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같은 삶과 소금보다 못한 삶

[맘 가는 대로 떠난 고창여행-마지막회] 김성수 생가와 심원염전

등록 2005.06.01 10:41수정 2005.06.0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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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촌 김성수 생가 입구

인촌 김성수 생가 입구 ⓒ 김정은

서정주 시 문학관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 지역의 대부호였던 인촌 김성수의 생가가 있다고 하여 찾아가는 길, 운전대를 잡고는 있으나 마음이 그리 편한 것은 아니었다. 인촌 김성수 역시 최근 친일행적으로 독립 유공자 서훈 취소 등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기에 더욱 그렇다.

호남 대부호, 인촌 김성수 생가


a 인촌 생가 안뜰에 서있는  조부 김요협과 양아버지 김기중, 친아버지 김경중 동상. 기중과 경중은 친형제이다.

인촌 생가 안뜰에 서있는 조부 김요협과 양아버지 김기중, 친아버지 김경중 동상. 기중과 경중은 친형제이다. ⓒ 김정은

호남을 대표하는 대부호의 집이니 매우 화려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찾아간 김성수의 생가는 생각 외로 평범했다. 물론 남북으로 길쭉한 넓은 대지 안에 낮은 담을 경계로 북쪽의 큰집과 남쪽의 작은집이 함께 모여 있는 구조는, 크기만으로 볼 때 재력가의 집이란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집 자체가 전통 대지주의 집 특유의 화려함이라든가 고풍스런 카리스마는 없어 보인다. 그저 생활하는데 별 불편 없는 실용적인 성격으로 지어져 있어서일까?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은 1880년대에 인촌의 조부인 김요협과 양아버지 김기중, 친아버지인 김경중이 함께 모여 살면서 그 때 그 때 필요할 때마다 차례로 지은 건물로, 그의 일가가 의병운동과 화적들의 피해를 벗어나기 위해 1907년 헌병수비대가 설치되어 있던 가까운 부안군 줄포로 이사하기 전까지 살았다.

이 때만 해도 대부호라고 하기에는 이른 '천석꾼'의 살림 규모였기에 넓고 실용적이긴 하지만 부호집만이 지니고 있는 규모나 화려함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김성수 집안은 줄포로 이사한 후 줄포항이라는 미곡수출항을 거점으로 시작한 미곡수출을 통한 이윤 확대와 토지 재투자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해 호남의 대부호로 성장할 수 있었다.

큰집, 작은집이 한울타리에 모여 사는 정겨운 형태이지만 모두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상황을 고려해서 각각의 별문으로 독립성을 부여한 것이 매우 이채로웠다.


민족주의자? 친일파?

인촌의 생가를 나와 아직까지도 그가 설립한 삼양사의 세력을 느낄 수 있는 염전으로 출발하면서 인촌이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실 한국을 움직이는 정치, 경제, 교육, 언론 분야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촌의 힘은 광범위하다.

<동아일보>로 대표되는 언론, 고려대학교와 중앙학교재단으로 대표되는 교육, 삼양그룹으로 대표되는 기업에다가 보수 야당의 정통성을 쥐고 있는 정치계에 이르기까지, 이쯤 되면 대통령이 부럽지 않을 만큼의 권력 아닐까?

인촌은 1891년 둘째 김경중의 아들로 작은집 안채에서 태어나 후에 후사가 없었던 백부 김기중의 양자로 들어가 울산 김씨 가문을 이끌어갔다. 태생적으로 부호집의 장남 역할을 하게 된 그에게서 애초부터 독립운동이라는 급진적인 사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가 초기에 독립유공자로서 서훈이 된 이유는 일제치하에서 다방면으로 벌려온 각종 사업들 덕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민족운동가로 평가하는 각종 사업들, 예컨대 '실력양성론'에 기반을 두고 추진한 각종 문화사업이나 자강운동들이 태생적으로 보면 3.1운동 직후 2번이나 총독으로 부임했던 유화정치론자 사이토의 이른바 '문화통치' 시절에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하나가 바로 <동아일보>의 창간이다. 사이토 총독이 조선인에 대한 회유정책의 일환으로 친일인사에게 3개의 신문 발행을 허가하였는데 그 하나는 대정친목회 예종석의 <조선일보>이고, 국민협회 민원식의 <시사신문>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박영효에게 <동아일보> 발행을 허용하였던 것인데, 박영효에게 허가된 발행권을 김성수가 이용하여 <동아일보>를 창간한 것이다.

