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비색의 비밀 '불을 찾아라'

30년간 불만 연구한 도예가 김해익씨

등록 2005.08.08 19:05수정 2005.08.08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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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은 청자의 빛을 '가을 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이라고 노래했다. 여름의 땡볕을 다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시원한 소나기 한 줄기 쏴 내린 후 드러나는 그 청명한 하늘, 투명한 비취빛의 감동을 청자에서 보았으리라.

a 자신의 방에 '인내(忍耐)'라는 두 글자를 붙여 놓았다. 청자빛 재현은 결국 자신을 이겨내는 지난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방에 '인내(忍耐)'라는 두 글자를 붙여 놓았다. 청자빛 재현은 결국 자신을 이겨내는 지난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 권순길

청자는 그랬다. 그리도 푸른 빛깔을 몸에 지니기 위해 1천도가 넘는 붉은 화염 속에서 스스로 등신불이 되었다. 도예장 김해익 씨는 온몸에 불을 휘 감싸고 소신공양에 나선 도자기의 꿈을 위해 최고의 불을 던져 주는 데 3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다.


오로지 장작가마의 불만 연구한 그가 지천명(知天命)에 접어들어 청자빛으로 몸을 감싼 그의 도자기를 손수 꺼낼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a 토기는 청자를 굽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할 단계다. 그가 만든 토기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았음에도 자연유약이 발라져 광택이 난다.

토기는 청자를 굽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할 단계다. 그가 만든 토기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았음에도 자연유약이 발라져 광택이 난다. ⓒ 도성희

불을 찾아라

김해익 씨에게 있어 청자빛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자 아버지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옹기로 가업을 이은 아버지가 청자에 미쳐 자신의 발목을 잡았고 피가 끓는 17세 때부터 물레를 돌리며 5대째 가업을 잇는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되 결코 만만히 하지 않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불을 마주하고 있는 날이면 그 각오는 더욱 날을 세워 불의 움직임과 소리까지 잡아내 구워지고 있는 그릇의 색깔과 형태까지 파악한다. 처음엔 옹기로 시작해 토기를 거쳐 청자까지 온 것은 우리나라 최고의 도자기문화의 진수는 바로 청자라는 사실을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라의 토기는 삼국시대 토기 중 가장 단단하고 우수한 반면 깊이 있는 색깔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고 통일신라시대부터 녹유와 청자의 형태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런 단점들이 보완되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 그는 청자에 조금씩 흥미를 가졌다.


처음엔 유약과 흙에 많은 집착을 했다. 특히 유약에 비취빛의 해답이 있을 거라 생각한 그는 유약 찾기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역시 청자빛의 비밀은 불에 있었다. 이 사실을 서른 살에야 깨달은 그는 왜 그토록 아버지가 불을 연구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a 얼마 전 구워낸 그의 작품. 이번에 만든 두개와 예전에 만든 토기가 현저하게 다르다. 자연유약은 1천2백도가 넘는 가마에서 48시간의 시간을 거쳐야 자기 전체에 발라진다. 나무와 불이 완전히 결합돼 만들어진 색깔이 아름답다.

얼마 전 구워낸 그의 작품. 이번에 만든 두개와 예전에 만든 토기가 현저하게 다르다. 자연유약은 1천2백도가 넘는 가마에서 48시간의 시간을 거쳐야 자기 전체에 발라진다. 나무와 불이 완전히 결합돼 만들어진 색깔이 아름답다. ⓒ 도성희

결혼과 함께 '울산 가서 취직하겠다'던 그에게 '불을 찾아라, 먹고 사는 것은 내가 책임지겠다'며 지금의 자리에 붙잡아 둔 아버지가 때론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이제는 오히려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읽을 수 있게 됐고 그 한을 풀 수 있어서 스스로 대견하다.


복사열에 담긴 비밀

그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불을 땐다. 불을 때는 데 들어가는 나무는 소나무와 참나무 두 종류로 약 15톤 정도가 든다. 하지만 불을 땐 후 나오는 재는 한 소쿠리에 불과하다.

