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구재희랑 혼인하지 그랬냐?"

우리 가족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하는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

등록 2005.09.02 11:48수정 2005.09.0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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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내 아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들여다보는 텔레비전 연속극이 있다. 일일연속극 <굳세어라 금순아>가 그것이다. 어쩌다가 다른 일 때문에 보지 못하는 날이 있으면 그 다음날이라도 꼭 재방송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내다. 그만큼 내 아내는 그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


가끔 가다 나도 볼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일 때문에 보는 날 보다 보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그럴 때면 그날 했던 드라마 내용을 아내가 설명해준다. 마치 세 살 된 내 딸아이가 무언가를 열심히 재잘거리듯, 아내는 그렇게 내게 되로 받아 말로 풀어 준다.

지금까지 아내가 내게 해 준 내용을 들어 보면 가히 ‘금순’이란 여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내가 드라마를 볼 때도 그렇게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토록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나서, 혼인식도 치르지 못한 채 남편이 저 세상으로 떠나가고, 홀로 세상을 힘겹게 맞서 살아가는 그 여인이야말로 실로 당찬 여인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그런 여인이 텔레비전 속 ‘금순’이에게만 해당될 일이겠는가 싶다. 이 세상 그 어딘가에는 또 다른 여자 주인공들이 무척 많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정말로 힘든 운명을 타고 났음에도, 세상을 당차고 힘 있게 맞서 살아가는, 그런 가운데서도 웃음과 소망을 잃지 않는 여인은 이 땅에 참 많이 있으리라.

내 아내가 그 드라마를 보는 까닭도 아마 그런 동정심 때문이지 않겠나 싶다. 그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드라마를 보는 아내가 결코 밉지만은 않다. 텔레비전이 바보상자라고는 하지만 거기에 빠져 들어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또 감정이 더욱 풍부해진다면 그도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좋다. 슬픈 내용이나 서글픈 장면을 보면서 내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때론 눈물까지 흘릴 정도이니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문제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나온 다음 날이 꼭 이상해진다.


이를테면 극중 여주인공인 ‘금순’이와 그녀를 좋아하는 ‘구재희’ 사이에 일어난 사랑 이야기가 그날 저녁 잠에 빠져드는 아내의 꿈속에까지 찾아오는 것이다. 둘 사이에 찐한 장면이 그 드라마 속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내가 잠드는 꿈속에까지 찾아 올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굳세어라 금순이> 구재희 역의 강지환
<굳세어라 금순이> 구재희 역의 강지환iMBC
그래서 다음날이면 아내는 어김없이 내게 놀려대고 또 한바탕 웃어댄다.


“어휴, 어제 밤에는 참 좋았는데.”
“뭐가, 또. 어제도 금순이랑 구재희가 나타나던가?”
“그랬지. 글쎄 구재희가 나타나서 나한테 차를 마시자고 하잖아.”
“도대체, 그 녀석은 왜 하필 당신한테 나타난데. 제발 다른 사람한테 가라고 그래.”
“나도 그랬으면 해. 근데 어떻게 하겠어, 내가 좋다고 나타나니 말이야. 호호호.”
“당신 너무 과한 것 아냐. 정신을 차려야지, 그렇게도 그 놈이 좋아.”
“그럼, 얼마나 좋은데. 약 오르지. 메롱.”
“차라리 구재희랑 혼인하지 그랬냐?”
“이미 늦었는데 뭘.”
“어휴.”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있을 때 잘해. 호호호.”
“어휴. 속타.”

그렇게 나와 아내는 약간의 질투심과 유머를 섞어가며 이야기할 때가 부쩍 많아 졌다. 물론 아내는 그저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때로는 같은 남자로서 구재희가 무척 싫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드라마와 꿈 이야기 때문에 하루를 웃음으로 시작하는 날이 더 많은 것만은 사실이니, 그 또한 즐거운 일이지 않나 싶다.

드라마와 꿈 이야기 때문에 질투까지 벌이는 집이 우리 집 말고 또 있을까 싶은데, 어디 구재희로부터 내 아내를 빼낼 방법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알려줬으면 좋겠다. 이 또한 재미있는 고민이지 싶은데, 아무튼 그 드라마 때문에 요즘 우리 집이 약간 재미있고 또 웃음꽃이 피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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