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전집 1곽동운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가 김유정은? 먼저 소설 <동백꽃>과 <봄·봄>이 떠오를 것이다. 또 두드러진 해학과 토속적인 문체가 다음을 이을 것이다. 거기서 끝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 김유정에 대한 그림을 그리지 못할 것이다.
왜? 거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김유정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동백꽃>과 <봄∙봄>의 작가로, 또는 해학과 토속적인 문체의 소설가로 김유정이 '박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수식어로 김유정을 묶어두기에는 그의 작품세계가 그렇게 단조롭지 않을뿐더러 그의 사상을 담아내기에도 역부족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김유정은 교과서에서 던져준 몇 개의 단편적 지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동백꽃과 봄·봄 이외에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과연 김유정이 그거 밖에 내세울 게 없을까?
김유정역과 실레마을
2004년 12월 1일. 우리 철도 역사상에 의미 있는 일이 하나 벌어졌다. 경춘선 신남역이 김유정역(驛)으로 개명한 것이다. 특정인의 이름을 딴 역사 명(名)은 처음인데다, 그 인물이 김유정이란 30년대를 풍미한 걸출한 소설가라는 사실이 세간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개명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기는 했지만 김유정역은 분명 시골 간이역이다. 역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들이 아담한 농촌 촌락이라 거주 인구가 적기 때문이리라. 그 소박한 간이역을 빠져나와 약 10분 간 걸으면 김유정 문학촌에 당도할 수 있다.
그 곳이 바로 김유정이 태어난 실레마을이다. 경춘선 코스가 그렇듯 실레마을도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 아름다운 풍광이 김유정의 창작열을 자극시켰을 것이라는 건 쉽게 추측할 수 있겠다.
약 30여 편에 이르는 김유정의 단편소설들의 상당수가 그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레마을이 전형적인 강원도 농촌인 터라 남도 지방의 평야지대와는 토지 이용 방식이 다르다. 즉,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주를 이루었다.
산지가 많기 때문이다. <아내>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빈농들은 겨울 산에서 나무를 해와 가지고, 그걸 장에다 팔고 조나 옥수수로 연명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동백꽃>의 '나'와 점순이가 함께 '찐하게 쓰러진' 장소도 산길을 타고 올라가야 있었고, <만부방>에서 노름꾼들이 투전을 벌이던 장소는 인적이 드문 산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환경은 김유정 문학에 토속성과 해학성을 빼놓을 수 없는 기반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즉, 산골짜기 촌동네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설로 옮기다보니 토속성과 해학성이 기교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작품에 녹아서 분리할 수 없이 융합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