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4공구를 터라!"

새만금 방조제 4공구문제 해결을 위한 어민사회단체 대화마당

등록 2005.06.20 09:01수정 2005.06.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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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쌀협상 무효 국회비준저지를 위한 농민총파업을 알리는 플래카드와 농협합병 반대 농성천막이 먼저 눈에 띈다. 동진강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계화면. 40여년 전 이곳은 바다였다, 갯벌이었다.

대규모 농지를 만들기 위한 새만금사업과 쌀협상무효를 주장하는 플래카드가 어쩐지 땅과 바다, 농민과 어민의 숨통을 한꺼번에 조이는 정책으로만 보이는 것은 과도한 반응일까. 계화도로 들어가는 양쪽에는 모내기를 마친 무논엔 뿌리를 제대로 내린 듯 푸른 잎이 너울대고, 늦게 모내기를 마친 논에선 '뜬모'를 다시 심느라 농민들이 눈길이 바쁘다.

a 계화도 면소재지 모습

계화도 면소재지 모습 ⓒ 김준


a 대화마당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계화도 마을 입구에 걸렸다.

대화마당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계화도 마을 입구에 걸렸다. ⓒ 김준


핵폐기장에서 새만금으로

양쪽 길가엔 '4공구를 터라'는 깃발이 휘날리고, 물때를 잘못 알고 찾아온 외지사람들이 계화도 살금갯벌 주위를 맴돌다 입구 컨테이너 박스 옆에서 가져온 점심을 먹고 있다. 갯벌바닥은 가뭄에 논바닥 마냥 바싹 말라 운동장처럼 딱딱해져 있다.

삼보일배, 핵폐기장 등 2003년과 2004년은 전국의 이목을 부안에 집중시켰다. 핵폐기장 문제는 전면백지화을 이끌었던 부안은 이후 핵폐기장과 일란성 쌍생아라고 여겼던 새만금문제로 전환해 적극 대처하겠다는 방침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핵폐기장 이전에 비해서 새만금문제를 군민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는 것이 성과라면 성과랄까. 핵폐기장 투쟁 초기만 해도 공공연히 '새만금 찬성, 핵폐기장 반대', 아니면 '새만금 침묵, 핵폐기장 반대'였던 점에 비하면 놀랄만한 변화이지만.

a "4공구를 터라"

"4공구를 터라" ⓒ 김준

이제 새만금 문제는 법정싸움으로 옮겨졌다. 2005년 1월 서울고등법원은 '권고안'과 2월 판결문을 내놓았다. 판결의 요지는 '피고 농림부 장관이 2001년 5월 24일에 한 공유수면 매립면허 등 직권취소 신청 거부처분을 취소하라'는 청구를 받아들여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의 판결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에 관해서 여러 가지 사전변경이 있기 때문에 원고 측이 취소신청이 있는 이상 농림부장관이 변경처분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15년 동안 새만금사업을 진행하면서 만경강 수역의 오염도가 더 증가되고 오염 상태를 관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농지조성의 필요성이 감소하고 다른 용도로 바꾸겠다고 하지만 확정적인 계획이 없고 이것을 전제로 환경영향평가 등이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새만금사업을 그대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피고가 재판부의 결정을 수용한다면 새만금 사업계획을 취소하거나 변경해야 하지만 정부와 농림부는 이에 불복하고 다시 고등법원에 항소하여 다시 법정싸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어민들이나 시민사회단체들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정부에서는 금년 하반기에 다시 방조제 전진공사를 시작하여 내년 초에 마무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새만금 논의 초점을 '방조제공사'가 아니라 내부 '간척지 활용' 문제로 가져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미 매립지 활용방안에 관한 연구는 마무리단계에 있으며, 재판부의 결정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어 발표를 보류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레에 모여든 새만금 소송 주역들

6월 18일 오후 2시가 되자 격포, 돈지, 위도, 계화도 등 부안 일대의 어촌계장 및 어민들이 계화도 하리에 자리한 갯벌배움터 '그레'에 모여 들었다. 그리고 지난 새만금 소송을 맡았던 박태현 변호사, 신구상안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던 전북대 오창환 교수, 전북새만금생명평화모임, 부안새만금생명평화모임, 풀꽃세상, 전북환경운동연합, 대학생 등 70여명이 그레에 모여들었다.

