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편애하지 않는 사랑을 해 줄 수 있을지…

집 앞 텃밭에 자라고 있는 배춧잎을 묶으면서 하게 된 생각

등록 2005.05.26 10:33수정 2005.05.2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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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텃밭엔 여러 가지 것들이 자라고 있다. 포도나무에다 돌나물, 호박, 오이, 딸기, 수박, 참외, 토마토, 대파, 그리고 배추. 포도나무랑 돌나물만 빼고 나머지 것들은 내가 모종을 사서 옮겨 심은 것들이다. 조금씩 여러 가지를 심다보니 그렇게 잔뜩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 가운데 가장 마음이 쏠리는 것은 배추다. 다른 무엇보다도 배추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엊그제 모종을 옮겨 심은 것 같은데 벌써 많이 컸다. 이파리들도 많이 자랐고 속도 그만큼 깊어가는 것 같다. 좀 더 크면 아마도 놀놀한 속잎들이 빼곡히 들어설 것 같다.


집 앞 텃밭에 자라고 있는 배추에요. 모종을 사서 심을 땐 한 뼘 정도도 넓었는데, 지금은 너무 좁아요. 그래서 서로 이파리들끼리 부딪히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나 걸러 한 포기씩만 줄로 묶어 주었어요. 이렇게 하면 아무 탈 없이 잘 자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요.
집 앞 텃밭에 자라고 있는 배추에요. 모종을 사서 심을 땐 한 뼘 정도도 넓었는데, 지금은 너무 좁아요. 그래서 서로 이파리들끼리 부딪히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나 걸러 한 포기씩만 줄로 묶어 주었어요. 이렇게 하면 아무 탈 없이 잘 자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요.권성권
그런데 배추가 잘 자라서인지 문제가 생겼다. 이파리들끼리 서로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종을 살 때만 해도 한 뼘 정도만 띄워서 심으면 되는 줄 알았다. 모종을 파는 가게 아저씨가 그렇게 말해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추가 크고 보니 한 뼘은 너무 비좁았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뼘하고도 반 정도는 더 띄워서 심었을 걸….

아쉬워하거나 뉘우쳐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이파리들끼리 달라붙어 있는 것을 띄워주기로 했다. 하나 걸러 하나씩 줄로 돌돌 묶어줬다. 쌔게 묶으면 배추 이파리들이 아파할 것 같아서 가냘프게 묶었다. 그저 옆으로만 뻗지 않게 붙잡아 주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하고 봤더니 어느 정도 괜찮은 듯 했다. 서로 옆구리를 찔러대는 걸 어느 정도 띄워 놓았기 때문이다. 위로 가지가 뻗을 수 있도록 치켜세워 줬기 때문이다. 좀 더 커 봐야 할 것 같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좋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해서 배추가 잘 자랄 수 있는 길을 다 터주었다. 하나 걸러 한 포기씩만 해 주었지만 그것도 꽤나 됐다. 그래서 그런지 허리도 조금 아파왔다. 아픈 허리를 살며시 펴며 그것들을 모두 보는데 무척 부자 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문뜩 그런 생각이 밀려 왔다. 이렇게 하나 걸러 한 포기씩만 해 주면 안 해 준 것들이 섭섭해 하지 않을까, 자식들이 여럿 있는 집안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떤 아이는 해 주고 또 다른 아이는 해 주지 않는다면 몹시 서운하게 생각하겠구나….


이른바 ‘편애(偏愛)’라는 것을 생각해 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식들 쪽에서 보는 것이고, 부모 쪽에서는 또 다르지 않겠나 싶다. 이를테면 자식들 하나하나에게 맞는 사랑을 해 주는 것. 모두 똑같이 해 주는 게 아니라 따로따로에게 맞는 사랑을 베푸는 것….

그래서 야무진 아이는 잘 자란 배춧잎처럼 그 가지만 잘 터주면 될 것이다. 또 아직 덜 자란 아이는 더 자라야 할 배춧잎처럼 그저 마음껏 크도록 놔두면 될 일이다. 그리고 형제나 자매끼리 자리싸움도 할 수 있을 테니, 그럴 때면 그 사이만 띄워주고 풀어주면 될 일이다.


배춧잎을 묶어 주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이 있을까? 아마도 보름 안팎이면 태어날 둘째 아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하나 밖에 없을 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둘이 된다는 생각에 조금은 보는 눈이 달라진 듯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둘을 편애하지 않고 따로따로에게 맞는 사랑을 베풀어 줄 수 있을지…. 그저 그 눈이 조금씩 더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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