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시문학관 입구김정은
그러나 이러한 그의 변명은 권력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권력 바라기를 한 그의 행적에 비추어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당 시 문학관에는 역시 그러한 그의 행적을 전적으로 증명해주는 작품 하나가 버젓이 전시되어있다. 바로 입으로 담기에도 민망한 내용의 전두환 찬양시이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중략)
이 나라가 통일하여 흥기할 발판을 이루시고/쥐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일제 말기 남보다 뛰어난 시적 재능을, 가미가제 특공대로 끌려가 개죽음을 당한 불쌍한 소년을 영웅이라 찬미하는데 소비하며 일제에 대한 찬양과 황국신민화 정책의 선전에 동조한 그의 행적이 그의 말대로 친일이 아닌 종천순일이라고 한다면 해방 이후 자발적으로 쓴 <이승만 전기>나 낯 뜨거운 '전두환 찬양시'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미당의 시 속에는 마음을 울리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그 재능은 "애비는 종이었다"고 외치던 당돌함에서도, 선운사 동구 막걸리집 목 쉰 육자배기 가락의 질박한 소박함에서도, 이제는 거울 앞에 선 누님과 같은 편안한 모습에서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재능 못지않게 잘못된 그의 행적은 준엄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미당의 시세계와 그와는 전혀 동떨어져 보이는 그의 유쾌하지 못한 삶의 행적 때문에 잔뜩 얽혀진 생각을 추스르며 문학관을 나오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문학사에서 이미 고전이 된 미당의 주옥같은 작품과, 비록 껄끄럽지만 그의 작품 속에 엄연히 공존하고 있는 친일행적을 비롯한 그의 끊임없는 권력 바라기라는 그늘들…. 오늘날 한국 문학계가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정확히 비판하고 감수해야 할 원죄의식 같은 것이 아닐까?
외세배격을 외치던 동학혁명의 진원지 고창에서 나고 자란 대표적인 인물 서정주의 친일 논란을 보면서 지독하게 곪아버렸으나 아물지 못하고 있는 역사의 생채기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곪아버린 상처는 빨리 터트려 버리는 것도 상처 치료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목적지인 인촌 김성수의 생가로 서둘러 차를 몰았다.
덧붙이는 글 | 맘가는 대로 떠나는 고창여행다섯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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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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