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 취나물, 곤드레... 봄나물에 취해 볼까?

추억이 있는 맛 이야기(6)

등록 2005.05.16 19:00수정 2005.05.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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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취나물로 만든 주먹 쌈밥.  봄 나물의 향긋함과 된장의 구수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낸다.

취나물로 만든 주먹 쌈밥. 봄 나물의 향긋함과 된장의 구수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낸다. ⓒ 김선정

5월이 되자 보리소골도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들었다. 옥수수도 심고, 열무, 상추, 배추씨도 뿌리고, 지난해 고라니와 노루가 다 먹어버려 한 톨도 수확하지 못한 콩도 좀 심었다.


진형이는 가을에 콩 꼬투리 삶아 먹을 생각에 연방 싱글벙글하면서 콩을 많이 심으란다. 녀석의 성화에 세 골이나 심었지만, 지난해 콩 순 맛(?)을 보고 간 녀석들이 올해라고 피해갈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남편도 내 마음을 읽었는지, 이번에는 장에 가서 녀석들이 넘보지 못하게 그물이라도 사다 쳐야겠단다. 참, 인간의 인심이 너무 야박한 것 같지만 녀석들의 행태도 너무했다. 두골에 실하게 나온 콩 순을 몇 번씩이나 뜯어 먹었는지 알뜰하기가 이를 데 없이 아주 빈 고랑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콩 심느라 저녁 늦게 아버님 댁에 들렀다. 아버님께서는 올해 마지막일 거라면서 신문지에 곱게 싼 두릅을 한 뭉치 주셨다.

a 새벽의 물기를 촉촉하게 달고 있는 두릅, 두릅 순이 돋아 비로소 봄이 왔음을 안다.

새벽의 물기를 촉촉하게 달고 있는 두릅, 두릅 순이 돋아 비로소 봄이 왔음을 안다. ⓒ 김선정

“두 벌 딴 두릅이다. 이제 나오는 두릅은 가시투성이라 못 먹는다.”

신문지를 펼쳐보니 크게 웃자란 것, 중간 것, 아주 작은 두릅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작은 두릅을 가리키시면서, 예전 같으면 좀 더 큰 뒤에 땄을 텐데 요즘에는 나물 뜯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것을 가리지 않고, 아예 나무를 꺾어 버리기까지 해서 정작 산골 사는 사람들은 기다리다가 맛보기는커녕 두릅 구경하기도 힘들다고 하신다. 듣고 보니 나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지만 정말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a 제 순을 다 뱃기고 도로 겨울로 돌아간 것 같은 두릅나무가 안쓰럽다.

제 순을 다 뱃기고 도로 겨울로 돌아간 것 같은 두릅나무가 안쓰럽다. ⓒ 김선정

“서울 사람들, 원주 사람들, 인천 사람들이 여기 많이 오는데, 이 사람들이 왔다 가면 나물을 뿌리 채 뽑는지 어쩌는지 아주 씨를 말려 버리려고 해. 또 산 속에 들어가서 밥을 지어 먹네, 담배를 피네 하면 불이라도 날까봐 얼마나 근심이 되는지 원….”

아버님께서는 요즘 나물 뜯으러 다니는 도시 사람들의 행태에 도리질을 하시며, 말끝을 흐리신다. 우리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공연히 머리가 숙여졌다.


a 세 번째 돋아난 두릅, 제 몸을 살리기 위해 가시를 달고 돋아난다. 이제야 비로소 인간의 손에서 자유롭다.

세 번째 돋아난 두릅, 제 몸을 살리기 위해 가시를 달고 돋아난다. 이제야 비로소 인간의 손에서 자유롭다. ⓒ 김선정


a 생명의 끈질김을 보여주는 세 번째 두릅

생명의 끈질김을 보여주는 세 번째 두릅 ⓒ 김선정

두릅은 봄 한철 새싹을 틔워내는데 사람은 그 여리디 여린 새 순을 똑 부러트려 따 먹는다. 그러면 두릅은 또다시 힘들게 싹을 틔운다. 하지만 그 두 번째 싹마저도 허무하게 빼앗기면 마침내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으로 온몸에 가시를 잔뜩 달고 나타난다.

‘자, 이래도 너희들이 나를 따 갈테냐, 이래도! 이래도!’
“두릅.”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을 찍어 입에 넣으면 쌉쌀하면서도 향긋해서 이맘때 최고의 건강식으로 이름난 두릅이지만 입장을 바꿔보니 처절한 생존의 투쟁만이 느껴진다.

a 취나물. 나물은 너무 밑둥까지 꺾으면 죽어버린다. 취나물에는 봄의 향이 배어 있다.

