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먹고 학원 찾아와 발로 차고..."
아버지 살해한 여중생의 일기장

[현장] 이양 고모 "평생 가정폭력 시달리며 살아온 아이"

등록 2005.04.19 23:33수정 2005.04.2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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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양의 일기장에 "우리 아빠 술 먹는 거 정말 마음에 안든다"고 적혀 있다.

이양의 일기장에 "우리 아빠 술 먹는 거 정말 마음에 안든다"고 적혀 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a 숨진 이양의 아버지는 지난 3월 10일 학원까지 찾아가 이양을 폭행했다.

숨진 이양의 아버지는 지난 3월 10일 학원까지 찾아가 이양을 폭행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이양의 일기장, 어떻게 입수했나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에 위치한 이양의 집을 찾은 시각은 19일 오후 6시께였다. 그러나 집은 굳게 닫혀있었다. 이양의 할아버지가 사건 당일의 충격으로 인근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이날은 15일 사망한 이양의 아버지 장례식이었다.

기자는 이양의 할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갔다. 이양의 고모, 고모부가 있었다. 이양의 방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이양의 흔적이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시 이양의 집을 찾은 시각은 저녁 7시30분. 이양의 방은 따로 없었다. 거실에 있는 책상 하나와 컴퓨터가 '이양만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을 30여분 살펴보다 일기장을 발견했다.

이양의 고모와 가족들은 일기장 내용 일부를 기사화하는 것에 대해 동의했다.
"학원에 술 먹고 와서 나를 발로 차고 얼굴을 때렸다. 난 잘못도 안했는데. 너무 창피하다. 내가 너무 불쌍하다." (2005년 3월 10일)

"아빠가 술 먹으면 가슴이 뛰어서 살 수가 없다. 아빠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왜 이리 독해지는 걸까? 세상 살기가 힘들뿐이다. 신은 견디지 못할 시련은 주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왜 이리 견디지 못할 일들만 내게 일어나게 하는 걸까?" (2005년 1월 28일)

"아빠 술 먹고 장난 아니다. 나 학원 간 사이에 술 먹고 집을 다 부쉈다. … 도저히 아빠랑 살 수가 없다. 모든 걸 정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았으면 좋겠다." (2005년 3월 31일)


지난 15일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휘둘러온 알콜중독자 아버지를 넥타이로 목 졸라 살해한 여중생 이아무개(15)양의 일기장 내용 일부이다.

<오마이뉴스>는 19일 이양의 일기장을 입수했다. 일기장 내용의 대부분은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과 술 주정에 대한 괴로움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양의 아버지는 사건 당일에도 중풍이 걸린 자신의 아버지(74)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이양은 경찰 조사에서 "예전처럼 칼을 들고 위협을 하며 행패를 부릴 것이 두려웠다"고 진술했다.

이양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100일 된 즈음에 아버지의 술 주정과 폭력에 못 이겨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이양의 고모 "오죽했으면 자기 아버지 목을 졸랐겠느냐"

a 이양의 일기장에는 아버지의 술 마신날이 적혀 있다.

이양의 일기장에는 아버지의 술 마신날이 적혀 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이양의 고모는 "오죽했으면 자기 아버지의 목을 졸랐겠느냐"며 "그 아이는 평생 가정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 아이가 4살 무렵일 때 아버지가 그 아이를 세탁기에 넣어 돌렸는데 간신히 생명을 구했다"고 덧붙였다.


이양의 일기장에는 "아버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 아빠는 술만 안 먹는다면… 불쌍한 우리 아빠", "오늘 날씨도 안 좋은데 아빠는 고기 잡으로 갔다, 고생하시겠다"는 말도 자주 등장한다. 일기장 맨 앞에는 "신은 견디지 못할 시련은 주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이양의 집은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에 있다. 이양의 방 창문을 열면 푸른 동해바다가 보인다. 그러나 이 방의 주인인 이양은 지금 '존속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으로 강릉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다.

아래는 이양의 일기 가운데 일부이다.

a 이양의 노트에는 아버지의 생신이 적혀 있다. 이양은 일기장 곳곳에서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적었다.

이양의 노트에는 아버지의 생신이 적혀 있다. 이양은 일기장 곳곳에서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적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내가 지금까지 이 다이어리에 어떤 내용을 썼는지 한번씩 다 읽어봤다. 참나 나도 한심한 것 같다. 내가 아빠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것 같다! 아빠를 아주 마니 시러했던 것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부터 아빠가 술 끊는다고 했다. 행동으로 봐야 알 것 같다. 말로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 왜 이리 학원에 가기가 싫지? 푹~ 쉬고 싶어. 수학, 영어가 제일 하기 싫어! 수학이 제일 싫더라고. 휴~ 난 정말 나쁜 애인가 보다." (2005년 1월 2일)

"오늘은… 음… 힘든 날이었다. 지금 시각 10시15분. 아빠가 술 먹고 주정했다. 우리 아빠는 술만 안 먹는다면… 술 먹어서 그게 밉다. 우리 불쌍한 아빠. ㅠㅠ 하여튼 오늘은 왠지 견디기 힘든 날이었다. 무엇 때문에 견디기 힘든지 그걸 모르겠다. 휴, 난 너무 바보같다. 이제 밥 비벼서 우리 예쁜 할머니가 준다고 했다! 좋아^^ 이제 신경 쓰기 시러서 그만 쓴다." (2005년 1월 17일)

"음, 오늘 날씨두 나쁜데 아빠는 고기 잡으로 갔다. 고생하시겠다. ㅠㅠ 근데 아빠가 없으니까 너무 좋다. 너무 마음이 놓이고 좋다. 언제나 이랬으면 좋겠다." (2005년 1월 25일)

"아빠는 배 안가는 날엔 매일 술 먹는다. 술이 맛있나? 이해가 안가! 그걸 못 끊어? 못 끊는 이유는 하나! 술 중독증에 걸렸기 때문. 언젠가 손을 떨 수도 있다. 난 너무 고달프다. 이젠 아빠가 술 안 먹어도 싫어. 내가 죽어야 할아버지 할머니가 편히 남은 생을 사실텐데." (2005년 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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