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여성은 '국방의 의무'를 '권리'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는 양성평등병역 실현돼야

등록 2005.09.10 00:20수정 2005.09.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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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헌법 39조 1항의 내용이다. 국방의 의무는 내란, 외환의 특수한 상황뿐 아니라 평시의 병역 체제에서도 동등한 효력을 갖는다. 원칙적으로 보면, 여성을 제외한 현재의 남성 징병제는 위헌이란 얘기다.

전통적으로 가부장제의 영향이 컸던 우리 사회에서 '외치'는 남성의 몫이었다. 단순히 병역을 통한 나라 지키기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집 밖의 일은 남성이 전담했고, 여성은 집안일에만 신경썼다. 이런 상황에서 군대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남성 징병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제도 자체가 양성 평등과, '국방의 의무'란 헌법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었지만, 사회 통념상 쉽게 용인될 수 있는 것이었기에 문제없이 지켜졌다.

그러나 현재는 '남자만 군대가는' 현실이 '부자연스럽다'는 주장이 늘고 있다. 실제로 독일, 프랑스 등은 양성평등병역을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군 복무로 일찍부터 유명하다. 몇 년 전 한 여성의원의 발의로 남성 2년, 여성 1년이었던 복무기간을 남녀 모두 같은 기간으로 맞췄다. 징병제를 택한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지만, 양성평등병역은 적어도 세계적 흐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한 여고생이 남성 징병에 대한 헌법 소원을 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 양성평등병역 논의가 나온 건 1999년 군 가산점이 폐지되면서부터다. 시대가 변해 '국방은 당연히 남성만의 영역'이라는 사회 통념이 바뀌곤 있었지만, 그나마 군 복무자에게 주어진 가산점이 있었기에 그 동안 별 탈없이 남성 징병이 유지돼왔다. 그러나 '당근'이 없어진 이후로 여성 징병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기 시작했다. 일부 남성들 사이에선 홧김에 '여자도 군대 보내라'는 식의 감정적 접근도 있었지만, 페미니즘의 한 쪽 진영 내에서도 양성평등병역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여성해방은 남성을 타도하고 여성이 우뚝 서자는 논리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왜곡된 성 정체성을 바로잡아 양성평등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차이에 있어 서로에 대한 배려는 있어야겠지만, 그것이 제도에 의한 사회적 차별로 이어져선 안 된다. 여기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역차별은 물론, 여성의 부당한 우위도 포함된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국방이 모든 국민의 의무인 이상, 여성 또한 병역의 의무를 가진다. 물론 과거엔 사회 통념상 남성과 여성의 영역을 구별하는 게 고착돼 있어 여성도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진정한 여성해방, 양성평등을 시대의 가치로 삼은 지금, 제도로 고착된 남성과 여성의 영역 구분은 마땅히 없어져야 할 과거의 유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의 영역으로만 여겼던 군대를 의무로서 받아들일 '권리'가 있다. 군대를 남성의 영역이기 때문에 양성평등병역이 불합리하다고 말하는 건, 헌법과 시대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래서다. 여성이 국방의 의무를 중요한 '권리'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잘못된 제도와 법에 의해 나뉜 남성과 여성의 영역을 허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위헌적 남성 징병제가 유지될 수 있던 건 사회 통념과 의식이 이를 묵인해줬기 때문이지, 그 자체가 옳거나 합리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적어도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이들이라면 제도화된 차별부터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책임없는 자유가 방종이듯, 의무 없는 권리 주장은 공허하게만 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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