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1년, 무엇이 달라졌나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외면...미등록 노동자 갈수록 증가

등록 2005.08.17 19:37수정 2005.08.1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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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인 외국인력 활용을 통해 생산직 인력난 해소와 불법체류자 문제 해결, 이주노동자 인권보호를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가 8월 17일로 시행 1년째를 맞고 있다. 정부는 2007년부터 기존의 산업연수생제를 폐지하고 외국인 고용방식을 고용허가제로 일원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합법적인 고용이 늘고 불법체류자(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부 표현)의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고용허가제가 지난 1년 동안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서 연착륙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a 지난 5월 1일 세계 노동절 행사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

지난 5월 1일 세계 노동절 행사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 ⓒ 진용석

정부 불법체류자 감소 정책 '헛구호'

고용허가제 실시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그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정부는 "고용허가제 실시와 함께 불법체류자를 10만명으로 줄이겠다"고 장담했지만 시행 1년 만에 헛구호가 된 셈이다.

최근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05년 6월 현재 이주노동자는 97개국 35만5000명으로 이 가운데 55.5%인 19만7000명이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게다가 2003년 부분적으로 합법화했던 E-9비자 소지자 11만여명의 합법 체류기간이 끝나는 이달 말이면 그 수가 30만명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이주노동자 10명 가운데 8명이 불법 꼬리표를 달고 정부의 단속추방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은 고용허가제가 사업장 이동 자유를 제한하거나 1년 단위 계약으로 인한 노동권 침해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합법적인 등록을 마친 이주노동자의 경우도 자발적으로 다른 업체로의 변경은 금지된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선택할 수는 없고 사업주만이 근로자를 선정할 수 있다.

이주노조의 한 관계자는 "고용허가제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고용주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제도라면 '노동허가제'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라며 "문제는 노동자 신분으로 인정한다고 선전되고 있는 고용허가제 아래서도 여전히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자유는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정부 정책을 꼬집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이주노동자는 8600만명에 이르며, 앞으로 수십년 동안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해마다 600만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생활 안정과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 강수돌 교수는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자본에 의한 노동지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자본은 노동에 대해 주기적으로 점수를 부여함으로써 개별 노동자간에 끊임없이 경쟁과 분열을 부추기고 그 결과 노동 통제를 용이하게 한다는 것.


고용허가제 하에서도 노동권 침해 심각

a 지난 5월 16일 합동단속반의 불법체류자 단속 과정에서 발뒤꿈치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로크만씨가 서울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5월 16일 합동단속반의 불법체류자 단속 과정에서 발뒤꿈치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로크만씨가 서울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 진용석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이주노동자의 인권 상황 또한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주노동자들은 특히 최저임금 이하의 낮은 임금과 과중한 업무, 정부의 지나친 단속과 고용주의 폭행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노동자인권연대가 지난 6월 13일부터 7월 20일까지 고용허가제 이후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134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가량이 하루 1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이 받는 한달 평균임금은 70만원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드러나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 과다한 노동과 낮은 임금, 고용주의 폭행 등의 이유로 사업장을 옮기고 싶다는 응답자가 63.3%나 됐다. 이는 고용허가제 하에서도 이주노동자의 인권 및 노동권 침해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심각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주노동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벌어지고 있는 정부 합동단속반의 과잉단속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적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눈에 보이는 대로 쓸어 담는다'는 이른바 그물망 단속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것.

심지어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 "현행법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단속 및 연행의 근거가 충분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며 강제단속과 연행 등 신체적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조치에 대해서는 법 개정을 통해 실질적인 감독체계를 마련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이주노조, 고용허가제 파탄 선언

국가인권위가 지난 6월 9일 발표한 2004년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단의 진정 사건에 대한 결정 내용을 보면 2004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가 단속하여 보호 조치한 외국인 6185명은 모두 긴급보호 조치됐다. 단속 과정에서 수갑을 사용한 사례도 4230회(68.4%)나 되었고, 보호명령서를 사전에 발급하여 보호 조치한 경우는 단 1건도 없었다.

한편 이주노조(위원장 아노아르)는 1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주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어 "우리에게 노예의 삶을 강요했던 산업연수생제도의 본질을 그대로 가져온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착취를 연수생의 이름 대신 노동자의 이름으로 이어가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며 고용허가제의 파탄을 선언했다.

강수돌 교수는 "고용허가제는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고 노동관계법으로 외국인의 고용 취업을 규제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가 존재한다"면서 "이제 더 이상 시기상조론이나 비용상승론, 노사불안론 같은 고리타분한 자기 기만 논리가 나와서는 안되며, 한 걸음 더 나가 노동허가제 도입으로 '노예 경영'의 마지막 잔뿌리까지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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