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컴퓨터의 부도와 삼보컴퓨터의 법정관리 신청 등 중견 PC업체들의 성공 신화가 무너져 내리면서 그 원인으로 '재벌식 사업다각화'의 병폐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들 업체의 '좌초'가 개인용 컴퓨터(PC) 산업의 침체와 이에 따른 저가 출혈경쟁의 심화, 또 독자 브랜드 없이 돈 안되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에만 매달려온 영업전략에서 비롯된 바가 크지만, 그 이면에는 방만한 문어발식 사업확장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때 국내 PC업계 3위까지 뛰어오르며 '한국의 델'을 꿈꿨던 현주컴퓨터는 결국 방만한 경영에 발목을 잡혔다. 2000년 매출 3325억원을 기록해 이듬해 코스닥에 입성하며 또 하나의 벤처신화를 일궈냈지만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PC업계의 침체가 이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되자 당시 경영진은 본업의 경쟁력 강화보다는 인터넷 전화 사업, 인터넷 쇼핑몰 사업 등에 발을 뻗기 시작했다. 게다가 2001년부터 회사의 적자행진이 계속되는데도 코스닥 공모자금으로 사옥을 새로 짓는가 하면, 이를 담보로 80억여원을 차입해 상가분양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2003년 말에는 PC사업을 접겠다는 폭탄선언을 하는 등 경영진의 갈지자 행보는 그치지 않았다.
방만한 계열사 확장 모기업 수익성까지 갉아먹어
삼보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삼보는 IT벤처 붐에 편승, 컴퓨터 제조부터 이동통신, 소프트웨어, 초고속인터넷, 방송, 벤처투자업 등에 이르기까지 '삼보왕국'을 건설하는데 매진했다. 그 결과 2001년에는 삼보가 거느리게 된 관계사는 해외영업을 위해 설립한 지사를 포함 50여개에 달했다.
그러나 IT거품의 붕괴와 함께 돌아온 것은 막대한 손실뿐이었다. 90년대 초 나래앤컴퍼니(구 나래이동통신)을 설립해 무선호출(삐삐)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동전화의 등장으로 '쓴맛'을 봤고 시티폰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98년엔 초고속인터넷 업체 '두루넷'을 설립해 99년엔 미국 나스닥에 직상장시키는 등 한때 빛을 보기도 했지만 2년만에 부도가 났다. 두루넷의 실패는 삼보에겐 회복 불가능한 '카운터펀치'였다.
두루넷에서만 3000~4000억원의 손실을 입으면서 2001년 이후 삼보는 적자 신세로 전락했다. PC산업의 침체로 모회사인 삼보의 수익성도 악화되는 판에 PC산업과는 관계없는 수많은 계열사들의 손실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올 1분기에도 삼보는 자사의 저가형 노트북 '에버라텍'이 돌풍을 일으키며 1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지분법 평가손으로 2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야만 했다.
결국 현주컴퓨터와 삼보컴퓨터의 몰락은 PC산업의 침체보다는 방만한 사업다각화가 근본원인을 제공했다는 평가다. 특히 삼보의 경우 창업자인 이용태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홍순 삼보컴퓨터 회장과 차남인 이홍선 전 두루넷 부회장, 사위인 이정식 전 티지벤처 대표 등이 경영능력 검증없이 족벌 경영체제를 구축한 것도 방만한 경영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주나 삼보처럼 저가형 PC를 생산하고 있는 주연테크의 경우 PC산업의 하향세에도 불구 흑자 행진을 하고 있고 자기만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앞세운 대기업들도 선전하고 있다"며 "잘 나갈 때의 동력을 핵심사업의 역량 강화로 연결하지 못하고 허비한 것이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이지,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책임회피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