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묻고 꺼낸 검은 보물, 신라토기

토기 명장 배용석

등록 2005.06.21 11:49수정 2005.06.2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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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평생 토기를 만들면서 살았기에 토기의 진가를 몰라주는 것이 안타깝다는 배용석 명장, 그가 돌리는 물레는 60년이 된 것이라고 한다. 자동 물레가 많이 나와있지만 이 물레만큼 편한 것이 없다고 한다.

평생 토기를 만들면서 살았기에 토기의 진가를 몰라주는 것이 안타깝다는 배용석 명장, 그가 돌리는 물레는 60년이 된 것이라고 한다. 자동 물레가 많이 나와있지만 이 물레만큼 편한 것이 없다고 한다. ⓒ 권순길

BC 57년, 신라가 국가로서 처음 이 땅에 뿌리를 내린 후 1천년을 이어오고 다시 1천년이 흘렀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한 국가의 수도로 이어온 경주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신라를 대표한 신비로움을 간직한 땅이다.

그 풍요로움은 땅만 파도 나오는 신라 유적과 유물들 때문이기도 한데 이러한 것들은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자 역사가 된다. 이렇게 묻혀 있던 단서를 원형으로 복원해 다시 새로운 1천년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면 어떨까?


신라토기는 평생을 재현에 바쳐온 한 장인에 의해 제 모습을 되찾았다. 토기명장 배용석(裵容石)씨. 그에게서 재현된 토기는 신라의 역사를 다시 이어나갈 수 있는 검은 보물이다.

단서를 풀어내고 명장이 됐지만...

티탄족(族)인 이아페토스의 아들 프로메테우스가 주신인 제우스로부터 훔쳐 인간에게 주었고 그것이 문명의 발달을 가져왔다는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불은 세상이 돌아가는 데 필수적인 에너지다. 사람들은 불을 사용하면서부터 보다 편하고 풍요로운 삶을 찾게 되었다. 불을 다스릴 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 방울의 이슬이 뱀으로부터는 독으로, 젖소로부터는 우유로 새롭게 만들어지듯이 불도 누가,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극과 극의 가치를 지닌다. 몇 천도의 불을 다스려 과거의 것을 재현한다는 것은 곧 젖소의 우유를 만드는 일이다. 그 영양가를 위해 명장 배용석씨는 평생을 바쳤다.

처음 흙을 만지고 불을 알게 된 지 47년이 되는 그에게 세상은 명장이라는 호칭을 주었지만 그는 스스로 명예롭지 못하다고 한다. 어렵게 재현한 신라토기가 자본의 가치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재현하기도 어려웠지만 그 만드는 과정도 까다롭고 어려워 지켜나가려는 이가 자꾸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신라토기에 묻다


안동사범학교를 나와 교사가 되겠다던 그의 꿈을 깬 것은 아버지의 타계였다. 2대째 옹기 가업을 잇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신 것이다. 집안의 맏이였던 그는 당시 풍습에 따라 가업을 물려받았고 17세의 어린 나이로 옹기가마의 주인으로 일꾼을 다스렸다.

처음엔 속도 상하고 절망도 했지만 옹기 만드는 일이 제법 익숙해지자 흥미가 생겼다. 남들은 5년 넘게 걸려 익히는 옹기 만드는 법을 그는 3년만에 터득한다. 사람들은 손재주가 있다고 했지만 주인으로서 자유롭게 옹기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여건 때문이었다고 그는 자평한다.


a 인터뷰 하는 내내 사람 좋은 웃음을 많이 웃어주셨다. 토기의 진한 색깔만큼 그도 진해 보였다.

인터뷰 하는 내내 사람 좋은 웃음을 많이 웃어주셨다. 토기의 진한 색깔만큼 그도 진해 보였다. ⓒ 권순길

옹기가 그릇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이었으니 생활의 어려움은 없었던 그에게 토기와의 운명을 정해준 것은 스물여섯 살 때 앓았던 장티푸스였다. 병으로 일을 하지 못했던 그는 소일거리로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았고 그때 본 신라토기에 반한 것이다.

쇠같이 생긴 것이 흙으로 빚은 토기라니 믿을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이 직접 토기를 만들어보기로 한다. 박물관에서 본 대로 여러 번의 실험을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도자기야 여러 가지 자료가 나와 있지만 신라토기는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자료가 전무한 상태였다.

혼자 독학을 통해 그가 찾아낸 실패 원인은 흙과 불이 옹기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길로 전국을 다니며 토기 흙을 찾아 나섰다. 지리산으로 무등산으로 창원, 김해, 김제 전국의 방방곡곡 흙이 좋다는 곳은 다 다녔지만 10년만에 그가 찾은 흙은 영천과 안강, 내남 등 경주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흙을 찾은 그는 어떤 불인지도 깨달았다. 하지만 그 10년을 그는 아까워하지 않는다. 부여와 진주, 공주, 마산 등 전국의 국립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신라토기는 물론 백제와 가야의 그것들에 대한 연구도 함께 해나갔으니 말이다.

신라토기는 오직 소나무로만 불을 지피고 서서히 열을 가해 1300도를 넘겨야 제대로 된 작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소나무는 높은 열로 오르면서 생긴 재들이 자연유약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는 행복했다.

몸에 좋은 토기가 외면 받는 안타까움

91년 명장으로 선정됐지만 그의 작품은 평생을 바쳐 꺼낸 보물값치고는 상상 외로 값이 싸다. 그가 어렵게 재현한 기마인물상은 15만원 선 정도다. 그것도 제자가 만들면 반으로 줄어든다.

a 그는 경주 민속공예촌에서 토기 전시장 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경주 민속공예촌에서 토기 전시장 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 권순길

다완 하나에 10만원이 채 안되는데도 사람들은 비싸다고 사가지 않는다. 왜일까? 막사발 등은 최하 몇십만원에서 1백만원을 호가하는데 신라토기는 그렇지 못하다. 소위 돈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배우러 오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기술 정도로만 배우고는 도자기 쪽으로 전환한다.

이러다 맥이 끊길까 걱정이 된다는 그는 며느리에게 만드는 법을 전수하고 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신라토기야 말로 대단한 그릇이지요. 요즘 웰빙 하며 좋은 것만 찾는 사람들에게 신라토기는 딱 맞는 그릇이예요." 신라토기에 물을 담아놓으면 놓을수록 물맛이 좋아지고 음식을 담아놔도 맛이 변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그는 그 이유가 바로 흙과 불 때문이라고 한다.

천도가 넘는 높은 열에도 부러지지 않는 영천 봉정흙과 접착력이 뛰어난 안강 노당흙, 산소와 탄소가 결합돼 있어 색이 검은 내남의 노곡흙을 배합해 오직 소나무로만 일주일간을 전통장작가마에서 구워 내니 뿜어내는 원적외선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라토기를 만들면서 신라인들의 뛰어난 지혜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는 그는 신라토기가 명맥을 유지하려면 그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 하나 만드는데 꼬박 하루 걸리고 2개월에 한 번 구우면 약 60% 정도 밖에 나오지 않지만(아주 간혹 가마 전체를 몽땅 버리기도 하는 비운(?)을 맞기도 한다) 끝까지 신라토기를 고집하는 그에게서 토기를 예술적 경지로까지 끌어낸 신라 장인의 넋이 살아나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EXPO문화사랑'6월호에도 게재됐음을 밝혀둡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EXPO문화사랑'6월호에도 게재됐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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