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의 한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꾸준히 이산가족 상봉이 이어졌다. 사진은 지난 2000년 8월 15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의 아들 리동섭씨가 남의 노모와 눈물의 상봉 장면.사진공동취재단
6·15 남북 공동선언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50년 동안 지속된 '적대관계'가 지금은 '뗄래야 떼 수가 없는 상호의존적 관계'로 발전하고 있음은 남북관계를 보여주는 여러 통계수치로 증명된다.
우선 남북교역액은 6·15 공동선언 전인 1999년 3억3300만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6억9700만 달러로 2배 이상 늘었다. 2004년 남북한 교역규모는 북한 대외 무역액의 19.6%로, 남한은 39%를 차지한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교역상대가 됐다.
인적 교류는 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남한의 방북 인원은 1999년에 5599명이던 것이 2004년에는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2만6534명으로 늘어 2만명 시대를 개막했다. 금강산 관광객은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다. 또 1만명의 이산가족이 상봉을 했다. 비록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수치이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금강산 관광과 함께 개성공단 건설, 경의선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사업 등 이른바 3대 경협사업도 본궤도에 올랐다.
정부가 지원한 민간 베이스 사업인 금강산관광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육로 버스 관광을 거쳐 승용차 관광의 단계까지 올랐다. 개성공단 건설은 지난해 12월 15일 시범단지에서 첫 제품이 출하되어 당일 생산된 북한산 냄비가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판매돼 서울 시민의 밥상에 오르는 단계에 진입했다. 남북의 허리를 잇는 경의선·동해선도 2002년 9월 18일에 연결을 위한 착공식이 열려 지난해 12월 연결이 완료되어 임시 개통되는 데 이르렀다.
남북은 또 지난 5년간 총 124번, 연 평균 24번 이상의 각종 대화를 가졌다. 장관급 회담의 경우 2000년 7월 이후 지난해 5월까지 모두 14번이 개최되었다. 그 이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달 21∼24일에 15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서울에서 열림으로써 다시 남북 대화가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군사 분야에서도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신뢰구축의 단초가 마련됐다. 휴전선에서의 상호 비방방송은 이미 자취를 감췄으며 서해상의 우발적 충돌방지방안에도 합의했다. 남북한 군 당국이 6·25전쟁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마주앉아 장성급회담(2회)을 개최해 비록 초보적 수준일망정 신뢰구축을 통한 평화공존의 단초를 마련한 덕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