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남은 모든 희망을 너에게 줄게"

'폭력 아버지 치사' 이양 친구들의 부치지 못한 편지

등록 2005.04.21 09:20수정 2005.04.2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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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루빨리 좋은 모습으로 만나자" 이양 친구들의 편지는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고 말았다.

"하루빨리 좋은 모습으로 만나자" 이양 친구들의 편지는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고 말았다. ⓒ 박상규

'솔직히, 처음에는 장난인줄 알았어. 그래서 충격도 많이 받았어. 슬프기도 하고. 항상 밝고 명랑한 네가 그렇게 살아온 줄 몰랐어. 그 소식을 듣고 많이 울었어.ㅠㅠ 네가 없으니깐 담임선생님 흉볼 사람이 없다! 빨리 와서 나랑 같이 흉보자~ 허스키한 목소리, 정말 그립다! 빨리 와서 소풍 같이 가야지. 주연! 밥 많이 먹어. 예쁜 내가 있잖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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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살인'이라는 무거운 죄명으로 홀로 쇠창살 안에 있는 이주연(가명)양을 위해 친구들이 20일 편지를 썼다. 그러나 주연이는 자신을 응원하는 친구들의 편지를 받지 못했다. 담임 선생님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20일 오후 강릉경찰서에서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으로 송치됐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을 통해 전달될 예정이었던 친구들의 마음은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고 말았다. <오마이뉴스>는 편지를 쓴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의 양해를 구해 몇 개의 편지를 싣는다. 담임 박모 교사는 "주연이가 나중에 뉴스를 통해서라고 친구들의 마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많은 아이들은 여러 모양의 이모티콘을 사용한 편지에서 "주연이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그립다"며 "빨리 나와서 함께 소풍가자"고 썼다. 주연이가 다니던 A중학교는 오는 29일 소풍을 떠난다. 또 한 친구는 "법이나 사회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우리의 우정이 꼭 너를 우리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거야"라고 적었다.

남학생으로 보이는 한 친구는 "1년에 2번 어버이날이랑 국군의 날 때만 편지를 쓰지만 친구를 위해 써준다"며 "네가 없으니까 반 분위기가 썰렁하다"고 빨리 주연이가 돌아오길 희망했다.

a 한 친구가 이양에게 보내는 짧은 글.

한 친구가 이양에게 보내는 짧은 글. ⓒ 박상규

아래는 친구들이 주연이에게 보내는 편지 중 일부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주연아 안녕^^ 나 연하야. 요즘 너 없어서 다른 친구랑 같이 집에 가는데 재미가 없어.ㅠㅠ 그래서 더더욱 네가 보고싶구나. 밥은 잘 먹고 있는 거야? 빨리 와서 나랑 놀아 줘. 우리 학교 끝나고 컴퓨터 하러 가야지? 그리고 우리 시내에 가서 옷 사기로 했잖아.


나 아직까지 옷 안 사고 너 기다리고 있어. 우리 꼭 소풍도 같이 가자. 알았지? 주연아, 여기서 편지 그만 쓸게. 왜냐면 여기다가 다 써버리면 우리 꼭 다시 못 만나는 사람 같잖아. 그러니까 밥 많이 먹고. 꼭 우리 반에서 다시 만나자! 아자아자 파이팅!"(친구 송연하)

"주연아 안녕, 나 선미야. 흐흐흐~ 지금은 청소시간. 키득키득. 넌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궁금하다. 주연, 나 글씨 이상해도 예쁘게 봐줘~ 내 편지 다른 친구들과 비교되겠네.^^ 난 네 이야기 애들한테 들었는데, 정말 안 믿어지더라.ㅠㅠ


항상 밝고! 밥 듬뿍듬뿍 먹고! 빨리 학교에서 얼굴보장^^ 허스키 목소리가 없으니까 교실이 썰렁하네. 얼른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소풍도 같이 가야지. 주연아 내가 항상 맘속에서 기도하고 있어. 난 네 편인 거 알지? 진짜 보고 싶다. 주연! 힘내세요~ 우리 반이 있잖아요!! 귀엽고 깜찍한 우리 주연 꼭 힘내!" (친구 이선미)

"상사병이 나기 전에 어서 와줘"
친구들이 보내는 짧은 글

"나한테 남은 모든 희망을 주연에게 줄게! 화이링! 빨리 예쁜 주연이 모습 보고싶다!!"