출발은 이처럼 불순했지만 3.1운동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되어 있던 송진우가 석방되어 계속 <동아일보> 운영의 중심을 떠맡게 되면서 식민통치 시절에 제한적으로나마 민족 여론을 형성하는 축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촌 김성수는 독립운동가라거나 극단적인 친일파라고 하기에는 좀 어폐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촌 자신은 지금의 재벌들의 행태처럼 호남 부호의 계승자답게 그의 재산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 때 그 때의 시대에 맞게 적당하게 양쪽에 거리를 두고 산 것뿐이니 그에게서 확고한 독립의지라든가, 맹목적인 친일 감정들을 찾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물론 그 또한 일제 말기 전쟁동원체제에 협력하는 '임전보국단'을 만들어 징병제 학병 동원 연설이나 글을 기고하는 등 친일 행위를 하였다. 그러나 그의 성향으로 봤을 때 그 행위는 오로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재산과 지위 등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는 국가보다 개인이나 가문의 부와 명예 지키기가 중요하고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세상 어느 누구와 어느 정권과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 주어졌던 독립유공자 서훈의 취소는 매우 바람직한 행위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친일파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도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에 불과하므로 그리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지는 심원염전과 골프장

a 심원염전의 소금창고

심원염전의 소금창고 ⓒ 김정은

인촌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자동차는 어느덧 그의 또 다른 재산이었던 염전지대에 도착했다. 전량 삼양염업사에 납품하는 소금을 생산하는 일명 삼양사 염전이라고도 불리는 고창군 심원면 고전리 염전이다.

마을 어귀 매점에 "삼양사 소금 팝니다"란 작은 문구가 위태롭게 달려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여기가 염전 맞아" 하는 생각이 들만큼 염전의 존재를 찾기 어려웠다.

예전 전성기 때 이곳은 110만평의 광활한 규모였다는데 값싼 수입 소금 등에 밀려 수지타산이 맞지 않자 급격히 줄어들어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라서 그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나 지금은 폐염전지대에 건립한다는 골프장 공사가 한창이라 공사차량의 행렬만 북적일 뿐이다. 사실 이곳 염전을 찾은 이유는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염전 구경도 할 요량이었지만 진짜 한국산 천일염을 눈으로 직접 보고 구하기 위해서였다.

요즘 시중에 진짜 우리나라산 천일염보다 한국산 소금으로 둔갑한 중국산 수입 소금이 싸게 돌아다니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중국산 수입소금을 사서 낭패를 당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수입산 소금으로 맛낼 수 없는 김치의 맛

언젠가 큰 올케언니가 김치를 잘못 담갔다며 통배추 김치 몇 포기를 가져와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김치의 사각사각한 맛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였다. 나중에 발견한 문제는 바로 소금 탓이었다. 별 생각 없이 아무 곳에서 싼 맛에 소금을 사서 배추를 절였는데 배추가 탄력을 잃은 채로 절여지더라는 것.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소금이 중국산 수입소금이었다나….

그런데 문제는 가격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어느새 시중에서 한국산 천일염을 구하기 어려워져버렸다는 것. 겉자루는 한국산이라고 적혀 있어 사더라도 이 소금이 진짜 한국산 천일염이 맞을지 의심부터 하다보니 이 기회에 진짜 염전에서 진짜 한국산 천일염을 눈으로 보고 직접 사겠다는 심산이 더 컸다.

그러나 대부분 없어진 폐염전과 그 폐염전에 세워지는 골프장 공사현장에서 구석에 박혀 있는 염전을 찾기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 골프장 공사장으로 잘못 들어가기도 하면서 한참을 헤매다 보니 저만치에서 꽤 오랜 풍상을 겪었을 법한 소금창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공사현장 옆 구석에 위치한 염전 하나. 20년 전만 해도 이 동네가 염전으로 꽤 번성했다지만 중국산 소금에 밀려 채산성을 상실한 요즘에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몇 가구 중 하나다.

