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틀 거리에서 시작하는 자식 교육

모판에 자라 난 무와 배추, 브로콜리 새싹들을 보면서

등록 2005.08.16 16:33수정 2005.08.1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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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를 얻어 시골에 다녀왔을 때, 씨앗 몇 알들을 싸 가지고 왔다. 봉지 속에 무와 배추, 브로콜리 씨앗들을 따로따로 담아왔다. 물론 무랑 배추는 어머니가 준 것이고, 브로콜리 씨앗은 누나가 준 것이다.


그 씨앗들을 받아 들고서, 돌아오는 길목에 몇 마디 물어봤다.

배추, 무우, 브로콜리 새싹들이 모판에서 잘 자리고 있어요.
배추, 무우, 브로콜리 새싹들이 모판에서 잘 자리고 있어요.권성권
"엄마, 그냥 텃밭에다 함부로 심어도 되는 거예요."
"그렇긴 한데, 모판이 있으면 거기다 심고, 나중에 옮겨 심으면 더 좋지."

"왜 힘들게 두 번씩이 일을 해요. 그냥 심지."
"그래야 뿌리를 잘 내릴 수 있고, 또 곧게 자랄 수 있기 때문이지."

"엄마한테만 물어 봤지, 누나한테 물어 봤남."
"이래 봐도 내가 엄마 농사를 많이 도왔지 않냐?"

"하긴…. 근데 브로콜리 씨앗은 누나 세대에 나온 거야?"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잘 키워라."


그 씨앗들을 가지고 온 나는 한 뙈기도 못된 집 안 텃밭에 그것들을 그냥 심어버릴까 생각했다. 모판에다 그 씨앗들을 심었다가 나중에 텃밭에 또 옮겨 심는 게, 무척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른 말 들으면 손해 될 것 같지 않아, 그 씨앗들 한 알 한 알을 모판에 옮겨 심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루가 지났는데, 그것들 가운데 무 씨앗이 새싹을 뻗어 올리는 게 아니겠는가. 심은 지 하루 만에 어떻게 싹을 내밀 수 있었는지, 난 그저 놀랄 뿐이었다.


그로부터 또 사흘이 지났을까. 그러니까 그 씨앗들을 가져온 지 나흘째가 된 날이었다. 글쎄 그 날 이른 아침에 그것들을 보니, 그 세 씨앗들 모두가 모판 위에 새싹을 활짝 내밀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정말로 대단한 새싹들이었다.

그 새싹들 가운데 제일 크게 고개를 내민 것은 무 새싹이었고, 그 다음이 배추, 가장 작은 것이 브로콜리 새싹이었다. 그 새싹들이 더 크면 모판이라는 틀 거리를 벗어나 나중엔 제 터에 아주 튼튼한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 모습들을 생각하자니 벌써부터 큰 기쁨이 한 아름 안겨 오는 것 같았다.

헌데, 땅 밖으로 고개를 내민 그 새싹들을 보자니 문뜩 내 두 아이가 떠올랐다. 아직 세살도 채 안 된 첫째 딸아이와 태어난 지 석 달도 안 된 둘째 녀석이 그들이다. 그 녀석들을 생각하자니, 앞으로 어떻게 곧고 훌륭하게 키워야 할지 그게 가장 앞선 걱정이다.

앞으로 녀석들이 크면 유치원도 보내야 하고, 또 학원이나 학교도 다니게 해야 한다. 그곳 모두가 학문연마를 위해 꼭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말도, 행동도 그곳에서 조금씩 그리고 빨리 배울 것이다. '엄마'와 '아빠'에서부터 시작해서 '덧셈'과 '뺄셈'도 배우고, 쓰레기는 어디에 버리고, 또 길을 건널 때에는 어떻게 하는지도 배울 것이다.

하지만 그 틀 거리 속에서 꼭 좋은 것만을 배우는 것은 아닐 터이다. 또래 아이들로부터 배워서는 안 될 나쁜 말과 행동들도 익히게 된다. 상스러운 욕이라든지 작은 폭력 같은 몹쓸 것들도 그곳에서 배운다. 집에서라면 결코 상상도 못할 끔찍한 행실들을 그곳에서 익히기 마련이다. 그만큼 그곳 학원이나 학교들이 학문을 배우고 익히기에는 좋은 곳이긴 하지만 진정어린 인성교육이나 정서함양을 채워나가는 데에는 아주 빈약한 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정말로 필요한 인성과 정서함양 같은 산교육은 가정이라는 틀 거리 안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에서야 말로 부모로부터 인간됨이란 어떤 것인지, 웃어른들은 어떻게 섬기고, 아랫사람들은 어떻게 돌보야 하는지, 그 모든 산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학원이나 학교에서 다 해 주리라 믿고 떠넘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세계적인 교육을 자랑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지금도 성인이 될 때까지 모든 교육을 가정을 주축으로 행하고 있다. 같은 또래 아이들 틈 속에서 배우는 학교 교육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 모든 교육이 '토라'를 중심으로 가정 위주로 행하고 있지 않는가.

오늘날 지식 위주로 하는 수평교육은 그 문제점이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영재개발, 천재교육, 지식개발만을 최고로 여기는 수평교육은 인간성 상실과 사회성 결여라는 후유증을 가져오고 있다. 그렇기에 인성과 정서를 함양시키는 수직교육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며, 그건 다른 교육기관이 아닌 가정에서부터 더 깊이 있게 하는 게 중요치 않겠나 싶다.

오늘 나는 그래서 모판 위에 고개를 내민 새싹들을 보면서 그런 다짐을 했다. 모판이라는 틀 거리에서 자라고 있는 이 새싹들처럼, 내 아이들이 세상이라는 제 터에 뿌리를 내리기 전 아직 가정이라는 틀 거리 속에 있을 때에, 정말로 올곧고 참된 것이 무엇인지 가정 속에서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아이들에게 아빠인 나도 그렇고 엄마인 아내도 그렇고, 참된 틀 거리가 되도록 애써야 되겠다는 생각도 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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