처음 불을 넣을 때는 연기만 모락모락 나서 불을 때는 건지 분간이 안 된다. 나무도 깊숙이 넣지 않고 반쯤 걸쳐 넣는데 5일 정도의 이 작업은 가마를 말리고 안을 데우는 작업이다. 이후 온도를 높이는데 이때 안의 그릇들이 검게 그을렸다가 달아 붉어진다.

그는 시간과 나무를 보고 불길을 보면서 가마 안의 온도를 알 수 있다. 불은 온도마다 움직이는 속도가 다르다. 불꽃 길이가 길어지고 빨라질수록 온도는 높아진다. 그래서 가마의 온도가 1천2백50도와 1천3백도 사이에 올랐을 때 약 48시간을 그 온도대로 지속시킨다.

가마 안의 불은 그릇들을 감싸고 그 복사열로 그릇들이 비로소 제대로 된 소성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불의 직접적인 온도가 아니라 달궈지고 불꽃에 감싸여 발생하는 복사열은 그릇의 속까지 골고루 익혀줄 뿐 아니라 그 강도 또한 높여준다.

a 그는 좋은 불을 찾기 위해 30여개가 넘는 가마를 만들었다 부수기를 반복했다. 현재 그의 작업장 앞에 있는 가마들.

그는 좋은 불을 찾기 위해 30여개가 넘는 가마를 만들었다 부수기를 반복했다. 현재 그의 작업장 앞에 있는 가마들. ⓒ 도성희

거기에 가마 안에서 발생되는 재는 그릇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유약이 된다. 이것이 바로 자연유약이며 청자색을 결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그는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믿게 되었다.

48시간의 숨 막히는 소성이 끝난 후 5일 정도가 되면 가마에서 그릇들을 꺼낸다. 청자는 실제로 어떤 그릇들보다 원적외선 방출량이 많다고 한다.

청자가 천년의 흐름 속에서도 제 색을 잃지 않는 것은 바로 복사열에 의한 익힘 때문인데 경상대학교 화학과 백우현 교수의 원적외선 연구에 의하면 고온에서 짧은 시간에 구워진 그릇은 시간이 지나면 탈색이 되고 강도가 떨어지지만 고온에서 오랜 시간 구운 그릇은 강도도 훨씬 오래가고 원적외선 방출량도 상당히 높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성공률이 겨우 30% 정도에 불과해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약 12일에서 13일에 걸친 이 작업으로 김해익 씨는 거의 녹초가 되지만 이제는 비색의 실마리들이 그릇을 꺼낼 때마다 풀어져 흐뭇하기만 하다.

역사를 찾기 위해 과거를 거슬러가다

1천도가 넘는 고온에서 하루도 아닌 이틀을 견뎌내는 일이란 아무리 흙으로 만든 가마라 해도 무리다. 그는 자기 고집대로 불을 때면서 많은 가마를 무너뜨렸다. 욕심처럼 온도를 높이다보면 가마가 휘어지거나 아예 주저앉아 버린다. 그럴 땐 그도 주저앉는다.

a 그는 이제 불의 모습만 봐도 온도를 알 수 있다. 불의 움직이는 속도와 길이에 따라 온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그는 이제 불의 모습만 봐도 온도를 알 수 있다. 불의 움직이는 속도와 길이에 따라 온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 권순길

그래서 가마도 불과 함께 그의 연구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릇에 따라 다른 가마를 지금까지 30여 개쯤 만들어봤다. 어떤 가마는 불을 때자마자 무너지고 또 어떤 가마는 그릇을 하나도 건질 수 없게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가마의 형태에 따라 온도차가 나고 제일 높은 온도를 유지하면서 불을 오래 땔 수 있는 가마는 신라 후반의 가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가마는 청자가마와 비슷한데 청자축제가 열리고 있는 강진에서 대규모로 발견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가 고온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가마를 손수 만든 이후 강진의 가마터가 발견됐는데 가보니 자신이 만든 것과 모습이 흡사해 무척 놀랐다고 한다. 그의 연구가 유물을 통해 검증된 것이니 청자의 역사를 찾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던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는 이후 5년 동안 강진을 답사하며 청자가마의 형태를 새롭게 연구했다. 이제는 그릇만 봐도 가마 형태를 알 수 있을 만큼 가마에 자신감을 얻었다. 현재 그가 쓰는 가마는 대포굴가마로 길이 8m, 폭 1m 20cm 정도 된다.

