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제주도 한 번 가는 게 소원이에요"

베트남 이주노동자 안하이의 소원

등록 2005.08.05 02:50수정 2005.08.0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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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12월이면 제가 한국에 온 지 딱 10년이에요. 그동안 한국에서 여행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제주도는 불법체류자라 한 번도 못 가 봤어요. 한국 사람들 신혼여행 꼭 제주도 가잖아요. 저도 제주도 한 번 가는 게 소원이에요."


쉼터에 들러 숨도 고르지 않은 베트남인 안하이가 얼마 전부터 노래를 부르듯 하는 말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저를 대접한다면서 불러 놓고는 제가 입도 못 대는 오리피와 오리탕을 내놓으면서 '쉼터에서 제주도 여행을 가면 안 되나요'라고 묻더군요(베트남인들에게 오리피는 보양식이라 귀한 음식입니다만 음식을 가리지 않는 저로서도 벌건 피를 마신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아서 사양했습니다).

a 안하이가 내놓았던 오리피

안하이가 내놓았던 오리피 ⓒ 고기복

a 안하이가 내놓았던 오리요리

안하이가 내놓았던 오리요리 ⓒ 고기복

안하이는 여느 한국 젊은이처럼 찢어진 청바지에 귀고리까지 즐기는 30대 초반의 청년입니다. 그는 충북 옥천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다가, 사귀던 여자가 변심하자 옥천을 뜬 후 용인에 있는 한 회사에서 줄곧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사장님 빼고 가장 오래 일하고 있는 직원으로, 스스로 "나, 베트남 사람 월급 너무 많아요. 사장님 골치 아파요"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고용주에게 인정을 받고 장기 근속하면서 공장 업무 전반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말이 능숙하여 얼핏 들으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인지라, 이제껏 휴가철에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불편을 겪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희 같은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프로그램을 따라 여행한 적도 많았던 안하이는, 이번 여름에 저에게 제주도여행을 계획해 달라고 계속 조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안하이가 불법체류자인데다, 여권이 만기가 되어 쓸모없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문제는 안하이뿐만 아니라, 장기체류하고 있는 다른 이주노동자들도 비슷하게 갖고 있는 문제입니다.


안하이의 주장은 제가 예전에도 불법체류자들과 함께 제주도에 갔다 온 적이 있고, 고향이 제주도니까 오가는데 도움을 줄 사람이 있을 거 아니냐는 겁니다. 참, 핑계도 잘도 갖다 붙인다 하면서도 무턱대고 "안 돼요!"라고 답하기가 여간 미안한 게 아니라서 구구절절이 설명한 것을 다시 반복했습니다.

사실 지난 2003년도에 인도네시아인들과 제주도에 갔다 온 적이 있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공항에서 크게 문제 삼지 않아 갖다 오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를 추진하면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진 중국인들이 제주도를 불법체류 창구로 쓰려 한다는 우려가 있어, 제주 공항만에서 출입국 단속이 심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제주도 여행이 만만한 게 아니다"고 말해도 여전히 안하이는 노래를 부릅니다.

"제주도 한 번 가요! 베트남 가기 전에 제주도 가는 게 소원이에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 준다는 데 산 사람 소원을 들어줄 재간이 없는 저는 미련한 목사인가 봅니다. 미친 척하고 출입국과 경찰청 외사과에 협조 공문이라도 넣고 제주도여행을 준비하고 싶지만, 괜한 바람만 집어넣을까 싶어 지레 포기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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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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