"모두가 주연이를 좋아하니까 우리가 상사병이 나기 전에 얼른 돌아와 줘."

"음악시간에 옆자리가 그립단다. 심심해 죽겠어 빨리 와서 자리 좀 채워봐."

"주연아~ 지난 과거는 잊고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빨리 학교로 와라~ 그리고 힘내!"

"빨리 안올래?! 너 없으니까 교실이 썰렁~썰렁~ 한거 있지. 이제 좀 있음 시험인데 빨리 안 오면 니 큰일난다! 소풍가기 전까지 와야 돼! 안 오면 알아서 하셩~!"

"현재 상황에 대해 낙심하지 말고 기운내라. 항상 밝은 면을 보고 생각하면 언젠가 돌파구가 보일 거야. 그 희망의 돌파구로 온힘을 다해 노력을 하면 너는 해낼 수 있어 파이팅!"
"주연 안녕! 힘내고 우리가 너 없어서 얼마나 심심한 지 아냐? 수학 물어볼 애도 없고~! 편지도 오랜만에 써서 잘 못 쓰겠고! 글씨두 엉망이구~! ㅠㅠ 그래도 친구니까 써준다. 난 1년에 2번 편지 쓰는 거 같다. 어버이날이랑 국군의 날 때만 쓴다.

우리들이 쓴 편지보고 힘내! 특히 내 편지! 너 없으니까 반 분위기도 이상하잖아. 수업시간에도 잘 안 웃고 쉬는 시간에도 잘 안 웃고.ㅡ,ㅡ 얼렁와서 같이 웃고 뛰놀고 무엇보다 나 수학 좀 가르쳐 줘! 현경(가명)이는 안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고, 수연이는 만날 모른다고 하고...ㅠㅠ 그럼 네가 활기찬 모습으로 복귀하는 것을 바란다."(친구 현덕만)

"우리가 어떻게 도와야 할지... 법이나 사회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의 우정이 꼭 너를 우리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거야. 법보다 더 위대하고,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게 우리의 우정이잖아.^^

금방 우리 곁으로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한다.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루 빨리 좋은 모습으로 만나자.^^ 조금만 더 참고~ 나 보고 싶다고 울지 말어~~ 마음속에 항상 네가 있으니까 기운 내고 웃어야 돼.^^ 친구로서 도와줄 수 없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ㅠㅠ

네가 힘들었던 거 이해를 못하고, 그동안 너의 고민 같은 것을 알지 못해서 죄책감이 들어. 내가 친구로서 너무 한심해.ㅠㅠ 앞으로는 정말 잘해주고 너랑 정말 친한 친구가 되고 싶어~ 비밀 같은 것도 말하고. 네가 돌아온다면 정말 잘해줄 자신 있으니까 제발 우리 곁으로 돌아와 줘.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몸 건강히 지키고 감기 걸리지 말고! 나중에 웃는 모습으로 보자. 베리베리 사랑해~^^"(친구 강수정)


a 많은 친구들의 편지는 이양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많은 친구들의 편지는 이양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 박상규


검사 "이번 사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은 알고 있다"
이양 20일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으로 송치

이양은 존속살인 혐의로 20일 오후 강릉경찰서에서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으로 송치됐다. 앞으로 이양은 강릉교도소에 구속된 상태에서 검찰 조사를 받게 된다.

지금까지 이양의 가족을 비롯한 학교 교사들과 '가정폭력 피해 아동 A양 구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는 불구속 수사를 주장해 왔다. 김향숙 강릉 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장은 "이양이 겪고 있는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전문의 치료를 병행한 불구속 수사가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변호사를 선임해 이양을 최대한 빨리 석방시킬 계획이다. 김향숙 소장은 "이번 사건이 아동과 가정 폭력의 심각성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구속된 이양의 인권 보호와 생활의 안정을 위해 구명운동의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양의 사건을 맡은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황현덕 검사는 "예민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위에서도 함구령이 내려졌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황 검사는 "이양 사건과 관련한 사회적 여론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짧게 말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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