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반원 사망' 경찰 초동수사 문제 있다

화성서, 쌍방 폭력행위 사건에서 한쪽만 수사... 편파 시비 자초

등록 2005.06.02 07:53수정 2005.06.02 11:14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4월 16일 경기도 오산시 수청동 택지개발지구 내 철거농성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아무개(23)씨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머리에 함몰 부분이 발견되면서 경찰 초동수사의 허점과 편파성 시비가 일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

농성철거현장 우성그린빌라 101동 건물에 철거민들이 망루를 설치했고 철거용역반원들은 농성장 진입을 시도했다. 철거민 농성자들은 이들을 향해 콘크리트, 페인트 통, 화염병을 던지고 시너를 뿌렸다. 이 과정에서 철거용역반원 이씨가 화염병에 맞고 불에 타 숨졌다.

숨진 이씨는 농성장 출입구 건물 앞에서 발견됐고 철거용역반원의 피해자 진술과 목격자 진술을 확보했다. 숨진 이씨의 시체를 소방대원이 수습했고 병원으로 옮겨 의사가 시체를 검안하고 검사가 검시했다. 의사는 선행사인을 전신화상으로, 사망사인은 심정지, 호흡정지로 판단했다. 부검이 불필요하다는 검사의 지휘를 받아 시체를 유족에게 인도했다.

화염병을 던졌다고 자수한 성아무개(39)씨를 심문했고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 화성경찰서가 초동수사 당시 철거용역반원의 진술로 확보한 사망자 위치와는 다르게 또다른 목격자에 의해 확보된 사진. 사건 당일 시체는 소방대원의 진술과 일치했고 철거반원들의 진술과는 엇갈렸다.

화성경찰서가 초동수사 당시 철거용역반원의 진술로 확보한 사망자 위치와는 다르게 또다른 목격자에 의해 확보된 사진. 사건 당일 시체는 소방대원의 진술과 일치했고 철거반원들의 진술과는 엇갈렸다. ⓒ 오산자치시민연대 제공

시민단체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의 문제제기

경찰은 농성현장에서 철거민과 철거용역반원이 101동 건물과 102동 건물에 각각 올라가 서로 공격을 했는데 쌍방의 폭력행위는 무시하고 농성자의 폭력행위만 수사했다.


경찰 수사 결과와 달리 사망자 위치가 101동 건물과 102동 건물 사이에서 발견됐다.

사망자 옆에 소화기가 있었던 점으로 미뤄 102동 건물에 올라가 철거농성장을 향해 공격을 가했던 철거용역반원이 던진 소화기에 맞았을 가능성도 있다. 육안으로 판단한 시체검안으로는 선행사인을 밝힐 수 없는데도 부검을 하지 않았다.


수사절차와 방식

다른 일선 경찰서 관계자들은 경찰이 사건과 관련한 수사를 할 경우 쌍방의 폭력행위 사실 여부를 확인하면 사고사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양측을 수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제3의 목격자를 확보하고 현장을 보존하고 감식해 사망자 위치, 사인을 뒷받침하는 물증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또 시체검안으로는 선행사인을 밝힐 수 없고 나중에 사인에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어 지병이나 질환에 따른 변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하고 선행사인의 물증을 확보해 범행사실에 대한 자백과 일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런 수사절차에 따라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리거나 쌍방이 가해자일 경우 확보된 물증을 통해 실제 사인에 도달하게 한 범죄사실을 수사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쌍방 폭력행위의 경우 각각 가해자 가운데서도 서로 혐의 사실이 다를 수 있으므로 그에 맞는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인규명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것.

a 진상조사단에 참여했던 오산자치시민연대의 주장처럼 이씨가 숨졌던 장소 주변에는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소화기와 철거장비들이 있었다.

진상조사단에 참여했던 오산자치시민연대의 주장처럼 이씨가 숨졌던 장소 주변에는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소화기와 철거장비들이 있었다. ⓒ 김경호

초동수사의 허점

하지만 이번 사건을 수사한 화성경찰서는 이번 사건에서 이런 절차를 무시했다. 화성경찰서는 쌍방 폭력행위 사실을 한쪽의 일방적인 폭력행위로 단정해 초동수사에서 사고사의 가능성은 일단 배제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또 수목원에서 충돌한 장면을 목격한 제3자의 목격자를 확보하지 않았다. 대부분 철거용역반원을 피해자와 목격자로 확보하고 진술을 받았다. 경찰은 시체검안서로 선행사인을 확보할 수 없는데도 범죄사실을 입증할 물증이 되는 부검결과를 스스로 차단하고는 화염병에 의한 사망사건으로 단정하고 이를 발표했다. 물증이나 결정적인 단서를 찾을 수 있는 현장감식은 이미 현장이 훼손된 지난 달 29일에서야 했다.

결국 경찰은 물증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수사원칙을 깨고 진술만으로 범죄사실을 구성했다. 한쪽 진술을 뒷받침하는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현장에서 화상을 입은 철거반원의 신발, 구두, 바지에 인화성물질이 있는지만을 국과수에 의뢰했다.

a 화성경찰서는 수사의 결정적인 단서가 나올 수 있는 현장 감식을 지난 달 29일에서야 했고 이미 현장은 훼손된 상태였다.

화성경찰서는 수사의 결정적인 단서가 나올 수 있는 현장 감식을 지난 달 29일에서야 했고 이미 현장은 훼손된 상태였다. ⓒ 김경호

규명해야 할 의혹들

오산자치시민연대는 경찰이 사건 당시 이미 현장에 있었고 101동과 102동 건물 사이에서 오고 간 폭력행위를 비디오나 사진으로 채증했거나 직접 보았을텐데도 일방적인 폭력행위에 따른 사망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한 점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또 소방대원이 101동과 102동 건물 사이에서 시체를 수습했다고 진술했는데도 철거반원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사망자의 위치를 농성장 출입구 앞쪽에서 불과 얼마 안 된 곳으로 결론을 내린 점에 대해서도 의문이 간다고 밝혔다.

특히 소방대원이 숨진 이씨가 무엇인가에 1차적으로 맞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화재사 했을 가능성을 진술해 수사 단서가 될 수 있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편파수사 시비

오산자치시민연대 김해성 자문위원은 "수사내용과는 다른 진상조사단의 주장이 제기됐고 사인에 대한 의혹이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경찰은 이번 사건을 농성자들의 일방적인 폭력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수사했다"며 "이는 경찰의 초동수사가 철거민에 대한 막연한 편견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오산지역 철거민투쟁 비상대책위 박형모 위원장은 "경찰은 초동수사 때부터 철거민들이 철거용역반원을 화염병으로 불태워 살인을 저지른 사건으로 단정하고 수사를 했다"며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사건을 공정하게 바라보고 수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새로 취임한 최원일 화성경찰서장은 "경찰 수사는 괘씸죄 등 감정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며 "관련자들이 필요 이상 처벌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고 수사에 의구심이 제기됐기 때문에 마땅히 재수사를 통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현실은 진실을 버겁게 받아들이려고 할 때가 많다. 하지만 항상 진실의 무게는 실천하는 사람들의 조그마한 생명력으로 존재하곤 한다. 함께 나누고 함께 진실을 캐내는 속에서 가까이 하고 싶다. 이제는 선,후배들과 항상 토론하면서 우리의 자리를 만들어 가고 싶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