a 김해익씨의 작품은 형태가 다양하다. 토기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자기를 굽는데 이는 청자를 굽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김해익씨의 작품은 형태가 다양하다. 토기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자기를 굽는데 이는 청자를 굽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도성희

지천명에서 찾은 자신감, 청자를 재현하리라

그가 사는 곳은 김유신 장군과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유명한 경주 단석산 아래다. 단칼에 바위를 잘랐다는 김유신 장군의 기개가 서려있는 곳에서 해겸도예라는 간판을 달고 토기와 자기를 굽는다.

하지만 간판이 무색할 만큼 장사와는 거리가 먼 그는 그저 아는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달아 논 이정표쯤으로 생각한다. 두 아이들 키우면서도 어렵다는 소리 한 번 없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적극 이해하고 가족을 지켜주는 부인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쉽게 작품을 팔지 않는다.

태조 왕건 방영 때는 술병과 방울잔, 5심등잔 등 그가 만든 토기들이 다수 사용돼 한때는 구입 문의도 많이 들어왔지만 그는 가급적 청자 재현을 위해 토기를 구울 뿐 다량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a 김해익씨에게 불을 찾는다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자 불을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아버지와의 싸움이다. 온몸에 불을 감싸고 소신공양에 나선 청자의 꿈을 위해 그는 3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다.

김해익씨에게 불을 찾는다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자 불을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아버지와의 싸움이다. 온몸에 불을 감싸고 소신공양에 나선 청자의 꿈을 위해 그는 3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다. ⓒ 권순길

그가 이다지도 청자 재현에 집착을 보이는 속뜻은 어떤 그릇보다 뛰어난 기술을 자랑했던 우리의 청자가 어려운 작업으로 인해 포기되고 세월 속에 묻혀 잃어버린데다 일본보다 앞선 과거의 기술을 재현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흙이나 도자기 만드는 과정, 유약 등은 문헌에 나와 있지만 불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재현에 대한 조급성은 더 크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방 앞에 '인내(忍耐)'라는 두 글자를 붙여 놓았다.

완벽한 재현을 위해 자신을 가다듬고 연구하고 기다리는 것이 청자 비색의 비밀을 푸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김해익씨는 1956년 경주 건천읍 천포리생으로 17세때 선친의 가업을 이어 5대째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으며 현재는 경주시 건천읍 우중골에서 해겸도예를 운영하고 있다.
 
* 현 한국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회원 
* 전통적인 통가마(고려시대형태)로 장작만으로 작품활동을 함
* 한국 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주관
  전통공예 명품전에(인간문화재 명품전) 1987년부터 매년 참가
* 1994년 2002년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1996년1997년2003년  전승공예대전 입상
  1986년 공예품 경진대회 특선 외 현재까지 장려 및 등 수회 입상

* 가업잇기 
- 1대 김주현 - 김해 상동
- 2대 김종용 - 경남 울주 범서
- 3대 김진채(흥동) - 건천
- 4대 김재환 - 건천
- 5대 김해익 - 건천  

이 기사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EXPO 문화사랑' 8월호에도 게재됐음을 밝혀둡니다.

덧붙이는 글 김해익씨는 1956년 경주 건천읍 천포리생으로 17세때 선친의 가업을 이어 5대째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으며 현재는 경주시 건천읍 우중골에서 해겸도예를 운영하고 있다.
 
* 현 한국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회원 
* 전통적인 통가마(고려시대형태)로 장작만으로 작품활동을 함
* 한국 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주관
  전통공예 명품전에(인간문화재 명품전) 1987년부터 매년 참가
* 1994년 2002년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1996년1997년2003년  전승공예대전 입상
  1986년 공예품 경진대회 특선 외 현재까지 장려 및 등 수회 입상

* 가업잇기 
- 1대 김주현 - 김해 상동
- 2대 김종용 - 경남 울주 범서
- 3대 김진채(흥동) - 건천
- 4대 김재환 - 건천
- 5대 김해익 - 건천  

이 기사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EXPO 문화사랑' 8월호에도 게재됐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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