안된 시점이었다.

문 의장은 당시 청와대 내부통신망(CUG)에 올린 글을 통해 "우리들은 정치적 기류에 촉각을 곤두세우거나 민감해지지 말고 맡은 바 직무를 또박또박 챙기고 뚜벅뚜벅 나가야 한다"며 "외부에 나가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의장은 이 글 말미에 <잡보장경>의 구절을 첨부하고 청와대 직원들의 신중한 처신을 강조했다.

추미애 전 의원이 <잡보장경> 구절을 인용한 까닭은?

추미애 전 의원이 암송했던 <잡보장경>의 의미는 문 의장의 그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 추 전 의원은 지난해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인 3월 1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잡보장경>을 꺼내들었다. 거센 탄핵 후폭풍과 민주당 내분 사태의 한복판에서였다.

"우리의 기대가 실현되지 않아도/아직 우리의 기도와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한 번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미국으로 날아간 추 전 의원은 지금 <잡보장경>의 구절을 되새기며 '재기'를 꿈꾸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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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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