이번 대화마당은 시민환경연구소와 독일등대재단의 후원으로 법원 판결 이후 서로 바라만 보고 있는 시민환경단체와 어민들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자리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였기 때문에 열렸다.

a 홈통에 갇혀 말라 죽은 칠게

홈통에 갇혀 말라 죽은 칠게 ⓒ 김준


a 계화도 양지포구

계화도 양지포구 ⓒ 김준


4공구가 막히고 무슨 일이 생겼는가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6공구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2개 공구는 배수갑문과 관련된 공사이며, 나머지 4개 공구는 가력도, 신시도, 야미도, 비응도 구간을 연결시키는 공사이다. 이중 4공구는 김제와 군산해역의 갯벌생태에 큰 영향을 주는 만경강과 서해바다를 연결하는 곳이었다.

4공구는 2003년 6월 삼보일배로 새만금사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사이에 야간작업을 강행하며 막았었다. 그 후 바로 법원은 방조제공사 잠정중단 결정을 내렸었다. 이후 갯벌생태계의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4공구가 막히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어민들은 군산과 김제의 어민들이다. 이들은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대화마당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3-4월에 나와야 할 쭈꾸미가 12월, 1월, 2월에 나오기 시작하고, 소라단지를 걷어 올리면 속에 찬 뻘(펄)이 냄새가 나서 어민들도 고개를 돌린다고 호소하고 있다. 방조제 밖에 바다에 다이버들을 이용해서 바다 속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격포어민 김영철)

"갈수록 힘들다. 작년에는 그래도 백합으로 하루에 7-8만원 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올해는 잘해야 3만원, 그렇지 않으면 한 번에 내지 못하고 모아서 내고 있는 실정이다. 고기라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숭어이며, 이것도 기름 값이 안 되어서 나가질 않고 있다."(계화도 청년회장, 장승구)

"새만금 어민들은 지난 재판부의 권고안 이후 심한 실망과 좌절감이 휩싸여 있다. 생합을 잡는 여성들은 4공구가 막히기 전에는 5-6만원 벌던 것이 지금은 잘 벌어야 3만원 정도, 배를 가지고 고기를 잡는 남성들은 기름 값도 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여성들에 비해서 남성들이 더 심한 실망과 좌절에 휩싸여 있다. 지금 어민 스스로 뭔가 계기를 마련해야 하고 구체적인 방법들을 만들지 않으면 더욱 어려워진다. 어민들이 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의견을 모아 추진해야 한다. 그런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계화도 어민 고은식)

"새만금 문제에 '자연과학적 접근'은 할 만큼 한 것 같다. 이제 남은 문제는 새만금의 방조제 공사가 진행되면서 어민들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생겼으며 앞으로 어떤 결과가 예측되는지 인문사회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일본의 이사야만 간척사업도 마지막 해결점은 어민들의 생활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 자료가 결정적이었다."(전북대 오창환 교수)

a 새만금 영상기록을 보고 있는 참석자들

새만금 영상기록을 보고 있는 참석자들 ⓒ 김준


a 행사를 마무리하고 뒷풀이마당

행사를 마무리하고 뒷풀이마당 ⓒ 김준

"앞으로 간척지 내부 어떻게 할 것인가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정부에 대응해서 우리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민들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새만금이 어떤 땅이 되어야 하는지 제시해야 한다."(시민환경연구소 안병욱 소장).