소금 사러 왔다며 불쑥 들이닥친 방문객을 맞아주는 건 말이 불편해 보이는 아주머니와 이 염전을 운영하는 주인아저씨 단 둘뿐이었다.

거짓을 모르는 소금은 묵어야 제 맛

a 심원염전. 바닷물을 퍼올리는 수차는 사라진 지 오래이고 이제 그 역할은 현대식 양수기가 한다.

심원염전. 바닷물을 퍼올리는 수차는 사라진 지 오래이고 이제 그 역할은 현대식 양수기가 한다. ⓒ 김정은

소금 달라는 말에 1년 묵은 소금, 햇소금 중 어느 것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한동안 멍하게 있다가 어떤 게 좋은 거냐고 반문하니, 그 아저씨 무슨 그런 어리석은 질문이 있느냐는 듯 퉁명스럽게 "당연히 간수가 빠진 1년 묵은 소금이 더 좋지"하고 대답하신다. 그래서 소금 단가도 1년 묵은 소금이 더 비싸다고 한다.

하여간 소금 30kg 한 가마에 1만2000원을 주고 자동차 트렁크 속에 실은 다음 염전 구경을 하러 나섰다. 아직 소금을 모으기 이른 시간인지 염전 속에 얌전히 담긴 바닷물은 햇볕 속에서 천천히 증발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예전 염전 사진 속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물레방아같이 생긴 수차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아저씨에게 수차를 물어보니 말수 적은 아저씨, '도대체 이 여자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도통 모른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수차로 바닷물 퍼 올리던 시절은 20년 전의 일이여. 지금은 편한 양수기가 있는데 뭐 하러 힘들게 수차로 바닷물을 퍼올리누."

그러고 보니 삐거덕거리는 수차를 세월 속에서 밀어내버린 것은 전기를 사용하는 고성능 양수기였다. 양수기 덕분에 지독한 수차 돌리기 노동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좋아했던 게 채 20년밖에 안 되었는데, 어느덧 채산성에 맞지 않아 경쟁에서 뒤처진 염전 자체가 수차 신세 마냥 세월 속에서 조용히 퇴장되기만을 기다리고 있게 된 것이다.

a 현재 심원염전 주위는 폐염전을 활용한 각종 공사가 한창이다.

현재 심원염전 주위는 폐염전을 활용한 각종 공사가 한창이다. ⓒ 김정은

활기를 잃어버린 염전. 시간이 지나 또 다시 이곳에 오면 계속 이곳에 머물러 있으리라는 보장조차 할 수 없는 급박한 상태이지만 몇몇 곳은 지금 이대로 남아주기만을 소망할 뿐이다.

이곳이 없어진다는 것은 바로 우수한 질의 우리나라산 천일염이 사라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산 소금으로 푹 절여져 물렁물렁해진 김치,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의 고유음식인 김치 맛조차 고유의 아삭한 맛을 상실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선운사 인터체인지를 통해 서울로 돌아가는 길. 속도를 내면서도 심원염전에서 만난 부부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말하기 불편하지만 친절했던 아주머니와 무뚝뚝하지만 진실해 보이는 아저씨. 염전이 사라지게 되면 평생을 염전을 하면서 묵묵히 소금 같은 인생을 산 이 부부는 어디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는지….

계획도 예정도 없이 맘대로 떠난 여행, 트렁크 속에는 묵직한 소금 한 가마가 고향을 떠나 서울까지 고단하지만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었다.

미당 서정주, 인촌 김성수, 그리고 심원염전의 소박한 부부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삶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고 누구나 화려한 삶을 꿈꾸고 동경한다.

그러나 그 화려함을 위해 거짓 치장을 하는 인생이라면 한 웅큼의 소금보다도 못한 삶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금이 쓰이지 않는 곳은 없다. 만약 소금이 없는 삶은 어떻게 변할까? 그러나 소금은 전혀 거짓을 모르는 속성이라 미움을 받기도 한다.

집어넣은 만큼 짠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사람들은 욕심부 려 많이 집어넣고는 짜다고 미워한다. 그럴 때면 소금은 조용히 속삭인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 매사 적당히 집어넣으라고 말이다. 적당히 집어넣는 소금은 이 세상 모든 것의 맛을 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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