취나물. 나물은 너무 밑둥까지 꺾으면 죽어버린다. 취나물에는 봄의 향이 배어 있다. ⓒ 김선정

그래도 나 역시 인간인지라 두릅을 보니 튀김도 하고, 메밀가루 묻혀 전도 좀 지지고, 물김치도 담고 싶어진다. 예전에 어머님은 약간 쇠서 뻣뻣해 진 두릅으로 물김치를 해 주셨다. 불그스름한 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해서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났다. 기억을 되살려 물김치를 담아 보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더 좋아한다.

일요일 아침, 우리 가족이 집 앞 미나리 밭을 매고 있는데 어김없이 또 서울 차들이 들이닥친다. 여자, 남자, 삼삼오오,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더니 산 속으로 들어간다.

a 비로소 파란 하늘에 순을 피워 올리는 엄나무. 엄나무는 개두릅 혹은 가시두릅이라고도 한다.

비로소 파란 하늘에 순을 피워 올리는 엄나무. 엄나무는 개두릅 혹은 가시두릅이라고도 한다. ⓒ 김선정

“또 나물 씨를 말리려고 왔군. 동네 할머니들은 내년에도 다시 나오라고 깊이 꺾지 않던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게 아주 뿌리를 뽑나 봐.”

남편은 내가 취나물이라도 좀 뜯을까 하면 동네 할머니들이 뜯어 온 것을 사 먹으란다. 우리보다 노인들이 맛있는 나물을 더 잘 아시는 것은 물론, 할머니들도 용돈 벌어 쓰게 사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나리 밭 잡초를 대충 뽑고, 손을 씻고 있는데, 올라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내려오기 시작한다. 남편이 왜 벌써 오느냐 물었더니, 나물이 없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괜히 이 산 저 산 돌아다니시지 말구요, 시장 옆 파출소 아래에 가면 이 동네 산에서 뜯은 나물을 파니까 그거 사 가지고 가세요. 좋은 경치, 맑은 공기 즐기셨으니까 이 지역 사람들이 힘들여 뜯은 나물 그것도 봄 한철일인데, 사 주어야지요.”

a 시아버지께서 주신 두릅. 시골 사람들도 맛보기 힘들만큼 외지인의 손을 많이 탄다.

시아버지께서 주신 두릅. 시골 사람들도 맛보기 힘들만큼 외지인의 손을 많이 탄다. ⓒ 김선정


a 두릅으로 담근 두릅 물김치. 소금간만 해도 향긋하고 싱그러운 맛이 가득하다.

두릅으로 담근 두릅 물김치. 소금간만 해도 향긋하고 싱그러운 맛이 가득하다. ⓒ 김선정

진지하게 말하는 남편이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비웃음뿐이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산 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일까? 그들의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눈초리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a 삶아낸 두릅과 부쳐낸 두릅 전. 두릅이 너무 비싸 호사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삶아낸 두릅과 부쳐낸 두릅 전. 두릅이 너무 비싸 호사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 김선정

우리는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나물을 잔뜩 사 왔다. 취나물, 곤드레, 참나물, 잔대…. 이름도 정겨운 나물들. 나는 이 나물들을 손질하고, 씻고, 데쳐서, 냉동실에 저장했다가 두고 두고 먹을 생각에 벌써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두릅 김치와 취나물 주먹밥 만드는 법

<두릅 김치>

1. 두릅은 손질해서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낸다.
2. 김치통에 물과 두릅, 마늘, 소금을 넣고 간을 맞춘 후 두릅 데친 물을 식혀서 조금 섞는다.
3. 이틀정도 지나면 먹을 수 있다.

<취나물 주먹밥>

1. 취나물은 손질해서 깨끗이 씻은 후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쳐낸다.
2. 밥은 고두밥으로 짓고, 소금과 참기름, 깨소금으로 살짝만 간을 한다(나중에 쌈장으로 간을 한 번 더 해 주기 때문에 ).
3. 밥을 조금 떠서 손으로 꼭꼭 눌러 주먹밥을 만든 다음 쌈장(집 된장에 물을 조금 넣고, 팔팔 끓이다가 풋고추 썬 것, 양파 다진 것, 표고버섯 다진 것, 마늘, 두부 으깬 것, 깨소금을 넣고 물기 없이 조려낸다.)을 가운데에 살짝 바르고, 미리 데쳐 놓은 취나물 잎으로 감싸서 다시 주먹으로 꼭꼭 눌러 완성한다.
/ 김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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