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태평초'라고 들어보셨나요?

옛날 방법 고집하며 '묵밥'을 만드는 박승창 사장

등록 2005.09.09 15:46수정 2005.09.09 19:2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북 영주시 하망동 성당 뒷골목엔 25년의 전통이 빛나는 식당이 있다. 그러나 대문 위에는 '묵집 입구'라고만 적은 단순 소박한 간판이 붙어 있고, 기둥에는 그보다 더 큰 동창회(제7회 영주동부초등학교) 현판이 붙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할 일이 마땅찮으면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꾸며서 손쉽게 시작했다가 얼마 못 가서 문을 닫고 마는 식당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 비하면 이 묵집 식당 사장님은 힘이 더 들더라도 우리 조상들의 옛날 방식으로 사람의 몸에 좋은 건강한 먹을거리를 마련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다섯 딸을 낳고 어렵게 얻은 외동아들이 이 가업을 이어가기로 결심을 했다고 한다. 모 대학 식품영양학과를 나와 영양사 면허증을 딴 박종서씨는 현대 소속의 영양사로 일하다가 북한 경수로 사업단에 섞여 북한에 가서 2년 간 근무하고 얼마 전에 돌아왔다. 그는 올 봄에 '태평초'를 특허청에 등록했으며 이 전통 음식을 현대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영주시내 원당로에 5일장이 서면 이 골목은 좌판을 놓은 아줌마, 할머니들로 그득해진다. 묵집 화장실은 재래식이지만 이 분들이 급한 볼 일을 보기 위해 줄을 서기 때문에 다른 집처럼 수세식 화장실로 바꾸고 문을 잠글 수가 없다. 박승창(66), 강복수(66), 동갑내기 부부의 넉넉한 인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매월 노인 시설에 묵을 갖다드리는 이유도 노인들이 향수에 젖어서 손가락으로 집어먹을 정도로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농사를 짓다가 젊은 시절 모 건설회사 소속으로 중동을 다녀오기도 했다. 강여사와 결혼한 후, 장모의 음식 솜씨에 반한 그가 태평초 요리를 익히고 묵집 식당 문을 연 지가 어언 25년이 흘렀다. 메밀이나 콩, 그리고 옥수수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순두부는 콩을 불려서 맷돌에 갈고 자루에 넣은 채로 끓인 후에 간수를 넣으면 엉겨서 만들어진다. 이 집의 메뉴는 태평초(4000원), 순두부(3500원), 묵밥(3500원), 세 가지뿐이다.

a 태평초 상차림

태평초 상차림 ⓒ 김우출


순두부에 비하면 묵은 손이 훨씬 많이 가는 음식이다. 먼저 메밀을 체로 치고 가마솥에서 끓인 뜨거운 물로 독을 뺀다. 기계방아에 5∼6회 빻은 다음에 물로 반죽을 하여 체로 거른 후, 자루에 넣어 다시 거른다. 가마솥에 넣어 한 시간 이상 저으면서 아궁이에는 불을 땐다. 이렇게 쑨 묵을 일정한 판에 넣어 식히고 적당히 말리면 우리가 말하는 묵이 된다. 이걸 썰어서 갖은 양념을 한 간장을 넣고, 김을 구워서 부셔 넣은 다음, 계란을 반숙하여 가늘게 썰어서 얹고 조밥과 함께 상을 차려 내면 묵밥이 완성된 것.


태평초는 묵을 썰어 넣은 다음, 김치와 돼지고기를 섞어 끓인 후에 갖은 양념을 해서 먹는다. 메밀묵과 순두부는 메밀과 콩을 오후 5시쯤에 씻어서 준비해 두었다가, 다음날 새벽 5시 30분쯤에 하나씩 번갈아 가며 만든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보면 메밀은 적체를 없애고 열종과 통풍을 막아준다고 하고,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메밀이 비위장의 습기와 열기를 없애주며 소화가 잘 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a 메밀묵 공정에는 손이 많이 간다.

메밀묵 공정에는 손이 많이 간다. ⓒ 김우출


필자는 몇 년 전 '메밀꽃축제'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때 그곳에서 느낀 생각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단편소설 하나로 봉평 전체가 먹고 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메밀로 할 수 있는 각종 요리가 개발된 점은 좋은데 너무 계량화되고 상품화되어 이미 전통적인 맛을 잃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런데 이 묵집 식당은 힘이 들더라도 옛날 방식만을 고집하며 우직하게 이어가고 있다.


a 메밀꽃

메밀꽃 ⓒ 김우출


자식들도 소질과 솜씨를 이어받아 6남매 중 넷이나 음식과 관계되는 일을 하고 있다. 게다가 박 사장은 이 태평초의 비법을 배워서 개업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무료로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예천과 부산, 그리고 용인에서 개업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새벽에 찾아가서 묵을 쑤는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더니 정말 힘든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사람이 먹는 음식에 해로운 것을 첨가하여, 짧은 시간에 손쉽게 많은 이익을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은 정말 악질이다.

아! 잊을 뻔했다. 광고해 주기로 약속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박 사장님 큰딸이 가흥동에서 하고 있는 '성원 한정식'인데, 안동간고등어와 함께 쌈을 싸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이고, 남은 하나는 막내딸이 메이크업을 전공하여 모 대학교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데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사장님, 저 약속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덧붙이는 글 | 계간 영주문화 2005년 여름호에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계간 영주문화 2005년 여름호에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 영주고등학교, 선영여고 교사. 한국작가회의 회원. 대경작가회의, 영주작가회의 회원.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4. 4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