"앞이 안 보일 때는 등대가 필요하다. 방향을 잡는데 조그마한 도움이 되고자 '전북새만금생명평화모임'을 만들었다. 분위기도 가라앉고 힘들지만 가장 큰 적은 정부도 개발업자나 개발환상이 아니라 절망감이 아닌가 싶다. 어렵지만 바다 밑에 흐르는 큰 물줄기가 있기 때문에 힘을 모아 함께 나가자. 전북단체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할 것이다."(전북새만금생명평화모임대표 이세욱 목사)

"왜 새만금전시관은 개발홍보만하는 것인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한다면 일방적으로 정부안만 홍보할 것이 아니라 이제 갯벌의 가치도 함께 소개하는 전시관이 되어야 한다. 우리도 적극적으로 이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서울의 환경단체들도 새만금문제에 집중할 활동가를 2-3명을 선발하여 지역에 상주하며 일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부안새만금생명평화모임 공동대표 서동진)

"현재 유일한 싸움은 재판이라는 점을 변호인단도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쉽지 않는 싸움이며, 해야 할 싸움이고 이겨야 할 싸움이다. 항소심에서 논란이 될 부분은 우리의 기술력으로 현재의 방조제가 안정한가 하는 점이 될 것이다. 피고 쪽에서 막지 않으면 유실될 우려가 있고 엄청난 예산이 추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기 때문이다. 다음은 방조제 안과 밖의 피행상황을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 수집과 정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재판에서는 거시적, 해양환경, 수질 논쟁이었지만 이번 항소심에서는 미시적으로 주민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조사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공익환경법률센터 부소장 박태현 변호사).


a 대화마당이 열린 갯벌배움터 '그레' 모습, 김 공장을 고쳐서 사용하고 있다.

대화마당이 열린 갯벌배움터 '그레' 모습, 김 공장을 고쳐서 사용하고 있다. ⓒ 김준


a 계화도 갯벌

계화도 갯벌 ⓒ 김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특별히 어떤 결론을 모으자고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모아지기 시작했다. 이날 모아진 의견은 정리하면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북과 부안지역의 여론이라는 지적이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전북지역은 지방자치단체, 언론, 단체들이 연합하여(이를 '성장연합'이라고 부르기도 함) 새만금사업 추진만이 전북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여론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재판부의 판결로 정부에서도 애초의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이견들이 있었지만 선거를 앞두고 '새만금사업=지역발전' 전략을 뒤집을 만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의 강력한 추진의지 때문에 항소 이후 새만금사업을 현행대로 계속 진행한다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우선 방조제 공사를 마무리하고 이후에 논의를 하겠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에서 찬성과 반대를 논의할 만한 대등한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그렇다고 참석자들은 새만금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들이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최소한 삼보일배 당시에 비해서 매우 희망적이다. 국면전환을 위해서도 법정공방 혹은 새로운 재판을 위해서도 객관적인 자료의 수집 정리가 필요하다. 어민들의 삶이 방조제 사업 이후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생합은 그 전에 비해서 얼마나 잡히고 있으며, 고기잡이는 어떠한가, 작업형태와 작업시간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a 새만금 개발 배후지 분양을 알리는 광고

새만금 개발 배후지 분양을 알리는 광고 ⓒ 김준

그 동안 새만금문제에 대한 해양환경, 수질문제 등 거시적인 접근이 지난 법정다툼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민들의 삶에 이러한 환경변화가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앞으로 어떤 결과가 예측되는가를 정밀하게 그리고 과학적으로 조사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합을 캐는 어민, 고기를 잡는 어민, 양식을 하는 어민, 수집상, 상인 등 새만금 갯벌에 기대어 사는 모든 주민들의 삶이 방조제로 인해서 어떻게 변했는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이를 위해서 대화마당에서는 조만간에 전문가, 어민,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우선 조사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과학적 조사방법론에 입각한 현지조사 설계를 마련하고, 이후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들이 참여하여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다시 전문가들이 분석하기로 하였다.

2시에 시작한 대화마당은 6시 무렵에 마무리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계산법으로 자연의 가치를 측정하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제 새만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제 방조제는 2.7km가 남아 있다. 이 정도의 구간이면 정상적인 속도로 작업을 한다면 2-3개월이면 공사를 완료할 정도의 분량이라고 한다. 새벽에 일찍 바다에 갔다 온 어민들은 오후 늦은 시간에 다시 바다로 나가는지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다. 오늘 같은 날은 하루에 두 물을 볼 수 있다. 바다는 예측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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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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