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중학교 학생들을 '떼강도'로 몰지 않았나?

[取중眞담] '편의점 습격사건' 관련 <조선닷컴>에 답한다

등록 2005.04.23 20:30수정 2005.04.2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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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조선닷컴>은 <오마이뉴스> 21일자 ‘조선이 부풀린 중학생 편의점 습격사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비판했다.
23일 <조선닷컴>은 <오마이뉴스> 21일자 ‘조선이 부풀린 중학생 편의점 습격사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비판했다.조선닷컴

이 글은 23일 <조선일보>의 인터넷판인 <조선닷컴>에 올라온 [chosun.com 생각] 'K중 교사와 오마이, 교육은 안중에 없나'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한 해당 기자의 반론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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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조선>이 부풀린 '중학생 편의점 습격사건'

지난 21일자 <조선일보>에는 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일일체험 학습의 하나로 문화회관을 둘러본 K중학교 학생 400여명이 점심 식사 후 편의점으로 몰려와 진열장에서 껌과 음료수, 과자, 로션 크림, 헤어젤 등을 닥치는 대로 집은 채 돈을 내지 않고 가게문을 나섰다."

이 기사를 본 기자의 생각은 이러했다.

"어떻게 백주대낮에 중학생 400여 명이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학교가 학생들을 떼강도로 키운 게 아닌가? 기사가 사실이라면 일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우리 교육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조선> 기사 읽고 '학생들을 떼강도로 키운 게 아닌가' 의구심

<조선> 기사만 읽은 독자들의 반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조선> 기사에서 K중학교가 편의점에 돈을 물어주고 쉬쉬했다는 대목을 읽고 '학교가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른 학생들을 엄히 꾸짖지 않을 수 있나'라는 의문도 생겼다.


그러나 기자가 취재한 정황은 <조선> 기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중학생 수백 명이 대낮에 편의점 물건을 계산하지 않고 들고 나온 것은 분명하지만, 누군가 물건을 그냥 들고 나가자 다른 학생들이 뒤따라 이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좁은 지면에 온갖 정보를 집어넣어야 하는 종이신문의 한계인지 모르지만, 21일자 <조선> 기사에는 바로 이 부분이 빠져있었다.


학생들이 절도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조직적 범죄냐, 우발적 범죄냐'에 대해서는 '양형(量刑)'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선> 기사는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을 보여줌으로써 400여 명의 학생들을 '조직폭력배'나 '떼강도'로 몰아세우지 않았나?

이처럼 예민한 소재의 사건에 꽤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를 연상시키는 '편의점 습격사건'이란 제목을 단 것은 기사를 선정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조선>의 '말장난'이 아니었나 싶다. <오마이뉴스>는 <조선> 기사에서 빠진 부분으로 인해 독자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친절한 '각주'를 달았을 뿐이다.

그럼 다른 언론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도했을까? 21일 오전 <연합뉴스>는 같은 사건을 이렇게 보도했다.

"학생들은 일일체험 학습으로 문화의 전당에서 공연을 본 뒤 점심시간에 편의점에 들렸으며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 기다리다가 누군가 돈을 내지 않고 그냥 가게문을 나서자 뒤따라 물건을 든 채 편의점을 빠져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이 <연합뉴스>만큼이라도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오마이뉴스>도 <조선> 기사에 문제를 제기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학교가 돈 물어주고 쉬쉬했다"는 부분도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21일자 <조선>은 K중학교가 편의점에 돈을 물어준 뒤 학생들에게 내린 조치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학교측은 자수한 학생들에게 벌점 10점씩을 부과했다. 이 학교는 벌점 15점이 넘으면 상담교육, 반성문 쓰기 등을 시킨다. 이에 대해 3학년 박모(14)양은 '자수하지 않은 학생도 많은 데 솔직한 학생들만 불이익을 받았다'고 불평했다."

기사만 놓고 보면 학교가 학생들에게 별다른 징계를 내리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학생들은 청소와 훈화, 각종 봉사활동 등의 형태로 벌을 받았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벌점 총합 15점이 넘은 학생들은 교장·교감이 주말마다 따로 산으로 데리고 다니며 인성교육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가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자 외부에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한 것은 논외로 치겠다. 문제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아무런 징계도 내리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갔는가'이다. <조선>은 이 부분을 애매모호하게 넘어가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바로는 그렇지 않았다.

일부 네티즌의 주장대로 '삼청교육대'라도 만들라는 것인가

<조선닷컴>은 23일 기사에서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책임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경찰이 수사하라는 얘기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조선>에 묻겠다. 그럼, 이 학생들이 범죄에 대해 책임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조선> 기사에 흥분한 네티즌들 중에는 '법대로 형사처벌을 하라'는 의견이 많은데, <조선>은 "경찰이 수사하라는 얘기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일부 네티즌의 주장대로 '삼청교육대'라도 만들라는 것인지.

K중학교 학생들이 치른 '대가'에 대해 <조선>이 한 줄이라도 언급했다면 네티즌들이 학생들의 처벌을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기자는 학생들의 절도행위를 눈감거나 두둔할 생각이 없다. 법치를 무너뜨리자는 게 아니다. 기다리기 귀찮다고 물건을 그냥 들고 나갈 정도로 인내심이 부족한 학생들이 너무도 어이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들이 미성년자이고, 분위기에 휩쓸려 우발적인 범행을 저질렀다면 교육적인 차원에서라도 학교의 징계가 우선이지, 법적인 처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죄에 벌을 가하는 것은 '교정'과 '교화'가 목적이지, 벌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지난해 1월 서울고등법원은 조세포탈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징역 3년에 벌금 25억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방 사장이 ▲ 대표이사 취임 후 회계의 투명화를 위해 노력한 점 ▲ <조선>의 납세 실적이 우수한 점 등을 참작해 형 집행을 4년간 유예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50대의 신문사 사주가 탈세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세상을 활보하는 현실에 납득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세상이 꼭 '법대로'만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면, 갈 길이 먼 학생들을 몰아세우는 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조선>의 부풀려진 기사를 바로잡은 <오마이뉴스>가 우리 교육을 망친다는 인식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덧붙이는 글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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